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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r 08. 2021

불편한 진실, 인간관계에 대하여

소외된 자들을 위해

내가 모 학교에 근무할때 그곳에는 사람 참 좋은 실장님, 사람 참 더 좋고 마음 여린 부장님, 사람 좋은것같은데 조금은 까실스런 행정실무사님이 계셨다. 그리고 맡은 업무를 처음해보고 어려도 너무 어린 아가를 키우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실장님 부장님 그리고 행정실무사님과 모두 친한 내 전임자가 있었다.


그 학교에서의 생활은 나름 괜찮았고, 즐거웠다. 자유분방하고 한량끼가 다분한 실장님덕에 항상 점심먹은후 걷는 산책길도 좋았고, 시크하면서도 둘째 임신한 나를 위해 기회를 엿보다 내가 좋아하는 피자한판 사준 실무사님께도 고마웠고, 과도한 업무와 황당한 업무에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면서도 이사람 저사람 다 챙기는 부장님도 참 좋았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마음이 씁쓸하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난 은따였기 때문이다.


이 무슨말인가 하겠지. 그렇지만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들과 등을 지고 살아가는것은 아니고, 지금도 1:1로 만나면 그 당시에 아무일 없다는듯이 이런저런얘기를 할 수 있으니 이 참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인간관계라는게 왜이렇게 웃기고, 어렵고, 이해가 안가며, 어이가 없는걸까.



그 학교를 떠나 라온이 출산을 위해 휴직을 하고,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난 후, 해당학교 실장님께 전화를 한번 드린적이 있다. 나로서는 엄청난 용기였다. 인간관계에 큰 의미를 두고 사는 나이지만, 의미를 두는만큼 사람을 챙기지도 못할분더러, 안부만을 목적으로 하는 전화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기에 그동안 많은 인연으로 알게된 사람들을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곤 했었다. 그랬던 내가, 해당학교 실장님에게 전화를 했떤건 엄청난 변화였고, 그만큼 실장님이 나에게 편안한분으로 남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상황적으로도 그 학교가 있었던 동네에 동기들을 만나러 가는길이었고, 문득 생각이 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통화를 하던 중에 낌새가 이상했다.


"저 지금 **동이에요. 그래서 생각나서 전화드린거에요."

"어? **동이라고? (몹시 당황한 목소리)"

"네, 동기들 만나러 가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왜 내가 **동이라는데 당황을 하신걸까? 유난히 돈독했던 그 당시 근무멤버와 내 전임자까지 모여서 혹시 술한잔, 혹은 저녁을 먹고 있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해졌지만, 따져 묻기도 이상하고 그래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어쩌면 그날 내 촉이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해당학교 부장님을 만나게되었는데, 얘기 끝에 내가 물었다.


"**학교분들이랑 자주 연락하세요?"

"응, 자주 보지, 누구누구누구누구 그리고 누구(전임자)도"


그랬다. 내 예상대로 역시 그들은 내 자리에 전임자를 앉혀놓고 자기들끼리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던것이다. 기분이 또 씁슬했다. 그리고 뭔가 약간 짜증도 났다. 그런데 그 말 끝에 그 부장님도 조금 미안했는지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애를 낳고, 복직을 했으면, 전화번호가 바뀌었으면 니가 먼저 연락을해야지. 너 발령받은거 보고 내가 전화했는데 번호바뀌었다고 몇번을 안받더라."


그 말끝에 기분의 실타래가 힘없이 풀린 느낌이 들었다. 그렇네. 그런거였다. 내가 그들을 찾지 않은것만큼 그들도 나를 안찾은것이다. 내 인생에 큰 대소사가 있을때마다 그들은 그들 말대로 전화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번호가 바뀐상태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결국 연결이 되지않았고, 그들은 어쩌면 내가 기분나빴던것보다 더 기분이 나쁜상태로 내가 괘씸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을 놓쳤다. 나는 인생을 잘못산걸까?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닿은 인연이 끊어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시로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고, 수시로 카톡을 날리는사람도 있고, 수시로 술자리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내 주위에도 있다. 가장 가깝게 인연을 소중히 하는 내 남편은 수시로 술자리에 간다. 그렇지만 나같은 사람도 있다.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만 이어가기 위해 해야하는 노력들이 너무 힘겨운 사람들. 그래서 무리에서 홀로 인연이 끊어진 채, 어쩌다 들려오는 소식에 또 자신만 소외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씁쓸한 기분을 혼자 삼키며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들 말이다.


인생을 잘못살았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굳이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상대방이 우리를 그닥 환영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상대방이 우리가 우리가 있었던 자리에 다시 돌아오는것을 바라지 않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 괜히 찾아가서 안그래도 힘겹고 고달픈 내 인생을 더 흙빛으로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 짠하다고 말하고 싶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들이 열어준 마음에 나의 단단한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이 스스로를 앞으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변화해야할까? 누가 변해야할까?


아니, 아무도 변할 필요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와서 내가 끊어진 인연들을 잡겠다고 노력해봤자 흘러간 시간들이 너무 많은것을 휩쓸고 가버린 탓에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나에게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고, 말을 걸어주고, 따뜻하게 품어줄만큼 마음에 여유가 넘쳐나는 사람도 없다. 그들의 삶도 그렇게 녹록치는 않을테니까. 언젠가 누군가 그랬다. 그냥 같이 있을때 잘 지내고 다시 만나면 반겨주고 그러면 된다고. 이게 정답이다.



부장님과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다시 해당학교 실장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드려서 따져 물었다.


"실장님, 저만 쏙 빼놓고 만나셨다면서요?"

"어? ( 또 몹시 당황하심 ) 몇번 만났지"

"어떻게 그러실수가 있어요-_-"

"야 너는 애낳고 애키우고, 어? 음..."

"둘째가 벌써 세살이에요."


당돌하고 어찌보면 버릇없는 나의 질문에도 늘 다 받아주시는 실장님. 참 감사하다. 실장님과의 통화로 나는 마음에 남아있던 씁쓸함을 털어내려한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 끊어진 인연을 누구 탓을 할까. 그들의 마음이 내가 아닌 내 전임자에게 간것을 탓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이가 둘인 아줌마가 되어서 그런지 그래도 소속된 학교에서는 구성원들과 잘 지낸다. 인사발령이 나면 몇명이 수고했다고 감사했다고 기프티콘도 날려준다. 선물도 주고. 그리고 사내 메신저로 간간히 연락도 하고 지낸다. (또래에 한해서.)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것이다. 같이있을때 잘 지내고 다시만나면 반겨주면서. 그리고 더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우연히 또 끊어진 인연의 누군가를 만나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리고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인사하고 안부를 물으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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