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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r 05. 2021

나는 그들이 말하듯이 악처일까?

좋은아내의 조건이란

2015.12.19. 나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악처가 됐다. 말 그대로, 결혼하자마자 악처가 됐다.


악처의 정의란 무엇일까? 나쁜아내, 못된아내, 이상한아내, 혹은 악한 아내.

나는 왜 악처가 되었을까?


며칠전 차사고가 났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던 나는 회식장소를 향해 가는 남편을 불렀다. 그날따라 남편은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았고(술을 마시기 위해) 결국 회식장소로 같이 향하던 남편 회사의 직장동료들까지 다 나의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는 꼴이 되었다. 능숙하게 보험회사에 전화하고 반대편 운전자(멀쩡히 주차되어있는 남의 차를 박았다.) 와 이야기를 나누는 남편을 보며, 직장동료분들께 머쓱해진 나는 괜히 일상적인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한참 실없는 소리가 오가던중 A동료님이 나에게 이런말을 건넸다.


"***처럼 좋은 사람 만나기 힘들잖아요. 좀 잘해요."

".... 같이 안살아보셨잖아요~"


최대한 분위기를 유지시키며, 상대방도 기분안나쁘게 하고자 건넨 나의 진짜 최선의 최선을 보탠 대답이었지만 그분은 당황했고, 나는 또 한번 스트레스를 받았다. 말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수도 있는 세상에 살면서, 그분을 포함한 많은 남편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왜 그렇게도 가볍게 조언이랍시고 남편에게 잘하라는 말을 건네는걸까.


 


                         "그들은 자신들의 관점에 서서 너무 쉽게 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분노하고, 또 분노하고, 폭발한다."

                                    "그들의 가벼움에, 그 깃털같은 입에"




여기서 구구절절히 내가 남편에게 어떻게하고, 우리 남편이 어떤사람인지를 쓰려는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겉으로 보이기에, 어떤 단면적인 모습이 누가 누구에게 잘하거나 누가누구에게 못하거나 하더라도 그것은 말그대로 전부가 아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일각들이 조금 모였다고, 누군가를 알아온 시간이 조금 쌓였다고 그 사람의, 그 부부의 모든것을 아는것마냥 왜 잘해라 마라, 적당히 하라마라 와 같은 객관적으로 누가 들어도 기분나쁜말을 던지는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딱 한가지 주제가 아니면 잘 안싸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주제가 자주 수면위로 떠오르기 때문에 자주 싸운다. (자주 싸우는걸까, 안싸우는걸까) 그건 바로 그놈의 술이다. 술술술! 남편은 술을 잘 못마시는 편인데, 남편주위에는 술을 잘마시는 사람이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연락이 온다. 저녁먹자고, 모임이라고, 대놓고 술마시자고. 그리고 모임도 너무 많다. 고등학교, 대학교, 사내모임 등등 10개도 훨 넘는다. 아마 내가 제지하지 않고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라고 했다면 아마 일주일에 1-2번이나 칼퇴해서 집에 들어올까 싶다. 거기에 초과근무도 간간히 하니 아마 .. 거의 진짜 얼굴 도장만 찍고 살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항상 투쟁한다. 나가지 말라고. 적당히 하라고. 그래도 나도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모임, 공적인 회식 같은건 나름 보내주고 있는데도 남편 주위사람들은 그저 남편이 안쓰러운가보다.


그들의 논리는 늘 똑같다.


"남자가 사회생활하는데 술도 좀 먹고 그래야지" 이 무슨 거지같은 말인가? 개똥같은 말 하고 있네 진짜.


사회생활하는데 술자리는 어쩌면 불가피한 필수옵션이라는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정도라는게 있지 않은가.

그리고 상황이라는게 있지 않은가. 우리는 6살 3살 한참 손 많이 가는 아이들의 부모이며 맞벌이이다.


"나도 지친다. 퇴근하고 와서 애들 밥먹이고 씻기고 책읽어주고 놀아주고 재우는 육아에 진이 빠진다."


남편이 나랑 똑같이 했으면 좋겠다. 똑같이 칼퇴하고 집에와서 애들 한명씩잡고 밥먹이고 씻기고 책읽어주고 빨래개고 청소하고 또 빨래널고 놀아주고 재우고.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 그래서 나는 계속 화를낸다. 그만좀 나가라고. 그만좀 마시라고. 뭘 위해 그렇게 몸에서도 안받는 술을 마시고 있냐고. 그렇게 몇년을 화를내고 분노하니 남편 주위에서는 내가 정말 악처중에 악처이고, 볼때마다 남편 좀 그만 잡으라고 한마디씩한다. 그들은 한마디씩 날리지만 사람 좋기로 소문난 남편주위에 엄청난 사람들에게 매번 같은 소리를 듣는 나는 가끔 인생에 회의감까지 든다.


남편이 술마시는게 싫은, 독박육아가 미치게 싫은, 하지만 타의적으로 독박육아에 늪에 늘 떠밀리는 나는

그들이 말하듯이 남편 출세길 막는, 남편의 사회생활 망치는 악처일까?


우리 다온이 태어나서 두돌까지 남편은 공적인 이유로 정말 술을 많이 마셨었다. 정말 흔히 쓰는 표현으로 술이 떡이 되서 들어오는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나는 산후우울증에 독박에 유축에 시어머니간섭까지 지금 되돌아봐도 끔찍했던 그 시절. 남편과 같이 부어라 마셔라 하는 동료분들에게 전화해서 나 정말 힘들다고, 죽겠다고 하소연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질정도로 창피하지만 그 때의 나는 정말 남편이 필요했다. (왜 눈물이 나려는지 모르겠다.)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시는 시어머니를 막아줄 남편이, 시도때도 없이 날 덮치는 우울감에서 날 건져줄 남편이, 산후조리를 잘 하지 못해 온몸이 아픈 나를 돌아봐줄 남편이. 남편은 남편대로 술안먹는 순간들에는 정말 많이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무색할만큼 많은 시간을 술자리에서 보냈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상처로 남았고, 지금까지도 아프고 아프다. (나는 지금 울면서 이 글을 쓰고있다.) 다온이에게도 술로 인해 수없이 싸웠던 엄마아빠의 모습이 상처로 남아 아빠에게 아직도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고 있다. 그로부터 벌써 4년이 흘렀다. 다온이는 6살이다. 최근 인사발령으로 남편은 또다시 일많고 술많은 자리로 옮겼고, 나는 벌써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이들은 많이 커서 6살 3살이지만, 여전히 밥먹이기 씻기기 재우기는 전쟁이고 이제는 남매간의 싸움이 추가되어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요새는 좀 천천히 하자, 이러면 좀 어때 저러면 좀 어때 하면서 잘 넘어가다가도 사소한거에 갑자기 폭발하곤 한다. 정신병자처럼.


나는 앞으로 또 반복될 남편의 술자리들에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할 투쟁을 또 시작하게 될까? 아니 이미 시작한걸까?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나는 다온이가 아예 술을 못마시는, 술을 못마셔도 넉살좋게 사회생활 잘하는 남자랑 결혼했으면 한다. 아니 결혼이라기 보단 사랑을 했으면 한다.


나는 악처일까? 글쎄 모르겠다. 악처일 수 있겠지. 하지만 나에게 악처라 하기전에 술에 빠져사는 당신들이, 내 남편을 술자리로 부르는 당신들이, 당신의 가정에서 뭘 놓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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