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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pr 17. 2021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누구의 업무인가?

학교에 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푸념이 있다.


"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이건 뭐, 수업을 해야 하는데 공문 처리하다 하루가 다가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의 하소연이다. 이런 하소연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사실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하소연을 하는데 거기다가 핀잔을 주기도 뭐하고(그럴 위치도 안되고) 그렇다고 내가 대신해준다고 말할 수도 없는 영역이니 그저 듣고 있는 것이다. 정말 협조적이고 평소에 호감이 있는 선생님이라면 공감의 표정을 지어주는 게 나의 최선이다.



언젠가 한 번은 같이 근무하는 6급 주사님에게 물어봤었다.


"주사님, 옛날에는 선생님들이 일체 행정을 안 하셨었나요? 진짜 수업만 하고 학사에 관련된 작업만 하신 거예요?" (참고로 6급 주사님은 퇴직이 얼마 안 남으신, 경력이 많으신 분이다.)


"아니, 옛날에도 다 행정을 했었지. 단지 예산에 있어서 지금처럼 추경이라던가, 성립전 같이 복잡한 과정이 없고 딱 본예산 세우면 그걸로 끝이었어."


"품의 같은 건 어땠어요?"


"품의도 다 선생님들이 올렸지, 학급운영이나 수업하는데 필요한 건 선생들이 가장 잘 아는데 그거를 우리가 임의로 사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데 왜 요새 선생님들께서는 그렇게 행정에 대해 불만이 많으실까요? 사실 행정이라고 해봤자 본인들이 수업하고 학급 꾸려가는데 필요한 거 품의 올리고, 그전에 얼마큼 필요한지 예산 요구하고,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어떻게 쓰겠다고 변경하는 게 추경인데, 그걸 우리가 다 해주길 바라는 걸까요? 우리가 수업내용이나 학급에 필요한 게 뭔지 어떻게 안다고 대체 뭘 원하시는 걸까요?"


"(웃음)"



사실 지금도 우리가 행정직이라는 이유로 선생님들이 하셔야 할 일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기간제 교사 및 방과 후 강사, 특강강사, 대체직 등등을 우리가 계약해주는 것이다. 이게 굉장히 어이가 없는 게 채용계획 수립 및 채용심사는 선생님들이 하는데, 서류 접수 및 계약은 우리가 한다는 것이다. 아예 교원인사업무를 우리에게 다 넘기고 싶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권한과 의무를 다 주어야 하는데, 계획 수립이나 심사 같은 핵심적인 부분은 본인들 이하고, 서류접수나 계약 같은 업무는 우리에게 넘긴 것이 정말 너무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서류접수는 정말 너무한 것 같다. 본인들이 채용계획을 세우면서 자격요건이나 구비해야 할 서류들을 다 명시해놨으니 가장 잘 알 거면서 굳이 우리에게 설명해주면서까지 우리 보고 접수받으라는 건 무슨 심보일까? 게다가 정말 뻔뻔한 학교는 서류접수뿐만 아니라 그 접수된 서류들을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정리해서 담당자에게 갖다 달라는 요구까지 한다. 우리가 자신들의 부하직원도 아니고 이게 무슨 갑질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걸까? 선생님들이 이런 과도한 요구를 했을 때, 우리가 정당하게 방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겪어온 행정실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교원인사를 교원들에게 다시 되돌려주는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또한 실무를 하는 이들은 그런 제안을 할 수 없는 말단 직원들이다. 방관과 권한 없음이 만나 만들어낸 부당한 상황. 참 갑갑한 현실이다.


다행인지,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인지, 모든 학교가 행정실에서 교원인사를 담당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계획 수립부터 계약까지 모두 담당 선생님께서 하고 계시고, 인건비 지급도 품의까지 다 올리고 계신다. 이게 정당한 상황이다. 인건비는 예산의 일부이니 얼마큼을 누구에게 지급해달라고 요구하면 그 요구를 받아들여 담당 주무관님이 지출을 한다. 지출하는데 동반되는 세금 징수나 보험료 납부도 당연히 행정실에서 해야 할 일이고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학교가 저런 부당한 상황에 놓여있고 일부에서 아주 강하게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밖에도 사례는 많다. 항상 논란에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시설업 무이다. 이 시설이라는 것이 참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 자꾸 업무가 넘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나는 또 다른 형태의 갑질이라고 생각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CCTV 관리를 안전담당 선생님이 하셔야 할까요? 시설담당 주무관님이 해야 할까요?"


언뜻 들으면 당연히 시설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애초에 CCTV가 왜 설치되었을까? 당연히 학교 시설물 보호 및 유사시 대처를 위해서도 설치가 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그러면 설치 목적을 다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시설관리 주무관님 및 학교 안전담당 선생님 모두가 CCTV 관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무조건 CCTV는 시설이란다. 시설. 시설이 아니라는 게 아니다. 시설 맞다. 그렇기 때문에 설치나 제거해야 할 때 행정예고 공문을 올리거나,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거나, 혹은 고장이 났을 때 수리 같은 것은 우리가 직접 하거나 용역업체를 불러서 우리가 해결을 한다. 그런데 CCTV 운영계획 수립이나, 영상정보 열람과 같은 분야는 안전담당 선생님이 하셔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시설담당 주무관님한테 운영까지 떠넘기려는 걸까? 그럴 거면 안전담당 선생님이 굳이 왜 있는 걸까?



마지막으로 예산. 예산이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 걸까? 무엇을 하길래 예산 때문에 항상 미치겠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걸까? 몇억, 혹은 몇십억이 넘는 예산을 총괄하는 우리도 있는데.


선생님들이 예산에 관련해서 하시는 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본예산 세울 때 본인들이 필요한 예산 요구하기, 필요할 때마다 품의 올리기, 혹시 본예산을 바꿔야 할 때 추경 올리기, 그리고 담당 예산 정산하기. 딱 여기까지다. 물론 어려울 수 있다. 7년이 넘게 돈을 건드려온 나도 아직까지 숫자 6개가 넘어가면 눈앞이 핑핑 돌고 십원 단위 때문에 틀리고 그러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행정실에서 예산담당자는 많아야 두 명인데)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얼마가 필요한지, 어떤 예산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다 물어봐서 알아서 처리해주길 바라는 걸까? 필요시마다 품의도 다 올려주고, 구매도 다 해주고 그러길 바라는 걸까? 현대판 노예처럼. 이건 말도 안 되지 않은가. 그리고 얼마나 시간낭비, 행정력 낭비인가.


게다가 우리는 예산 수립하고, 조정하고, 집행하고, 나중에 결산까지 하는 것만도 벅찬데(그리고 우리가 예산만 하는 건 아니다.) 예산담당자이기에 집행률이 떨어지는 예산담당자에게는 한 명 한 명 다 전화해서 집행 독려하고, 원가통계 비목(예산을 그 성질에 맞게 나누어 논 목, 예를 들어 비품 구입비는 비품을 사는데 쓰는 것이고, 여비는 출장비를 지급할 때 쓰는 것이다.)과 달리 쓰시려는 선생님들께도 한 명 한 명 다 전화해서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알려드리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노래이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지속적으로 행정실에 업무를 넘기려는 선생님들에게 말하고 싶다.


선생님들의 본업이 수업이라는 것은 우리도 알아요. 하지만 수업이 그냥 이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죠. 그리고 교직원 및 학생들의 안전도 확보되어야 하고, 걸맞은 환경도 조성되어야 하죠. 그리고 이 모든 걸 갖추기 위해 우리가 다 같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우리는 행정직으로서, 시설직으로서, 사무직으로서, 조리직으로서, 그리고 수많은 직종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거예요. 선생님께서도 수업을 위한 여러 행정적인 것들을 꼭 본인의 일이 아닌 것처럼 치부하지 말고 꼭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하고 해 주세요. 떠민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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