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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y 17. 2021

스승은 아니지만 감사합니다.

학교에서 스승의 날은 큰 행사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여전히 아이들은 카네이션을 만들고, 선생님은 그 카네이션을 웃는 얼굴로 받는다. 하지만 스승의 날이 당황스러운 이들이 있다. 바로 학교에 있지만 스승의 아닌 사람들. 바로 우리다.



스승의 날 당일. 한 선생님이 행정실로 들어왔다.


"실장님, 아이들이 청소 여사님을 보고 쓰레기 선생님이라고 부른대"

"네?"

"쓰레기 선생님, 만날 쓰레기 청소를 하시니까. 그런데 여사님이 그게 속이 상하셨나 봐, 하루는 날 보고 하소연하시더라니까."

"..."

"그런데 아이들이 악의가 있어서 그렇게 부른 건 아니잖아. 실장님도 알지? 애들이 청소라는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으니까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쓰레기를 치우시는 모습을 보고 쓰레기 선생님이라고 한 거야."

"아.."

"그래서 내가 여사님한테 속상해하지 말라고 말했어."


어떤 상황에서 "쓰레기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나왔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날이 스승의 날이었으니 아마 청소원님께 카네이션을 달아주러 갔던 이제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아닐까 혼자 추측했다.



이 이야기 외에 이런저런 사람 사는 얘기를 한참 하던 선생님이 나가고 혼자 남은 행정실. 아이들이 나를 보며 늘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누구세요?"


그동안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선생님은 행정실 선생님이야"라고 대답하고 보란 듯이 행정실에 들어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그 날 따라 이 질문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과연 학교에서 나는 누구일까? 선생님도 아닌데 늘 학교에 상주하는 사람.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선생님과 늘 얘기하는 사람. 학교에 낯선 업자가 오면 늘 그 옆에 서있는 사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저런 질문이 나올 만도 했다. 하지만 왠지 기분이 가라앉았다. 흔히들 멘붕이 왔을 때 한다는 질문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하필 스승의 날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학교에 8년이나 있었지만 스승의 날 행사에 참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행정실을 스승의 날에 정말 외면한 것은 아니다. 카네이션과 여러 가지 다과와 기념품은 늘 보내주었다. 하지만 스승의 날 행사의 주인공에 우리는 해당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스. 승. 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에 한 번도 서운해한 적은 없었다. 늘 스승의 날 아침에는 이런 쪽지가 날아오기 때문이다.


"교직원분들께. 스승의 날을 축하드립니다. 스승의 날 기념행사가 ***에서 ***시에 이루어질 예정이니 모든 교직원분들께서는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한 번쯤은 기념식 장소에 가서 구경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쪽지를 모두 받았음에도 행정실에 그 누구도 그 쪽지에 대한 언급은커녕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기에 막내였던 내가 섣불리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나도 스승의 날에 오는 쪽지를 그냥 무시하게 되었다. 행정실 분위기도 한 몫했지만, 어느 순간 스승의 날이라는 기념일에 대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 무의식적으로 나는 선생님이 아니니까, 스승의 날을 선생님들의 축제니까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돌아왔다. 평소에도 기념일을 잘 챙기시는 교장선생님은 나를 불러 이것저것을 상의하셨다. 카네이션 대신에 오래오래 선생님들이 두고 키울 수 있는 작은 화분과 쿠키세트, 그리고 직접 커피도 내려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화분을 주문했고, 예산 집행도 했고, 쿠키세트를 주문했고 픽업 시간을 조정하고, 커피도 주문했다. 모든 과정에 감정을 최대한 담지 안으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이번 스승의 날 주인공도 모든 준비를 담당하는 우리가 아닌 선생님들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나의 자리를 켜야 하고, 앞으로 30번은 더 맞이해야 할 스승의 날이기에 상처를 받는다거나 서운함에 몸부림쳐서는 회의감과 정체성 혼란만 가중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승의 날 당일. 본격적인 스승의 날 행사에 앞서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행정실 식구들을 포함해 선생님이 아닌 교직원들을 불러 스승의 날을 축하해주시고, 준비한 꽃과 쿠키, 그리고 커피를 직접 대접하셨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두 손은 풍성했지만 갓 내린 커피는 내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끝 맛이 쌉싸름했다.


작은 학교이기에 모든 교직원을 한 명 한 명 다 챙기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그래도 그것 또한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교장선생님께 감사했다. 하지만 마음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건 왜일까.


그렇게 요란법석 화기애애 하하호호 스승의 날이 지나갔다. 내 가방 속에는 학생들이 전 교직원 수에 맞춰 만들었다는 카네이션이 위풍당당 한자리 차지하고 누워있다. 아이들이 만들어 준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한번 가슴에 달아볼까, 생각해봤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저 카네이션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직업을 말할 때마다 늘 반복적으로 받는 질문이 있다.  


"어디에 근무하세요?"

"학교요."

"선생님이세요?"

"아니요."


학교에 근무한다고 하면 선생님이냐고 묻는 사람들. 학교에는 선생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 주체가 되는 교육활동기관이지만 그 교육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게끔 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직종이 있다. 그 직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한 번쯤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주면 어떨까.


"스승이 아니라 하여도 늘 우리를 위해 수고하시는 당신, 감사합니다."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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