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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pr 28. 2021

어머, 실장님 작가시라면서요?

한 선생님이 행정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주 멋들어진 차림새다. 그냥 하던 일을 할까 하다가 입이 근질거려 말을 걸었다.


"선생님, 오늘 아주 멋지시네요. 어디 가세요?"

"아니요. 그나저나 실장님 작가시라면서요?"

"네?"

"내가 아주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니에요. 작가는 무슨. 아닙니다."

"내가 꿈이 작가였는데, 도대체가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

"하하하..."



아마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는 어제 있었던 일일 것이다. 지역신문에 집필진으로 글을 쓴 지 어언 4개월이 돼간다. 목표는 3년인데 벌써 4개월이 흘렀다니 이러다가 3년이 되는 날이 훌쩍 다가올 것만 같다. (물론 목표는 3년이지만 당장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역신문이라는 것이 누구나 볼 수 있고, 더군다나 교육청에서는 교육청 관련기사는 따로 스크랩을 해서 제공해주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놨으니 내 글은 말 그대로 공개된 글이다. 신문 덕분에 모르는 분들께 칭찬도 받고, 오랫동안 연락을 못했던 분들도 연락을 주셨다. 여러모로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감사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뜻하지 않은 기회도 찾아온다. 작년 2월인가, 지역교육청에서 연락이 왔다.


"실장님, 부탁드릴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종종 신문에 쓰신 글 잘 봤어요."

"아.. 네...(엄청 민망하다.)"

"그래서 말인데, 실장님네 학교가 2020년 한 해 동안 교육청에서 지원을 많이 받았잖아요."
"그랬죠. 참 감사한 일이죠."

"그거에 대해서 수기 형식으로 한편 써주실 수 있나요?"


"네?"



참 난감한 일이다. 내가 수기를 써주면 지역교육청 특색으로 도교육청에 내고 싶다는 부탁이었다. 부담스럽지만 거절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순간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락뿐. 여차저차 글이 한 편 완성됐다.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발송! 보내기 전까지는 정말 내 새끼 물가에 내놓은 심정처럼 불안했는데 막상 보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아무 연락 없었다. 나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오늘 교육청에 와주실 수 있나요?"

"어... 무슨 일이시죠?"

"저번에 써주신 수기 관련해서 교육연구팀에서(교육청에는 교육환경, 행정, 교육방향 등등 다양한 방면에 발전을 위한 연구팀이 많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아... 알겠습니다."


짧은 인터뷰였다. 아주 짧은 인터뷰와 맛있는 밥만 함께한 즐거운 출장. (이건 글과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코로나 19 덕분에 밥 먹으면서 맘 편히 이야기를 못하니 자꾸 위만 늘어나는 느낌이다. 숟가락질은 멈출 수 없으니까.) 그러고 나서 또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일상에 파묻혀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저번 주 금요일 전화가 울렸다. 익숙한 앞번호다. 도교육청이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드니 상냥한 여자분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아, 안녕하세요."

"저는 **관에 ***장학사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번에 수기 써주시고 인터뷰하신 거 있잖아요."

"네"

"그게 도교육청 소식지에 실릴예정이라 실장님 사진이 필요해서요."


헛, 사진. 나는 제대로 된 증명사진이 없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맘에 드는 증명사진이 대학시절 외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신문에도 무려 10년 전 사진이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사진이라니.. 또 10년 전 사진을 써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래서 사진작가님이 실장님 학교로 갈 거예요."

"네?"

"원래는 제가 같이 가야 하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작가님만 갈 거예요."



그리고 당일. 바로 어제. 진짜 작가님이 오셨다. 공식적으로 학교에 알린 것이 아니라서(교장선생님께만 보고 했다.) 아마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왠 고급진 카메라 가진 작가가 와서 실장님이랑 학교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나 했을 것이다. 그리고 글 앞부분에 언급한 선생님도 이와 관련해서 엉뚱한 얘기를 들은 게 아닐까 싶다. (확인은 안 했다.)


여하튼 전문작가님의 기술로 사진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작가님께서 나중에 원하면 원본, 보정 본 다 주신다니 조금 기대 중이다. 그리고 소식지도 왠지 기다려진다. 막상 손에 쥐면 오글오글 아주 낯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을 테지만 당장 지금은 기대 중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나는 작가일까?


학교에서는 내가 신문에 글도 쓰고, 교육청에 글도 내고, 공동 저술이지만 책도 내고(자비출판), 문학회 활동도 한다고 하니 교직원들이 "어휴 우리 실장님 작가시네~문학인" 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가장 가깝게는 이 곳, 브런치에서도 브런치 작가라고 한다. 문학회에서는 회원님 "작품"을 언제까지 제출해달라고 한다.(문집 발간을 위해)


나는 진짜 작가일까?


어렸을 때에는 꼭 "등단"을 해야 작가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번 투고했지만 결국 등단에는 실패했다. 하다못해 지역 문학회에서도 입선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글 쓰기는 좋아하지만 글은 잘 쓰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찾아온 기회들이 나를 계속 글을 쓰게 만들었고, 지금도 쓰고 있다.


작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요새는 등단을 해도 작가고, 책을 내도 작가다. 등단작가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작가로 인정받을 것이고 굳이 등단을 안 하고도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또 대중 안에서 인기 작가로 인정을 받고, 나같이 등단도 못하고 대중성도 없는 사람은 또 우리만의 작은 글쟁이들 사회에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쥐고 글을 쓴다.


이렇게 써 내려가다 보니 굳이 작가라는 타이틀에 연연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글 쓰는 것 외에도 사실 사람이 무언가를 하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작가"라는 명칭 자체가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니까 좋은 것이고. 나 역시도 누가 글 잘 썼다는 말을 해주시거나, 브런치 같은 경우에는 큰 숫자는 아니어도 좋아요가 늘어나고 구독자수가 늘어나면 기분이 너무너무 좋다. 하지만 본질을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을 요새 종종 느낀다. 내가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하여,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문득 생각해본다.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실장님 작가라면서요?" "주무관님 작가라면서요?" "다온 엄마 작가야?" "JA야, 작가였어?"라는 호칭만 다른 같은 질문에 밀려오는 쑥스러움을 감당 못한 회피가 아닌 당당하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글 쓰는 걸 좋아해요." "네! 작가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순간이 오게 될는지. 정말 운이 좋아 그런 순간이 오면 기분이 어떨지.


*공감, 따뜻한 동행 : 앞에서 언급한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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