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Jun 02. 2021

우리 학교 진짜 좋은 학교(1)

작은 학교

내가 가끔, 가끔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자주, 하지만 자주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숫자만큼. 딱 그만큼.

외치는 구호 같은 말이 있다. 바로 오늘의 제목.


"우리 학교 진짜 좋은 학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은 나에 대한 이야기보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전에 '아, 학교에 대해 글을 좀 써봐야겠다.'라고 생각한 순간 떠오른 학교가 있다. 내가 공무원이 아닌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일했던 지금의 우리 학교만큼이나 작았던 그 학교. 나의 첫 시골학교이다.



정말 작은 학교였다. 학생수가 채 50명이 안되고, 이상하게 교직원수가 더 많았던 그 학교. 그 학교에서 나는 영어회화 전문강사였다. (굳이 이 직종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선생님도 아닌 교육공무직도 아닌 그렇다고 공무원도 아닌 강사이지만 처우가 현 9급 공무원보다 훨씬 좋았던 영어전담 선생님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공무원이 아니라고 명시했으니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실 각 학교 전담 선생님들께서는 발끈하시지 마시길-)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할 때 작은 학교는 교육환경도 안 좋고, 학습 분위기도 조성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큰 도시의 정말 학구열 넘치는 큰 학교보다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반적인 생각은 일부는 맞을 수도 있고 일부는 틀릴 수도 있다. 나는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학습 분위기와 같은 사항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그저 선생님들이 나에게 하는 말들과,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토대로 추측만 해볼 뿐)


하지만 교육환경에 대해서는 나는 작은 학교만큼 좋은 환경이 없다고 생각한다.



첫날 수업하러 들어갔는데 표준규격의 교실에 책상 네 개, 의자 네 개, 그리고 네 명의 학생이 있었다. 워낙 규모가 적고 학생수가 적은 학교라 예상은 했지만 한 반에 네 명이라니. 이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업이 아니었다. 완전 소규모 과외였다.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아이들에게는 모두 공평하게 발표 기회와 발언 기회, 뽑기 기회가 돌아갔고 나는 한 명 한 명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의 첫날보다 더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소속 학교 외에 두 개의 학교에 순회를 나가고 있었다. 총 세 개 학교 영어수업을 다 담당하고 있었고, 시험문제도 내가 만들고, 듣기 파일도 내가 만들고, 수행평가도 내가 하고 여하튼 영어에 관련된 건 행정 빼고는 내가 다했다. 그래서 다른 교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래서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는 바이올린 방과 후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학생 딱 두 명이 있었다. 두. 명. 바이올린 강사 선생님께서 정말 한 명씩 붙잡고 자세교정도 하고 음정도 맞춰주시고 계시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놀라울 수가 없었다. (가끔 본인이 연주도 해주시곤 했는데 그럴 때면 학교 전체에 바이올린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 학교를 모두 나왔지만 방과 후 수업으로 일단 바이올린이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 수업과 같이 많은 학생들과 함께 했었기에 선생님이 나를 1:1로 봐준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작은 학교에 입학시켜야지.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나는 진짜 결혼을 했고 아이가 둘이다. 첫째 다온이는 이제 2년 뒤면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후에는 작은 학교에 근무할 기회가 없었다. 첫 근무지는 중학교, 두 번째는 교육지원청, 세 번째는 엄청 큰 초등학교, 네 번째는 또 중학교, 다섯 번째는 외국어고등학교.


그리고 마침내 작은 학교에 다시 근무하게 되었다. 지금의 학교이다. 학생수가 병설유치원까지 합쳐도 50명이 채 되지 않는 학교. 어느 날 한참 일을 하다 갑자기 떠올랐다. 10년 전 나의 생각이. 아이를 낳으면 작은 학교에 입학시키겠다고 마음먹었었던 날들이.


나의 마음은 바뀌었을까? 아니면 이제 실천에 옮기고자 마음을 먹고 있을까?



내가 바라본 우리 학교는 정말 좋은 학교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면..


*학교는 모든 것을 지원해준다. 이 말을 행정적인 면에서 말해보자면 "수익자가 없다."라고 표현할 수 있고 동네 아는 엄마에게 말을 하자면 "학교에 내는 돈이 없다."정도로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10 원한장 내지 않고 학교를 다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학교에 아이들은 너무 적고 그로 인해 지원해줄 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정상적인 교육활동에 필요한 모든 학용품과 재료, 교구, 간식까지 학교에서 지원받고, 또한 방과 후 활동도 무상으로 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가 종식되고 아이들의 수련활동, 수학여행 등등 활동이 재개되면 어쩌다 학교에서 돈을 걷는 일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올해 예산서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진짜 어쩌다 한번 정도 돈을 걷는 정도이지 모든 체험활동도 다 학교 예산으로 해결된다. 이런 상황에 어찌 말을 안 할 수 있을까.


"우리 학교 좋은 학교"


*모든 수업은 다 소그룹 과외 형식이다. 학생수가 한 반에 열명이 넘어가는 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정규수업부터 방과 후 수업까지 다 소그룹 과외 형식이다. 가끔 "텔레비전이 안 나와요." "싱크대에서 냄새 가나요."같은 사항으로 교실에 들어가 보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큰 교실에 책상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고 그곳에 아이들이 정말 듬성듬성 앉아있다. 정말 학생이 마음만 먹는다면 선생님과의 아주 충분한 소통으로 도시 못지않게 배움을 실천할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이다.


내가 가장 학생들이 부러웠던 것은 바로 중국어, 영어 방과 후 시간이었다. 두 언어 다 원어민 선생님께서 수업을 진행하시는데, 진짜 학습욕구가 뛰어난 학생들은 방과 후 시간 내내 선생님과 원어로 의사소통하며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우리 학교 영어 원어민 선생님은 한국말을 아주 기본적인 것만 할 줄 아는 분이니 이처럼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을까.


한참 다온이 언어발달이 심상치 않을 때, 이럴 때 영어회화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말에 귀가 팔랑거려 원어민 수업을 알아보니 기본 한 시간에 25000원에서 5만 원이 넘어가는 수업도 정말 많던데, 학교에서 무상으로 원어민 선생님 수업을 제공하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 내가 또 어찌 말을 안 할 수 있을까.


"우리 학교 좋은 학교"


*우리 학교에는 텃밭이 있다. 사실 나는 비 친환경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텃밭에서 뭘 심고 키우고 제배하고 이런 것에 관심도 전혀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하나 없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다온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텃밭체험을 유아와 함께 하고 싶은 학부모님께서는 신청하라고 하니 정말 순식간에 신청자가 몰렸고 마감이 되었다.(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 신청하지 않았다.) 나같이 신청 안 한 사람도 있겠지만, 인원이 다 차서 못한 엄마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꽤나 큰 텃밭이 있어서 학생들이 학년별로 매년 무언가를 심고(고구마, 감자, 고추, 상추 등등) 본인들이 수확한다. 그것을 집에 가져가기도 하고 학교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작년에 출근을 했는데 교무실 책상에 정말 팔뚝만 한 고구마들이 잔뜩 널려있길래 이게 뭔가 했더니 6학년 학생들이 수확한 것이라고 한다. 정작 수확했다는 학생들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지만, 도시에서 자라 텃밭이라는 걸 일궈보지 못한 나는 정말 신기했고 감탄했다. 우리 다온이 라온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한 번쯤은 경험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는 학생수가 매년 줄고 있다. 얼마 전 어떤 민원인이 오셔서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학교가 학생수가 100명이 훨씬 넘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한 근심을 하고 가셨다.


내가 계속 우리 학교 좋은 학교를 외치고 다니자 한 번은 유치원 선생님이 이런 제안을 하셨다.


"실장님, 실장님 애기 이제 6살이죠? 우리 유치원 데려와~얼마나 좋아, 돈도 하나도 안 내고 영어 원어민 수업도 듣고~"


사실 돈을 안 낸다는 것보다도 영어 원어민 수업에 귀가 솔깃해져서 알아보니 원어민 선생님이 유치원에도 수업을 들어간다고 하신다. 우리 학교 병설유치원 현재 6명. 와. 미국 학교도 아니고 원어민 한 명에 유아 6명이라니.


한참 마음이 갈팡질팡 하는데 교무부장 선생님도 이런 말을 건넨다.


"실장님, 애기 우리 학교 데려와요. 내가 제대로 가르쳐줄 테니까. "


하필(?) 교무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서 마음이 더 흔들렸다. 교무 선생님은 정말 실력도 있고, 인품도 좋은 선생님이다. 나는.. 우리 다온이를 정말 우리 학교로 입학시켜야 할까?


추신 : 표지 사진은 우리 학교가 위치한 동네의 벚꽃길 야경사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 실장님 작가시라면서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