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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16. 2021

학부모의 위치는 어디인가?

학교에는 여러 구성원이 있다. 교사, 행정직, 교육공무직, 그 외에 다양한 강사분들과 직원이 있고 오늘 말하고자 하는 "학부모"가 있다.



학교에서 학부모의 위치는 어디일까?

나는 아직 학부모가 되지 않았고, 직업적으로도 학부모를 상대할 업무를 많이 맡지 않아서 그 위치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나에게 직접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로 인해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학부모의 위치에 대하여.


일전에 내 글에서 한번 썼듯이 나에게 학부모란 그저 행정실을 화풀이 대상으로 여기는 (극히) 일부 악성 민원인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극히 일부인 학부모들이 단지 민원인이 아닌 선생님을,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떠나 한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아주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일이 있었다.


그날도 나는 변함없는 루틴의 일부로 사무실에 앉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다지 그렇게 집중을 하지도 않았는데 교무부장 선생님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은밀하고도 아주 조용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에게 서류 한 묶음을 전달했는데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교육청으로 공문 발송을 해달라고 말했다. 평소 (내 기준에) 까불까불 하고 장난기도 가득한 선생님의 사뭇 진지한 표정에 조금 긴장되기도 하고 많이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사안이 길레, 어떤 서류이길레 한 순간에 그를 이렇게 잠재운 것일까.


내가 굳이 그 서류들을 읽어보려고 한 것은 아니다. 나는 평소에도 딱히 심각한 일에는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 성향이기 때문에(심각하거나 진지한 일에 여운이 오래가는 타입이라) 이번 일도 최대한 감정을 빼고 사무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것이 안되었다. 왜냐면, 서류 묶음을 한 장 한 장 스캔하면서 내 눈에 뜨인 문구들이 하나같이 충격적이 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 죽여버리고 만다."


나의 눈을 멈추게 한, 그리고 의심케 한 문장이다. 당장이라도 스캐너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종이를 뽑아 내막을 읽고 싶었지만 절대 원본이 손상되면 안 되기에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무서운 문장들이 속수무책으로 나의 컴퓨터로 옮겨가는 과정을. 진술서 혹은 회의록과 같아 보이는 여러 장의 종이가 끝나니 이어지는 것은 해당 선생님의 정신과 진료 기록 및 담당 의사 소견서였다.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정확하게 저렇게 쓰여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스캔 작업이 모두 끝난 후에 나는 굳이 그 서류들을 다시 들춰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저렇게 쓰여있었다. 그 해당 선생님의 병명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면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저런 막말을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내 기준으로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도가 지나치는 언어적, 심리적, 신체적 폭행을 가했거나 혹은 학생들 사이의 선을 넘어선 폭력을 방관하거나 부추겼거나, 이제는 사라진 지 오래인 촌지나 그 외의 것을 요구했을 때와 같이 누가 봐도 명명백백한 잘못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굳이 사제관계가 아니어도 저런 말은 오가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굳이 묻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선생님이 안쓰럽다고 한걸 보면 팔이 안으로 굽는 걸 감안해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의 일은 아니었던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해당 선생님이 어떤 일로 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희망과 기대를 잃어버린듯한 분위기. 그리고 표정. 과연 그 선생님이 그 사건을 겪으며 잃어버린 것은, 빼앗겨 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본 선생님이었지만 (이미 학교에 출근하고 계시지 않았다.) 마음이 착잡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본다.


"학교에서 학부모의 위치는 어디인가?"


예전과는 다르게 요새는 학부모님들이 학교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많이 조성되어있다. 예를 들어 학교운영위원회의 학부모위원이나, 학부모회의 임원이나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학교에서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직접 나서서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만큼 학교는 학부모님들에게 열려있다. 하지만 모두가 으쌰 으쌰 해서 학생들에게 최선의 교육환경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이지, 사소한 일 하나하나 트집 잡고 민원 넣으라고 열어놓은 문이 아니다.


가끔 선생님들의 푸념을 듣다 보면 그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내가 들어도 어이가 없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너무 통제가 안돼서 큰소리로 몇 학년 몇 반! 하고 불렀는데 집에 가서 아이들이 선생님이 소리 질러서 너무 무섭다고 했다고 민원 넣고, 급식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가 나왔는데 배식하시는 선생님이 너무 조금 줬다고 학교에서 밥도 제대로 안 준다고 민원 넣고, 이런 건 좀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민원전화로 그치면 다행이다. 학부모님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교장실에서 따지거나 교무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정말 크게는 학부모들의 요구로 해당 선생님이 전근을 가거나 휴직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걸까?


사실관계를 잘 따져서 잘못한 쪽이 사과를 하고 시정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싸움이 되고 결국에는 누구 하나가 무너져야 끝나는 말 그대로 흙탕물 싸움이 되는 것이다. 정말 씁쓸해서 속이 다 쓰릴 지경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서 선생님들이 다 피해를 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도 아직 학부모는 아니지만 첫째는 유치원, 둘째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로서 왜 기관에 불만이 없을까. 얼마 전에는 우리 다온이가 미술시간에 쓰는 받침대를 들고 가다가 발이 꼬여서 넘어지는 바람에 그 모서리에 눈이 찍혔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런 일이 발생했으면 병원에 가는 길에라도 선생님은 엄마인 나에게 고지를 했어야 한다.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약을 타서 유치원에 돌아온 후에, 즉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에 전화를 한 행위에서부터 나는 솔직하게 열이 받았다.


하지만 해당 시간을 책임지고 있는 선생님의 반복된 사죄와 나는 우리 다온이 라온이 딱 두 명보는데도 아이들이 다칠 것 같은 상황이 수시로 벌어지는데 스무 명이 넘게 보는 선생님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잘 섞여 차분하게 통화를 끝냈다. 물론 아쉬움은 남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선생님의 늦은 고지와,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조금 더 세심하게 아이를 돌봐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바람까지.



아이들의 말은 다 진짜일까?


나는 우리 아이들의 말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이 말이 내가 우리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이기에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는 적당히 거름망을 두고자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온이가 "엄마 오늘 선생님이 나를 혼냈어 그래서 나는 속상했어 유치원 가기 싫어"라고 한다면 아이가 왜 혼났는지부터 확인을 해야 하고, 혹여는 진짜 혼났는지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혹은 자신의 어떤 말에 주어지는 부모의 관심이 좋아서 말을 과장하기도 하고 없는 말을 지어내기도 한다. 나도 내 새끼가 그럴 리 없다고, 내 아이는 정직하고 순수한 아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가 선생님들과의 통화 중에 낯뜨거웠던적이 몇 번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팩트 확인이 우선시되고 있다.


그러니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고 아이에게 들었을 때, 그 말만 온전히 믿고 득달같이 학교로 쫓아온다거나 전화를 걸어 선생님을 다그치기 전에 그 말이 진짜인지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팩트가 확인된 후에는 선생님과 학교 측에 정당한 요구를 해도 늦지 않는다. 그리고 정당한 요구를 할 때에는 그 사안에 관한 시정이나 사과가 필요하면 요구를 하면 된다. 감정적으로 담임선생님을 바꿔달라느니, 상급기관에 정식 민원을 넣겠다느니 하는 무리한 요구와 협박은 정말 지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사명감과 희망을 완전 놓아버린 듯한 모습을 보는 건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내가 봐도 마음이 아프다. 더 근본적으로 소위 말하는 이러한 "불미스러운"일이 학교라는 교육기관 안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속상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니 충돌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다. 이 불가피함에 굳이 누군가의 절망이 더 이상은 보태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부탁을 한 가지 드리려 합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8424

모두가 한 번쯤은 뉴스에서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명의 중학생이, 이 어린 생명들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더군요. 다시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청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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