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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21. 2021

방학이다! vs 방학이구나

방학이다. 여름방학. 학교가 참으로 조용하다. 조용하다 못해 정적이 흐른다.



올해 우리 학교에는 이런저런 큰일이 많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심신이 너무 지쳤는지 다들 방학을 입에 달고 사시더니, 드디어 방학이 온 것이다. "방학이다!" 소리 내 외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 얼굴에서 기쁨을 읽을 수 있었다.


같은 근무지에 있지만 이렇게 온도차가 극명하다. "교육공무원법 제41조 연수"를 내고 학교에 안 나오는 선생님들은 약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쉴 수 있어 좋겠지만 교육행정직에게 방학이란 그저 방학일 뿐이다. 우리는 계속 출근해야 하니까, 방학에도 업무도 여전하고, 교육청에서 점검 오는 것도 여전하고, 층층이 쌓여있는 서류도 변함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여름방학은 나름 여유가 있다. 우선 마음에 안정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 학기 중에는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선생님, 하루 종일 울려대는 전화기 소리, 그 너머로 들려오는 업자들 목소리, 주 1회의 관리자 회의와 그 외의 잡다한 회의들, 내가 전화해야 하는 수십 개의 번호들 덕분에 심신이 수시로 방전되지만, 방학은 다르다. 선생님들이 없으니 서로 부딪히거나 머리 맞대고 고민할 일도 거의 없고, 예산 집행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업자들 상대할 일도 적고, 교장/감 선생님께서 교대로 나오시니 관리자 회의도 없고, 전체 회의는 더더욱 없으니 이것만으로도 천국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방학이라고 느껴지는 건 바로 출퇴근 길이다. 선생님들이 이렇게도 많았던가? 하고 느낄 정도로 도로가 한가하다. 학기 중보다 10분 늦게 나와도 지각을 하지 않고, 학기 중보다 10분 늦게 나가도 평소처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침에 여유가 있냐고? 그건 아니다. 10분 늦게 나가도 되면 10분 더 늦잠을 자게 되니까. 퇴근시간에는 조금 여유가 있다. 학기 중에는 5분만 늦게 나가도 차가 엄청나게 밀려서 4시 30분만 되면(우리 학교는 4시 40분 퇴근) 마음이 초조해져서 하던 업무를 마무리 못하거나, 아니면 6시 넘어서 아이들을 데려갈 생각을 하고 아예 그냥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업무를 마무리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가야 했는데, 이제는 10분을 미적거려도 평소처럼 도착할 수 있다.


사람 심리가 참 이상한 게 4시부터는 퇴근시간이 다가오니 기분이 엄청 좋은데, 막상 4시 30분이 되면 책상이고 컴퓨터고 정리된 게 하나도 없어 꼭 40분을 넘어 5시는 되어야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고, 타이밍이라는 게 웃기게도 꼭 퇴근시간 되면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다. 정상적인 업무시간에는 다섯 번을 전화해도 안 받던 업체가 늘 4시 30분에 전화를 한다.



그래도 방학은 좋다. 학교가 조용하고 사무실이 조용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일을 할 수 있다. 일을 하다 커피 한잔을 해도 정말 안정된 마음으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학에도 복병이 있으니 바로 점심이다. 방학에는 급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전에 선생님들 "일직"이 살아있을 때에는 일직으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주로 밥을 사셨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게 당연하겠도 아니지만 그런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일직 개념이 없어졌기 때문에 사시는 분도 있고 안 사시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관리자분들이 한 번씩 사면 그 후로부터는 각자 알아서 돈 내서 먹는 것이다.


사실 행정실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기 때문에 일정 금액을 내서 그 금액에서 차감을 하고, 방학 끝나면 정산을 하면 되는데 선생님들은 하루나 이틀 정도 나오기 때문에 참 위치가 애매해진다. 그래서 어쩌면 한 번씩 사셨을 수도 있지만 이렇든 저렇든 밥을 사 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다.


우리 행정실은 이번에 만원씩 걷어서 컵라면과 햇반을 샀다. 아직까지는 관리자분들이 사시고, 출근하시는 선생님들이 사셔서 개시는 안 했지만 당장 다음 주부터 개시할 예정이다. 다른 행정실은 어떻게 하나 문득 궁금해진다. 다들 비슷비슷하겠지.



그리고 방학에는 복무를 유연하게 쓸 수 있다. 아무래도 학기 중에 연가를 쓰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눈치가 보이기도 하지만 방학에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작년부터는 코로나19 덕분에 휴가를 안 쓰는 분들이 더 많지만 그 전에는 여름휴가를 다녀온다고 연가를 쓰시는 분들이 많았다. 공무원이라는 직종의 장점이 방학에 유난히 빛나는 순간이다. (물론 모든 건 속한 기관의 분위기와 상사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방학에만(우리의 복무는 1월부터 12월로 사용기간이 정해져 있고, 회계연도는 3월부터 다음 연도 2월까지이다. 초짜 공무원들은 절대 이것을 헛갈리면 안 된다. 연가는 1월부터 리셋되는데 회계연도랑 헛갈려서 내년 2월까지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써보지도 못한 작년 연가가 허망하게 날아가는 수가 있다. 내 권리는 내가 찾아야 한다. 잊. 지. 말. 자.), 그것도 여름방학에만(왜냐하면 대부분 겨울방학은 1월이니까) 쓸 수 있는 자기 계발 휴가도 좀 써보고, 장기재직 휴가도 좀 써봐야 할 텐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모르겠지만 직원분들께는 알아서 잘 챙겨서 쓰시라고 말씀드렸다. 말씀드리자마자 칼같이 내일 자기 계발 휴가 올리신 주무관님. 실천력 무엇?ㅎㅎ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도 선생님들처럼 복무 내놓고 출근하고 싶지 않다. 코앞에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왕복 2시간이니까 더더욱. 하지만 이만한 것도 어쩌면 내가 교육행정직이니까 누릴  있는 여유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여겨야겠다. 항상 모든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최선이  수도 최악이  수도 있으니까.

퇴근길 하늘. 정말 파란하늘에 하얀구름이었는데 .. 왜이렇게 우중충하게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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