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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pr 29. 2021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43

그런 날이 있다. 유난히 출근길에 마음이 무거운 날. 바로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둘째를 카시트에 태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내리자고 말했는데, 싫단다. 그전에도 싫다는 표현은 좀 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카시트에서 내려주려는데 내 손을 뿌리친다. 뿌리치는 손을 나 또한 뿌리치며 아이를 억지로 번쩍 들어 올렸는데 그때부터 아이의 버둥거림이 시작되었다. 싫다고 싫다고 악을 쓰며 온 힘을 다해 내 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이와, 지각하지 않기 위해 일정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나와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어린이집 문 앞에 간신히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바닥에 대짜로 누워버렸다. 오 마 이 갓. 아이를 마중하러 나오신 선생님도 꽤나 당황하신 표정이다. 내 눈치를 슬쩍 보며, 양해를 구하며 선생님이 꺼내신 최후의 보루는 마이쮸. 허나 아이에겐 1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두 여자 성인이 아이를 번쩍 들어 어린이집에 들여놓고 나니 닫힌 문 너머로 한층 더 커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속상하고 미안하고 착잡한 마음에 한동안 그곳에 서있었다.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1분 1분 출근시간은 다가오고 있는데, 아이의 울음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고서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원장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원장 선생님도 갓 출근을 하셨는데 아이가 너무 울고 있어서 당황하셨다고 했다. 왜 갑자기 이렇게 심한 등원 거부가 온 건지 모르겠다며 한동안 지켜보고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에 가까스로 액셀을 밟았다.



운전을 하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기분은 우울했다. 무엇을 위해 나는 이 길에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사실 이 질문은 굳이 아이가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어떤 불합리하거나 비합리적인 일이 일어나면 드는 의문이기에 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얼음 한 개를 입에 물고 와그작와그작 씹고 나서 한숨을 내쉬니 시리기가 그지없다.


과연 이상적인 가정이란 어떤 가정일까?


우리 아이들은 일찍부터 기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온이는 13개월, 라온이는 10개월. 다온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해서 1년 동안 정말 온갖 병치레를 다하곤 했다. 폐렴, 수족구, 독감, 중이염 등등등.. 그나마 라온이는 코로나 19 덕분에 손도 엄청 신경 써서 닦아주고 마스크도 꼬박꼬박 쓰니 잔병치레는 좀 덜하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비염 덕분에 환절기나 지금과 같이 봄에 흩날리는 송화가루나 꽃가루에는 어김없이 콧물이 빼꼼 얼굴을 내민다. 콧물로 그치면 좋으련만, 콧물이 나면 중이염이 오고 중이염이 오면 열이 나고, 열이 나면 폐렴까지. 지금도 콧물로 시작된 감기가 기침으로 이어져 항생제를 6일째 먹고 있다.


단골병원에서는 우리 집 상황을 알면서도 늘 같은 멘트로 가슴을 쿡 찌른다.


"애기가 안 아프려면 기관에 안 보내야 해요. 단 며칠이라도 집에 있어야 좀 들하지."


꼭 "네가 회사 다닌다고 이 어린것을 기관에 보내니 애가 약을 달고 살지"라고 들린다. 자격지심에 죄책감이 합쳐져 한껏 비꼬아진 마음의 소리이다. 맞는 말이다. 다온이도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는 코가 한번 막히기는 했어도 감기 한번 안 걸렸다. 라온이도 아마 어린이집을 안 보냈으면 지금처럼 약을 달고 살지는 않겠지. 결국 지금의 사회에는 맞지 않아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엄마가 집에 있고 아빠가 나가서 일을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걸까? 아니면 아빠가 집에 있고 엄마가 일을 하는 가정이라도..


그런데 나는 집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육아 우울증을 정말 세게 앓았던 사람이다. 이건 아이가 어리고 어리지 않고의 문제도 아니고, 첫째 아이 둘째 아이의 문제도 아니다. 다온이로 육아휴직을 했을 때나, 라온이로 육아휴직을 했을 때나 똑같았다. 주변 상황에 따라 강도는 달랐지만 어김없이 육아 우울증은 나 스스로를 무기력하고 아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뛰쳐나왔다. 다시 학교로. 학교에 온다고 엄청나게 의욕적이고 나 자신의 가치가 한껏 고양되는 것 같지는 않아도 그래도 일을 하고 있고, 내 자리가 있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자체가 우울함을 벗어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참 속상한 일이다. 육아가 천성적으로 안 맞는 내 탓을 해야 할까, 유독 많이 아픈 우리 아이들 탓을 해야 할까.



어제부터 잘 버티던 다온이도 콧물이 나고 기침이 난다. 이미 콧물약을 3일 먹은 터라 괜찮아지는 듯하더니 결국 기침 증상까지 나타나 다시 약을 타 왔다. 둘이 붙어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씁쓸한 마음은 어떻게도 추단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약 잘 먹으면 티브이 하나 보여준다는 말에 꿀꺽꿀꺽 잘 넘기고, 또 약 잘 먹으면 마이쮸 하나 준다는 말에 인상을 써가면서도 혼자서 약을 쭉쭉 먹는 아이들이 귀엽고 기특해서 위안을 받는다. 계속 콧물이 흐르고 코가 막히고 목이 아파서 컨디션이 좋지 않을 텐데도 어린이집, 유치원에 데리러 가면 세상 예쁜 미소로 날 맞이해주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씩씩하게 밥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물 나게 고맙다.


이 시기도 곧 지나갈 것이다. 머지않아 아이들은 약을 그만 먹게 될 것이고 지지고 볶는 일상 속에 나 역시도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잊게 되는 때가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이 또 한 번 덜컹하고 굴러간다.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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