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많은 책을 다 읽었을까?
팟캐스트로부터 시작된 책이 벌써 두 번째다. 팟캐스트의 "ㅍ"자도 모르는 내가 두 권이나 팟캐스트로 인해 이 세상에 빛을 본 책을 만났다는 건 이쯤 되면 한번 들어보라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나는 옛날 사람 이다. 전혀 찾아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혹여나 한 권 더 팟캐스트 책을 만나게 된다면 진짜 찾아볼지도 모른다.
오늘의 책은 바로 이 책이다. 혼밥 생활자의 책장. 읽고 싶은 수많은 책들 중에 그나마 쉽게 읽힐 것 같아서
골랐는데 읽기는 슥슥 읽혔지만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한 절대 가볍지 않은 책이다.
*그리고 그동안은 감명 깊은 구절이나 문단은 사진을 찍었는데 이제 리뷰를 적으며 함께 기록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첫 시도라서 그런지 찾아보기표를 아무렇게나 붙여놔서 모양새가 볼품없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양한 책을 주제별로 소개해준다는 것이다. 나처럼 게으르지만 책은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 가득 담겨있다. 그렇지만 마냥 반갑지는 않다. 왜냐면 미리 말했지만 책은 읽고 싶지만 우리는 게으르기 때문에.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한계가 있지만 책이 쌓이는 데는 아무런 제한장치가 없으니까.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굴고 있다. (중략)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딸애와 나 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난 매일 본다." -딸에 대하여
나는 동성애자들을 이해하지도, 혐오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가장 잔인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혹여나 내 주위에 동성애자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마치 우주 속 다른 별나라 얘기처럼 들어도 아무 감흥이 없다. 그래서 위의 글이 실려진 챕터를 읽으면서도 그냥 덤덤하게 읽었다. 하지만 그것이 엄마의 관점이 되자마자 갑자기 속이 답답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 우리 딸이 그렇다면...?"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굳이 동성애자라는 내 삶을 뒤 흔들만한 사건이 아니어도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딸에 대하여)라는 소설 속 엄마가 말한 것처럼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굴고 있는"순간을 마주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사춘기가 그럴 것이고, 진로를 정할 때에도,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혹은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할 때에도), 가족계획을 세울 때에도.. 더 이상 지금처럼 내가 아이들 세상에 전부, 혹은 중심이 아니고 변두리에서 들릴지 안 들릴지도 모를 외침을 계속해서 시전 할 존재가 되었을 때 나는 당연한 순리인 듯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무런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딸과 레인의 관계,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 이 아이들에 의해 내가 감당해야 할 세간의 조롱, 겨우 지키고 있는 나의 자존심, 사회적 위치 같은 것들이 딸에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이 두려움을 누구와 나눌 수도 없다. 온몸이 떨리고 무릎이 꺾이기 직전인데 이 세상 누구에게 자신의 곤란을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딸을 완전하게 원망할 수도 없다. 제발 나를 위해 달라져주길 애원했지만 그 아이는 자신은 달라질 수 없다고 말한다." - 60p
비록 소설이지만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 엄마를 어떡하면 좋을까.." 그리고 나 스스로 지은 죄를 알기에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엄마와 정말 살벌하게 싸웠던 시절이 있었다. 교회를 안 간다는 나와 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엄마, 신이 이런 모습을 원하진 않았을 텐데 주일 아침마다 엄마의 날 선 목소리와 끝내는 교회로 질질 끌려가는 나의 모습이 반복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싸워서 결국 뭐가 남았나? 싶지만 조금은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아직도 내가 교회로 돌아오길, 신에게 돌아오길 바라는 엄마와 이제는 전혀 돌아갈 생각이 없는 나. 아마 우리 엄마도 생각했겠지. "나의 신념이 딸에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제발 나를 위해 다시 믿음을 회복하길 원했지만 그 아이는 자신은 달라질 수 없다고 말한다."
막상 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기록을 하다 보니 작가는 이 책에서 최대한 많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대중의 시선밖에 있든 시선 안에 있든 논란이 되는 것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책이라는 수단으로 꽤나 잘 대변했다고 느껴진다.
"우리 사회 거의 모든 사람이 장애인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에 감동을 느끼지만, 살아있는 장애인의 몸이 이웃에 얼씬거리는 순간 집값이 떨어진다고 믿는다"는 김원영 씨의 말처럼, "아이들은 참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날 방해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는 것이다. -141p
노 키즈존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 키즈존, 즉 아이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을 말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 번은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우선 우리 아이들이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인지 뒷자리에 앉은 여자 청년 두 명이 우리를 향해 사나운 눈길을 보냈을 때 나는 너무 창피하고 민망해서 아이들 입을 막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나오면서 생각했다.
"니들이 비혼족이나 딩크족이 아닌 이상 니들도 엄마가 될 거야. 니들이 엄마가 되었을 때는 니들 같은 사람 만나지 마라. 혹여나 재수가 없어 니들 같은 사람을 만나면 꼭 니들이 우리에게 가볍게 던진 그 사나운 시선을 기억해라."
아이들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우리 모두가 지쳐서일까? 아이들에게 점점 각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가 없는 사람이든 아이가 있는 사람이든 아이이기에 모르는 사회적 예절이나 규범에 대해, 아이이기에 당연한 떼쓰고,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고 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 쉽게 비난하고 그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다. 마치 자신들은 아이인적이 없었던 것처럼, 혹은 자신들은 부모가 아닌 것처럼, 부모가 안될 것처럼, 아니면 자신들의 부모는 자신들을 그렇게 안 키운 것처럼. 대부분의 부모들은 나의 아이가 세상에 민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 욕도 먹을 만큼 먹었고 제한도 받을 만큼 받았으니 부모들의 노력은 언제쯤 알아줄는지 나는 묻고 싶다.
"보통 사람들은 동화는 할 수 없는 게 많은 아이가 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사실 동화는 할 수 있다고 믿는 주인공이 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이야기예요. 성장한다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일어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읽은 책들에서도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너무나 아프게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 관문을 통과하기 때문에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이 마냥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쓸쓸하지만 멋진 얘기들인 거죠." -208p
작가의 말이다. 200페이지가 넘게 읽고 나서야 작가의 이름이 "김지은"인 것을 알았고, 그녀의 직업이 프로듀서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고르고 읽은 책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고른 책 치고는 월척이라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지만 읽다 보면 어린이 동화가 많이 언급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읽혀줘야지, 할 만큼 기억에 남거나 따로 기록해놓은 책은 없지만 사실 굳이 동화가 아니 더라도 책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사회적 지식인들이 동화를 주제로 깊은 사유를 나누는 행위가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특히나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살면서 몇 번은 들어 본말 같은데, 그렇게도 열심히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까맣게 잊어버린 말이기에 갑자기 뒤통수를 쿵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책을 통해 희망만을 심어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물론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에도 가지 않았고,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기에 "자신의 한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앞으로 아이들이 커가면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실패와 좌절에 대해 어떻게 현명하게 알려줘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제 다 기록했으니 찾아보기표를 한 장 한 장 떼 본다. 주위에 비혼주의자들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 혼밥 생활자의 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