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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Sep 17. 2021

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라는 책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워낙 유쾌한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라 안 읽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학교 선생님을 통해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의 "오베라는 남자"와 그의 신작 "불안한 사람들"을 읽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오베라는 남자"의 책 표지는 마음에 안 들었고, 읽어야 할 책은 쌓여있었지만 두 권 다 내 책상에 곱게 놓아둔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불안한 사람들"을 집어 들었다.



"부모로서 제일 끔찍한 게 뭔지 아니? 최악의 순간을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는 거야. 백만 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공원에서 아이가 그네에 머리를 맞았을 때 핸드폰을 들여다본 부모로 영원히 낙인이 찍히지. 며칠 동안 아이한테서 눈을 뗀 적이 없어도 문자 메시지 하나 확인한 순간 그동안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없었던 일이 돼. 어렸을 때 그네에 머리를 맞지 않았다고 상담을 받는 사람은 없잖아. 부모는 항상 실수에 의해 규정되지"

-45p


내가 엄마가 되어서 그런지 모든 책을 볼 때 부모 얘기가 나오면 더 집중력이 높아진다. 이 부분을 보는 순간 요즘 말로 정말 극공감을 했다. 새삼 부모라는 위치가 무겁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퇴근을 늦게 한 날 우리 남편이 애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가 다온이가 그네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크게 다친 건 아니었는데, 그때 그 놀이터에 같이 있던 다온이 친구 엄마가 나에게 이런 톡을 했다.


"다온이가 떨어졌는데, 너한테 혼날 거라고 말하고 가시더라"


흠. 갑자기 우리 남편이 가여워진다. (남편 미안해) 그동안 우리 남편도 아이한테서 눈을 뗀 적이 없어도 그 순간 못 봤다는 이유로 나에게 엄청난 구박을 받아왔으니... 이제 안 그래야겠지만, 애가 다치거나 아픈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속에서 화가 욱! 하고 올라온다. 애를 키우는 건 정말 녹록지 않다.


"우리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우리를 믿으니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아느냐고. 그래서 남자는 남들을 따라 했다. 아는 척했다. 아이들이 응가는 왜 갈색이고,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북극곰은 왜 펭귄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아는 척했다. 아이들은 나이를 먹었다. 가끔 그가 그걸 깜박하고 아이들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 때가 있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열두 살짜리에게 네가, 어렸을 때는 내가 너무 빨리 걸어서 네가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고, 그때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손바닥에 닿았던 너의 손 끝. 내가 얼마나 많은 일에 실패했는지 네가 아직 몰랐던 그때. - 중략 - 그런데 잠시 후에 그가 뛰어내렸다."-47p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물론 육아가 힘들어서는 아니다. 경제상황, 부동산의 급변, 등등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아빠로서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가 구구절절이 말하고 있는 건 결국 자식 이야기니까. 이토록 애처로울 수 있을까. 정말 짠하다 못해 불쌍해지기까지 한다.



"물론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보이는 만큼 행복하다면 그렇게나 ㅁ낳은 시간을 인터넷에 쏟아붓지 않을 것이다. 하루의 절반을 자기 사진을 찍는 데 바치는 사람의 하루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94p


셀카를 많이 찍는 것도 병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내보이고 싶은 건 인간의 당연한 욕구 아닐까?


나는 요새 의식적으로 내 사진을 찍는다. 어느 날 앨범을 봤는데 다 애들 사진이고 남편 사진만 잔뜩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내가 찍는 사람이다 보니 남편도 자연스레 사진 속에 있지만 나는 없다. 그래서 가끔 일부러 찍어달라고도 하고 한껏 이쁜척하며 사진을 찍는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엄마 아빠들도 자기 사진도 가끔 찍기를 바란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우리도 중요하니까.


"누구나 어렸을 때는 얼른 어른이 돼서 모든 걸 직접 결정하고 싶어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게 가장 힘든 부분임을 깨닫는다. 항상 의견이 있어야 한다는 것, 어느 당에 투표하고 어떤 벽지를 좋아하며 성적 취향이 어떻게 되고 무슨 맛 요구르트가 자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낼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어른이 되면 시종일관 시시때때로 선택하고 선택을 당해야 한다." - 268p



이 책은 479p에 달하는 장편소설이다. 268p이후에도 감명 깊은 구절은 많았으나 그저 책 읽는 것에 집중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참 수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인 스토리와 상관없는 작가의 사념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에 도통 집중도 되지 않고 후회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워낙 장편이니까 적응이 돼서 끝까지 잘 읽어냈다. 그런데 부작용은 이 책 덕분에 "오베라는 남자"를 읽기 싫어졌다는 것. 작가의 글 쓰는 성향은 안 바뀌었을 테니까.


수많은 참새가 짹짹거리듯 수다스러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 오베라는 남자를 재밌게 읽었다면 추천, 가벼운 소설을 좋아하는 분도 추천(하지만 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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