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Sep 23. 2021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낭만은 어디 있나요?

제목에 혹해서 선택한 책이었다. 얼마나 멋있는 문구인가.

게다가 배우 "정우성"이 인터뷰 중에 한 말을 가져다 썼다하니 상상해본다.

정우성이 웃으며 이 말을 했다... 진짜 영화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 아니던가.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낭만은 어디 있나요?


"아마도 당신은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있으리라 믿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학교와 부모는 그렇게 가르쳤다. 어쩌면 당신의 서재에는 맬컴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가 꽂혀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선천적인 재능보다는 1만시간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책이다. 정말?


잭 햄브릭 미시간주립대 연구팀은 노력과 재능의 관계를 조사한 88개 논문을 대상으로 연구한 적이 있다. 여기서 나온 결과는 놀랍다. 공부에서 노력한 시간이 실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겨우 4퍼센트였다. 이 수치를 보면서 나는 아침이고 밤이고 코피를 흘리며 공부를 하는데도 언제나 성적이 형편없이 낮던, 그래서 나를 종종 원망스럽게 쳐다보던 고3시절 친구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생각났다.


게다가 음악에서 노력이 미치는 영향은 21퍼센트, 스포츠는 18퍼센트였다. 결국 선천적인 재능이 중요하다는 연구인데, 이쯤에서 나는 또 모차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리의 비명이 떠오르는 것이다.


"신이시여!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104p


이 책이 낭만이 아닌 거리감으로 다가온 이유가 이 문단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책의 전반부에서 자신의 능력, 자산을 내보이는데 전혀 망설임이 없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열등감으로, 비참함으로, 혹은 반발심으로 다가갈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건 어쩌면 자신감일수도 있고 작가 본인이 말한것 처럼 솔직함에 대한 너무 무모한 믿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는 작가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안다고 해도 다가갈수도 없을 명품들을 나열한 많은 페이지들 보다도 이렇게 객관적인 것들을 내보이며 그 사이사이에 자기에 대한 과시를 살짝 껴넣은 이런 문단들이 더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쩌면 나는 작가가 언급한 고3시절 친구와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단락을 읽으며 복잡한 마음을 느낄것이다. 더군다나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면서 출간을 꿈꾸는 분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묘하게 안도감도 느껴지는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재능은 주지 않고 욕망만 준 신을 원망하면서도, 그런 신덕분에 어쩌면 나의 실패를, 나의 좌절을 합리화 할수도 있으니까.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문학이 하는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그 모든 것이 이미 내가 겪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 사람의 진짜 인생은 문학 속의 인생과는 다르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내 경우에는 그래서 픽션으로부터 논픽션의 세계로 옮겨가고 말았다. 가상의 인생에 웃고 눈물짓는 것을 멈춘 채, 실존하는 세계의 이야기에 더 웃고 눈물짓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182p


재미없는 어른이라는 표현이 왜이렇게 서글픈걸까. 요새 내가 아이들을 보며 많이 느낀 감정이라 그런것만 같다. 아이들은 비온 뒤 물웅덩이에 즐거워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한숨이 난다. 씻기고 빨아야 하는 행위가 나를 짓누르는 것이다. 아이들은 종이컵에 물을 받아 거실 한복판에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것을 행복해하지만 나는 언제 저것이 엎어질까 걱정하며 긴장하며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진짜 엎어지면 신경질적으로 닦으며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진작 하지 못하게 했어야하는데.. 후회도 한다.


모든것이 귀찮고, 모든것이 버겁다. 차라리 재미없는 어른이라고 하면 양호한것일까?

그저  주위가 조용했으면 좋겠다. 휴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정말 먹지도 않고) 누워서 티비만 멍하게 봤으면 좋겠다. 그러다 슬슬 나가서 적막한 카페에서 가벼운 책이나 한권 읽으면 행복하겠다.


난 오늘 결국 진흙탕에서 뒹굴은 아이들에게 "엄마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고 소리쳤다. 미안했지만 미안하지 않다. 가끔 딸래미가 나한테 우리 돌보느라 힘들지라고 말하면 그 모습이 짠하지만 굳이 아니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다 알것이다. 내가 웃으며 아니야, 엄마는 너희들이 있어 행복해, 라고 말해도 평소 지친 표정, 쳐진 어깨, 수시로 호소하는 두통과 복통만으로도 아이들은 다 알것이다. 우리에게 애써 보여주는 행복의 가면조차 엄마의 노력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저 아이들이 진짜 이뻐보일때 마음껏 표현하고, 아이들과 행복할 때 힘껏 드러내려 노력한다. 그렇지 않을때는 굳이 꾸미지 않는다. 나의 방법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최선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픽션을 읽는다. 울고 웃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감탄하고 여운을 남긴다. 재미없는 어른이지만 재미있는 책은 아직 놓지 않았다.


"에어컨과 티브이와 냉장고와 식기세척기와 자동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쓸모있는 것들로만 둘러싸인 삶이란 얼마나 냉정하고 차가운 것인가. 삶이란 게 원래 수많은 쓸모없는 것들과 몇몇 쓸모있는 것들에 의해 굴러가는, 아주 쓸모없기도 하고 쓸모 있기도 한 것이 아니던가?" -194p


아주 맞는 말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작가가 이 챕터에서 자신의 재력을 뽐내지만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이 책에

수많은 브랜드가 나왔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있다. 작가가 말하길 삼다수의 2배 가격이라는 프랑스 물 "에비앙" 에비앙을 냉장고에 가득채우고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배알이 꼬이고 싶지 않지만 꼬인다. 이 책을 정말 낭만을 찾고 싶은 사람이 선택하는 재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역시 읽어서는 안된다.


작가의 저 문장은 너무 훌륭한데, 왜이렇게 화가 나는걸까, 195p에 또 브랜드를 줄줄이 나열해서 그렇다는걸 굳이 부인하지 않겠다. 60대에 까르띠에 탱크를 차고(시계인가? 도대체가 브랜드도 모르겠고, 브랜드를 모르니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어서 몇번 책을 덮어버릴 뻔했다, 그나마 작가의 문장들이 일부 매력적이라 완독이 가능했다. 책이란건 전문서적이 아닌이상 불특정 다수가 이해할 수 있게 써놔야 하는거 아닌가? 에르메스라는 브랜드도 안지 얼마 안된 나같은 사람은 어쩌라고) 에르메스가방을 든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책 표지에는 이 책을 읽으면 작가를 사랑하게 될것이니 조심하랬는데 글쎄. 물론 내 아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다면 엄마로서 엄청 행복하기는 하겠다.


"더는 모피를 구입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참고 있다. 여전히 라쿤털이 달린 야상을 구입하고 싶지만 , 그것이 불행한 방식으로 도살당한 동물의 털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참는다. 우리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일순간에 모피를 벗어 던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은밀하데 솟구치는 입고 싶은 욕망을 꾹꾹 누르고 참아내는 것이다. 나는 모피를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모피를 참는다. 그리고 욕망을 참아내는 것이 바로 인간 지성의 승리라고, 아주 거창하게 생각한다."-268p


작가는 지금도 모피를 참고 있을까? 그렇다면 박수를 보낸다. 나는 얼마전에 의류폐기물에 대한 칼럼을 쓴적이 있다. 평소에도 옷 충동구매를 안하려고 노력했지만 글을 쓴 이후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텐데도 혼자 자꾸 의식하게 된다. 글이라는 것이 새삼 무겁고 무섭다는걸 느낀다. 글은 나 스스로를 향한 선언이며 내 생각이 형태를 가지고 세상에 남겨지는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감옥과도 같다.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하니 굳이 내가 책 한권에 이렇게 흥분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난다. 작가가 그런 윤택한 삶을 사는 것에 나는 반기를 든 것이 아니다. 단지 낭만이라는 제목 안에 공감이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배려가 없었던건 아닌가 한다. (나는 까르띠에를 검색해보려다 말았다. 편의점에 가면 에비앙 물의 가격을 일부러 찾아볼 것 같다. 편의점에 안팔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든다. 그나마 에비앙은 정말 단어가 어렵지 않아 기억이 나지만, 다른 브랜드는 너무 생소해서 마치 외계어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일본문학을 즐겨 읽는 사람이지만 이 책에는 정말 일본문화에 대한 언급이 많다. 작가의 직업상 다양한 문화에 많이 노출될 수 밖에 없지만 이상하게 자꾸 거부감이 들었다. 내 마음그릇, 아주 간장종지만해서 큰일이다.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 하지만 나는 명품에 관심 많고, 잘나가는 40대(?) 독신남의 삶이 궁금하다면 읽어봐도 괜찮을 책.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한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