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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Nov 03. 2021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친구가 아니었음을 깨달은 당신을 위한 관계 심리학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다. 눈길을 끌기에 아주 좋을 만큼. 평소에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서는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요 근래 일도 너무 많고 컨디션도 너무 좋지 않아 깊게 사유해야 하는 책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 보니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실제 클리닉에서도 "감정이 결정을 내리게 하지 마세요"라는 말로 환자의 숨 고르기를 주문한다. 감정이 솟구칠 때 결단을 내리기보다 '내 딴에는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야'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감정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감정을 존중하되 내 행동의 결정은 이성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또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 29p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참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눈에 쏙쏙 들어오는데 마음이 자꾸 이 진리를 퉁퉁 튕겨내는 기분이랄까. 특히나 인간관계에서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나, 나의 호의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이성이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에는 만리장성과도 같은 벽이 쳐지는 걸 느낀다. 나 혼자만의 오해일 수 있는데, 그저 그 사람은 바빴거나 여유가 없었을 뿐 본심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 나이 어느새 서른 중반. 언제까지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관계에 절망하고 절망해야 할까. 끝이 없는 싸움에 이렇게 한 번씩 너무 지친다.


인생은 좋은 사람을 붙잡지 못하는 것보다 보내야 할 사람을 "제때"보내지 못할 때 더 크게 훼손되는 법이다. - 62p


내가 요새 출근길에 듣는 노래가 있다. MC스나이퍼의 "신의 시" 그리고 "뒤로 가는 남과 여"라는 노래이다. 둘 다 이별을 주제로 한 노래인데 애절한 그의 목소리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처절한 가사가 만나 이별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가 들어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그거 알아 차가 없던 난 버스를 탈 때마다 자릴 만들어야 됐어 돈이 부족했던 난 기념일 때마다 온갖 정성을 쏟아야만 했어 내가 가진 걸 다 바쳐도 그에 비해 난 언제나 수준 미달 가끔 던진 말에 마음 다쳐도 못 들은 척 장난친 거 정말 미안 소박해서 행복했던 그래서 더 많이 사랑했던 그때가 그리워서 그때 널 그리면서 회상해도 돌아갈 순 없어 이렇게 너에게서 버려지는 순간에도 내가 정말 미친 듯이 견딜 수가 없는 건 날 우습게 보는듯한 그의 시선 말해 뭐해 나 같은 건 잊어 - 뒤로 가는 남과 여 中]


아마 이 가사의 주인공은 보내야 할 사람을 제때 보내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제때 보내지 못한 사람을 한 명씩은 가슴에 묻고 살아가지 않을까. 내가 그렇듯 너도 그렇고, 네가 그렇듯 내가 그럴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쓸 때도 자기 보호가 필요하다"

간혹 "치사하게 나한테 이 정도도 못쓰니?"라며 상대를 궁지로 모는 사람도 있는데 이때도 할 말 못 하고 꿍하니 돌아오지 말고 "나에게 이 돈은 이 정도 의미가 있어"라고 당당하게 맞받아치고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했음에도 상대가 화를 내거나 당신의 기준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는 돈문제로 얽히는 일을 만들지 마라. 가령 지금까지 돈을 모아서 누군가의 선물을 사거나 축의금을 내왔다면 이후에는 각자 따로 하는 식이로 바꾸는 것이다. 이 정도 행동을 취한다고 해서 둘 사이가 껄끄러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의 페이스에 끌려다니르라 속앓이만 하는 것이 둘 사이를 깨뜨리는 망치가 될 수 있다.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자신과 방향성이 다른 대상과는 '돈문제와 거리를 두는 편'이 훨씬 이롭다. -67p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과 함께 작가가 어쩌면 너무 이상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말대로 "나에게 이 돈은 이 정도 의미가 있어"라고 말하는 순간 어색해질 관계는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많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돈보다는 우정, 사랑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씩 사고방식이 달라져서 나도 모임을 하면 누가 산다는 것보다는 당연히 총액을 인원수로 나눈 금액을 각자 부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아직도 나의 윗세대나 혹은 같은 세대여도 뭘 돈을 이렇게 따져가며 내냐고 그냥 내가 낸다고 하는 사람도 못지않게 많다.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를 꼭 잘못되었다고 뜯어고쳐야 할까?


그저 모든 건 과유불급하지만 않으면 된다. 돈 쓰는 것 가지고 너무 생색을 내거나, 작가의 말처럼 강요를 하지만 않는다면 각출을 하든 누가 한턱을 내든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몸은 나이를 먹어도 감정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남편과 자녀도 있을 텐데 왜 친구에게 집착하느냐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가정이 있더라도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또래 친구는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아내,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에 치여 살다 보면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멀어지게 되고 순수하게 교감할 수 있는 새 친구를 사귈 여력도 마땅치 않다." - 105p


언젠가 누군가 대화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직장생활이 절대 녹록지 않고 나도 항상 퇴사를 꿈꾸지만 한편 생각하면 내 삶의 중심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규칙적인 삶(출근과 퇴근이 있는)의 의미도 있었지만 작가가 말한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직장이기 때문이었다.


직장동료들과 물론 기싸움도 하고, 진짜 싸우기도 하고 혹은 여러 가지 감정적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도 많지만 그만큼 우리는 커피 한잔을 하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험담을 하며 감정을 털어내기도 한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상황들이다. 물론 엄마가 되면서 알게 된 엄마들이나, 학창 시절 친구들도 있지만 그들과 매일매일 교류하는 건 사실상 불가하다. 하지만 직장은 출근을 해야만 하는 곳이고 직장동료들 또한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엄청나게 진중한 관계나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는 없지만 작가 말대로 나이를 먹지 않는 나의 감정을 시시때때로 채워줄 수 있을 만큼의 관계는 맺어진다. 이것이 내가 조기복직을 한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른의 대화가 그리워서, 어른의 정서적 교감이 그리워서.



만약 누군가 "도대체 가족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엄마는 엄마의 짐, 아빠는 아빠의 짐, 형제자매는 그들의 짐, 그리고 나는 나의 짐을 메고 함께 길을 가는 사이라고 답하겠다. 자기 몫에 맞는 짐을 짊어지는 것. 이것이 가족의 진정한 의미이며 화목으로 가는 최우선 조건이다. - 122p


브런치 안에는 가족의 짐을 같이 지고 가느라 힘든 분들의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가족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누군들 가족의 짐을 나눠갖지 않았겠냐만은 글만 봐도 당장이라도 그 짐에 깔려버릴 것만 같은 분들이 너무 많다. 그것은 내가 속해있던 가정이나, 내가 꾸린 가정이나 구분하지 않고 모든 가족을 포함하며 그 안에서 생성된 모든 짐을 가리킨다. 이제는 내려놔야 한다. 아직 나 역시도 내려놓지 못했지만 조금씩 내려놓고 싶다. 나의 짐을 메고 가기에도 삶은 충분히 힘들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의 짐을 누군가에게, 혹은 당신의 짐을 나에게 두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는 건 일종의 공격이다."

누군가 당신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고 있다면 분명히 알아둬라. 그 사람은 당신을 좋은 친구로, 좋은 가족으로, 좋은 동료로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을 쏟아내는 게 아니다. 일종의 공격이다. 이 사실을 명화갛게 인지하기만 해도 맞는지도 모른 채 멍이 들고 상처가 벌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229p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문단을 읽었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는 사람이 없거나 혹은 맞는지도 모르는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득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평소에 친밀할수록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한다. 시댁 얘기도 하고 아이들 얘기도 하고 남편 얘기도 하고 직장동료 얘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편하다고 생각해서 한 얘기들이지만 그들에게는 듣기 힘든 이야기이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말에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보았다.



작가의 앞선 생각이 조금 시대와는 맞지 않다는 느낌을 때때로 받았지만 여느 심리책처럼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삶의 진리들을 적절한 예시와 함께 쏙쏙 잘 알려준 이 책. 인간관계로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될 것 같다. 표지에 나온 것처럼 "안녕을 고하는 법" "더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법"이 현실적이진 않지만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 이 책.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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