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Nov 29. 2021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소설

이 책은 내가 사람으로서도 애정 하지만 특히나 글을 매우 애정 하는 "진샤"작가님이 선물해주신 책이다. 처음 연락을 하셨을 때는 홍석준 작가님의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선물해주시겠다고 했지만 이미 구매한 후였기에 (홍작가님 저 잘했죠?) 그러면 어떤 책이 읽고 싶냐고 물으시길래 그동안 사고 싶었지만 집에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 차마 구매하지 못했던 이 책을 말씀드렸더니 바로 주문해주셨다.


아직 얼굴도 한번 못 봤지만 글로 인연을 맺어서 이렇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선물을 해주시다니. 정말 사람 인연 따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조만간 곧,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할 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진샤 작가님 다시 한번 고마워요!)



한강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많은 이들이 그럴 테지만 나 역시 "맨 부커상 수상"이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맨 부커상이 일본상인지 영국 상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많은 언론에서의 언급은 나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그녀의 책 "채식주의자"를 구매하게 된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는 나의 성향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녀의 철학은 너무 깊었고, 기승전결이 정확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내 기준에 이 책은 곁가지도 많고 등장인물들이 하나하나 다 평범하지 않아서(도리어 기이해서) 읽고 나서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읽었는지 멍을 때렸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그녀의 책은 읽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이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감당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사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운명적으로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너무나도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소설적이면서도 사건을 미화시키지 않은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한 문장 한 문장은 내 마음을 깊게 두드렸고 한동안 여운에 힘들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번에는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한 책을 썼다고 각종 도서 사이트 메인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외면했다. 광주사건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같이 잔혹하고도 처절한 소설이라면 왠지 인생무상함까지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생각이 났다.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건 바로 뒤표지에 파랗게 쓰여있던 이 문장 때문이었다.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결국 내 상처는 내가 기어이 돌아가 껴안아야 한다고. 그래야 견딜 수 있다고.



책이 도착한 날, 읽고 있던 책만 다 읽고 바로 읽어야지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우울했고, 아이는 아팠고, 그래서 더 우울했다. 또 한 명의 애정 하는 작가 [모두 맑음]님의 말처럼 내 삶이 고단함이라는 옷을 껴 입고 있었다. 한바탕 폭풍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펼쳤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한 것일까. 이 책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그 당시의 처절함과 애통함을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기억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많이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책의 2/3이 지나가도록 제주 4.3 사건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조심스레 얼굴을 들 때쯤 주인공 "인선"에게서 그날의 이야기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거의 완독을 향해 갈 때쯤 드디어 그날이 옷을 벗고 내 앞에 나타났다. 눈앞에서 부모가 죽는 것을 봐야 했던, 죽지 않기 위해 굴속에 들어가 숨소리도 못 내고 지내야 했던, 형제를 잃은 아픔을 죽을 때까지 껴안고 살아야 했던 이들의 아픔이 갑자기 쏟아져 내렸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내가 사랑하는 작가 "최은영"이었다. 아마 "밝은 밤"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접해서였을까, 어둡고도 절절한 분위기도 닮아있고, 책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방언들이 가득 들어있는 것도 비슷해서 읽는 내내 생각이 났다.


언젠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알게 되면 "밝은 밤"과 "작별하지 않는다"를 한꺼번에 선물해주고 싶다.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 작별하지 않는다 본문 일부 발췌



아직도 아픔은 지속되고 있다. 저 증언을 하신 분이 살아있는지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사건을 겪은 모든 이들이 하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참 잔혹하다. 아픈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지만 여전히 역사는 아프다. 언젠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제주 4.3 사건을 다루면서 턱없는 할머니 얘기를 본 적이 있다. 그날, 총에 맞아 턱을 잃은 후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고 했다.


할머니의 모습 자체가 아픔이었지만, 과연 할머니가 잃은 것이 턱뿐이었을까?

나의 기준으로 그날의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질 만큼 생생한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고뇌하고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안 가기에 내 책장에 오래오래 보관될 책. 작별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이 책을 선물해주신 "진샤"작가님께 감사하며, 이 책이 흥하고 흥해서 지금을 사는 우리가 이 사건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