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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an 05. 2022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마음이 괴로웠던 몇 달 전, 마지막으로 미친 듯이 읽었던 책이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꽤 오랜 나날들을 책을 붙잡고 열심히 읽었고, 가끔은 탄식을 몇 번은 감탄을 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결국 생각한 건 책은 책일 뿐, 겪어보지 못한 큰일에 대한 것을 겨우 독자인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작가가 본문에서 말했듯이 작가에게 일어난 모든 불행한 일들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사의 기로에 서있었고, 그 가운데 극적으로 살아남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얼굴을 마주했던 많은 이들이 죽은 모습을 직접 마주해야 했던, 혹은 그랬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던 작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결코 작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은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삶을 졸졸 따라다닌 여러 가지 경제적, 사회적 불행이 더 크고 아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가 붕괴 현장에서 뛰쳐나와 달려든 차의 주인이 다행히 선량한 시민이었기에 병원으로 옮겨져 살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천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천운이 작가로 하여금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나도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서 사람은 그렇게 강하지 않기에, 인생의 고비마다 삶의 허무함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 것에 공감과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삶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자신의 아픔을, 그 절절하고도 처절했던 세월을 다 토해내 책을 엮었다. 그저 이 사실만으로도 나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육원 아이들을 보러 간 어느 겨울, 춥고 어두운 놀이방에 혼자 남겨져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아가야 이모가 젤리 줄게, 이모랑 올라가자"라고 불렀다. 그 조그만 애가 다시 몸을 웅크리더니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젤리 아니야'라며 울먹였다. 해서 곁에 앉아 "그럼 뭐 줄까?" 물었더니 "안아줘"라는 아이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얼음장처럼 차가운 놀이방에서 작은 항아리 단지만 한 아이를 안고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맞다. 아이말이 맞다. 젤리가 아니다. 사랑이다." - 본문 中


이 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작가는 아이를 안았지만 결국 사랑을 갈구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아이에게서 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작가가 원한 사랑은 무엇일까? 결국 세상이 줄 수 있는 지속적인 관심이 아닐까? 작가는 본문에서 말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당시 조사는 비교적 철저하게 이루어졌고, 보상금도 피해자들에게 꽤나 많은 액수로 책정되어 지급되었다고.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 더 무엇을 바라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 가혹한 태도이다. "보상금의 몇 배를 준다 해도 차라리 이런 일은 겪지 않는 게 낫다"라고 책의 중간중간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우리 개개인의 삶도,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돌아가는 이 세상도 결코 쉽지 않고, 가볍지 않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작가와 같은 피해자들 곁에서 위로하고, 위안하기에는 버겁다. 그러나 최소한 그들이 아프다고 외칠 때, 길을 잃었다고 울고 있을 때 비난이나 외면은 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혹자는 무관심보다는 비난이 낫지 않냐고 하겠지만 글쎄. 상처투성이인 사람에게는 가볍게 친 한대가 생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법이다. 타인의 손이든, 자신의 손이든.


"요즘에는 우리 인생이 길고 긴 순례의 여정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저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속옷을 입고 걷는 고행의 길, 이제 나는 내 속옷이 세상에서 제일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서로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구나 피고름 맺힌 속옷을 입고 이 생을 버티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본문 中


끝자락에서 마주한 이 문단은 나를 저절로 숙연하게 만들었다. 작가의 이 마음이 진짜 진심이길 간절히 바랐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삶의 한가운데서 계속 지속되기를 기도했다. 그 누구도 같은 참사를 겪지 않는 한 그 한가운데 있던 사람에게 "당신을 이해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나 역시 그렇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방송에서도 보고 이제 책으로도 봤지만 그것은 겨우 단면일 뿐이다.


이제 나는 작가의 독자 중 한 명으로서 그저 그녀가 더 이상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에 갇혀있지 않기를, 계속해서 일어나는 괴로운 사건들이 그녀를 다시 붕괴된 삼풍백화점으로 끌고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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