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Jan 31. 2022

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책의 완독이 쉽지가 않다.

"상실의 언어"도 후반부에서 덮어버렸고, 지역 유명 문인의 수필집 "틀"도 후반부에서 덮어버렸다.

절대 책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내가 문제였다. 나는 우울했다. 지금도 조금 우울한지도 모르겠다.



두 책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 상실을 다루고 있었고, 그래서 우울했다.

나도 우울했고 들고 있는 책도 우울해서 나는 출근길에 퇴근길에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울었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선팅도 진하게 돼있어서 바깥에서 아무도 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울었다.


우울했지만 일상은 지속되었다.

바쁜 시즌인 만큼 열심히 일을 해야 했고 집에 와서는 육아를 해야 했고 동시에 우울은 꽁꽁 감춰야만 했다.


그래서 어제 열 손가락 끝에 칼이 박히는 꿈을 꾸고는 놀래서 눈을 떴을 때 오랜만에 조용히 책이나 읽을까 하고 양치하고 식탁에 앉았는데 한 세장 정도 읽었을까, 딸이 기상을 해서 다시 우울했다.


하루의 시작이 우울했다. 계속 우울했지만 혼자 있으면 더 우울했고, 어쩌다 혼자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우울했다.



오늘 아침, 업무에서 지적당하는 꿈으로 눈을 떴을 때 어제보다 더 이른 아침이었다.

나의 빈자리를 잠결에서조차 진하게 느끼는 아이들이 조금 있으면 눈을 뜰 거라는 침울한 예감에 책은 무슨, 핸드폰이나 뒤적거렸다. 그렇게 30분.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 귀한 시간을, 뭘 하고 있는 건가.


그래서 책을 집어 들었다. 세 번째로 집어 든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였다. 산문집인 만큼 가볍게 읽어 내려가던 중이었다. 요새 걸려있는 "후반부 책 덮기"병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책이기도 했다.


"김영하"작가라고 하면 뿔테 안경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중년의 아저씨였다. 이름은 알지만 대표작은 모르겠는 그런 작가, 다시 말하면 그의 대표작은 여러 권 알고 있는데 그 책의 작가가 이 사람인 걸 몰랐던, 그런데 그 사람이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책을 읽으며 이 작가가 이렇게 글을 잘 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페이지 첫 줄부터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줄까지 다 감동적이거나, 깨달음을 준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쉽다고도 할 수 없는 내용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끔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과 그 중간중간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일부 문장들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이 작가의 책을 제대로 한 권도 읽지 않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이 작가의 책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도 쓰고 산문집도 쓴다고 본문에 나와있던데 이 산문집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산문집을 찾아볼까 싶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본문 64p


비록 김영하 작가가 쓴 문장은 아니지만 그가 가져온 이 문장에 가슴이 턱 막혔다. 나는 우울감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방학중이니 남편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라도 다녀오자고 말했지만, 둘째 라온이가 노란 코를 흘리기 시작했고 항생제 처방을 받으면서 무산됐다.


결혼을 하기 전, 남편을 만나기 전,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차도 없으면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해 기어코 보고자 했던 장면을 목격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아찔했던, 그 순간에는 신기했던 일들도 많았다. 일례를 들자면..


음성에 한 정신병원 옆, 유명인들의 얼굴을 크게 조각해놓은 공원이 있다고 해서 혼자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택시를 타고 간 적이 있다. 후기 그대로 정신병원이 정말로 있었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으스스했지만 용감하게 공원으로 들어가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마주했었다. 여자 혼자 가면서 무서운 줄 모르고 똥꼬 치마에 힐도 신고 갔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다 보니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보였고, 극도로 안심한 나는 아주 줄기차게 공원을 활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광객이 아니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가족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택시가 오지 않았다. 다행히 병원의 관리소 아저씨가 콜택시를 불러주었고 타고 가는데 갑자기 운전기사 아저씨가 물었다.


"아가씨, 합승해도 돼요?"

"네?"

"아니, 콜이 들어왔는데 세명이래"

"아.. 네"


그리고 탑승한 외국인 남자 세명. 만약 내 딸이 이 상황에서 합승을 수락했다고 하면 노발대발할 사람이 바로 나다. 아마 미쳤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작 나는 합승을 했고 앞에 한 사람, 나와 같이 뒤에 세 사람이 탄 상황이 되었다. 만약 그들이 운전기사도 포함해서 인신매매단이었다면, 강도였다면, 인질범들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행히 그들은 그렇지 않았고, 택시는 무사히 버스정류장에 섰다. 나는 내렸고 그들은 갔다. 겁 없고 철없고 어쩌면 생각도 없었을지도 모르는 나는 그 길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한테 이 사실을 말했는지 안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혼난기억이 없는 걸 보면 말하지 않았나 보다.


정신병원으로 손님을 태우러 온 택시, 탑승한 여자, 합승한 외국인 세명. 나열해놓으니 영화가 따로 없다.



이랬던 나였지만 결혼을 하고 여행다운 여행을 가보지 못했다. 남편이 직장에서 해외를 나가고, 친구들과 해외를 나가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가지 못한 채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도 남편은 코로나가 잠잠한 시기에 친구들과 몇 번의 여행을 가는 동안 나는 집에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당신도 언제든지 가라고 자신이 아이들은 잘 돌보고 있겠다고 말했지만, 가끔 호의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물론 가하는 사람은 배려라고 던지고 받는 사람은 상처로 느끼는 것이 문제다. 우리 남편이 결코 나에게 나쁜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혼자서도 집 밖을 잘 나서던 용기.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낯선 여행지에서 식당에 혼자 들어가 씩씩하게 밥을 먹던 내가 이제는 동네에서 혼자 카페에 들어가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그리고 함께 할 사람이 없다. 선뜻 같이 놀러 가자고 말할 사람이 없다. 주변에 다들 결혼을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가까이 사람을 두지 않기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늘 베푸는 호의는.. 호의가 아니다. 그저 혼자서는 집 밖에 나서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문밖으로 떠미는 것뿐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김영하 작가도 그렇게 가까이 사람을 두는 성향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을 하며 현지에서 많은 친절과 배려를 받았다고 했지만 여행 동반자에 대한 언급은 아내를 제외하고는 기억나는 사람이 없다. (내가 기억을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30대의 나이부터 지금의 50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렇게 여행을 자유롭게 다녔을까, 한나라에 몇 박 며칠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을 머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하고 찾아보니 슬하에 자녀가 없는 것 같은 검색 결과가 나왔다. 아.. 그렇구나, 하는 이해가 드는 동시에 역시.. 하는 죄절이 느껴졌다.


세상이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는 그 누구도 이 작가처럼 자유로울 수 없는 건가. 하는 알고 있지만 새삼 무서운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결혼과 출산을 후회하냐 물으면 그렇다고, 아니라고, 단답형으로 딱 말할 수 없다. 일정 부분은 그럴 것이고, 일정 부분은 아닐 것이다. 첫째가 돌이 될 때까지는 미친 듯이 후회했고 그 이후로는 그 후회를 후회하며 살았다. 아이들은 내 삶의 이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삶의 낙을 앗아가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 말을 친정엄마에게 했다가 그러고도 네가 엄마냐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받았지만 사실이다. 여전히 사실이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느낀 유혹, 키클롭스라는 타자를 향해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라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느냐가 성숙한 여행의 관건이다. 그러나 젊은 날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이들에게 내가 작가가로 알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물었다. 주로 어떤 글을 쓰시나요? 나는 소설이라고 대답하고 그러면 대화는 그쯤에서 끊긴다.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는 '주로 어떤 글을 쓰'는 지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는 이들, 즉 그 글을 읽은, 다시 말해 독자에게만 작가라는 것을. - 본문 168p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늘 생각했다. 나는 작가인가? 내가 작가라고 부르는 이들은 작가인가? 작가란 무엇인가? 글을 쓰면 작가인가? 책을 출간하면 작가인가? 브런치에 글을 쓰면 작가인가? 공모전에서 상을 받으면 작가인가? 도대체 작가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브런치에는 책을 출간하고 싶은 이들이 많이 모여있고, 공모전에는 상을 받고 싶은 사람이 모여있고, 각종 문예지에는 등단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들의 목표와 목적은 다 다르지만 결국 한 원점에서 모이게 된다. 나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내가 인정하고 남도 인정하는 성과를 이루고 싶은 것. 그렇다면 결국 작가는 글로 어떤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는 사람이 작가인가?


내가 어떤 신작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가 와서 이런 말을 했다. "이것도 책이라고 만 오천 원?" 그 사람에게는 어떤 것이 책일까. (당신은 어떤 책을 읽는가요.) 지역 문인 협회장님과 얘기를 하는데 약력을 보내라길래 "브런치 작가"라고 썼다가 이건 안 쓰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 세계에서 브런치는 어쩌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그저 인터넷 플랫폼에 불과할 것이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 잠시 브런치를 켜서 몇 자 두드리다가 직원에게 목격당했다. 직원은 "브런치 작가예요? 우와~~~~~~~~~~역시!"라고 했다. 그 직원에게 나는 그저 브런치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작가이다.


도대체 어떤 길이 정도(正道)일까. 나는 책을 출간한 사람도,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도,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사람도 등단을 한 사람도 다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부터가 작가가 아니다.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다. 김영하 작가의 말대로 나는 작가가 아니고, 그저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에게만 작가인 것이다. 작가가 아니지만 작가인 것이다.



산문집이라고 쓰여있지만 기행문 같기도 하고 수필집 같기도 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다른 훌륭한 문장에도 유난히 내 기억에 깊이 남은 구절이 있는데 작가가 생년월을 밝힌 것이다. 1968년 생.

나이가 젊을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우리 교장선생님이랑 같을 줄이야.


나이를 알고 나니 그다음부터 읽을 때는 정말 더 새로웠다. 전혀 오십 대 중반 같지 않은 필력이랄까.

나의 선입견을 아작 낸 그의 책. 여행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


김영하 산문[여행의 이유]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