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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Sep 21. 2021

마스크 안 써서 너무 좋아

옥상의 자유로움

친정집은 단독주택이다. 그것도 2층. 죽어도 아파트에서 죽을 거라고 말할 만큼 아파트의 편안함을 포기 못하는 나는 엄마가 지금의 집으로 이사간지 5개월 만에 결혼을 하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래도 살 때는 불편함을 몰랐는데 지금은 친정집에 갈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 내 주거공간이 아니라는데서

오는 불편함도 있겠지만 주택이 주는 은근한 텃세가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다행히 친정집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우리 집보다 넓어서 그럴 수도 있고 혹은 층간소음 걱정 안 하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든 나를 닮지 않고 주택인 친정, 아파트인 시댁 어디든 잘 노는 아이들이 기특하다.(물론 집 구조가 같고, 아이들을 위해 이것저것 놀잇감을 많이 마련해놓은 시댁을 더 좋아하긴 한다. 친정에는 색연필도 없어서 내가 가져다 놓았고 변변한 종이보다 달력 뒷장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친정엄마가 절약의 여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아이들 취향을 저격하는 스티커 놀이, 색칠놀이, 자석놀이를 사다 놓아도 시댁이 절대 친정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옥상이다. 주택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의 공간 옥상. 특히나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아이들에게 옥상은 마스크 벗고 바깥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다.


추석 연휴를 맞아 찾아간 친정. 아이들은 할머니 찬스로 그렇게도 좋아하지만 그렇게도 제지받는 티브이를 실컷 보다가 문득 옥상이 생각났다. 마침 킥보드도 챙겨가고 비눗방울도 챙겨갔으니 아이들의 성화에 올라가자 싶었지만 안에서 봐도 햇볕이 너무 뜨거워 보였다. 망했다.. 하는 심정으로 올라갔는데 이게 웬일. 막상 올라가 보니 바람이 너무 시원한 거 아닌가! 햇살은 뜨거웠지만 텐트도 날려버릴 듯한 바람이 정말 너무너무 개운했다.


그런데 옥상에 올라가려고 신발을 신을 때부터 마스크를 찾던 아이들에게  "여기서는 마스크 안 써도 돼"라고 이야기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안 써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서서 쭈뼛쭈뼛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을 드러낼 수 없어 모른 척 태연하게 마저 계단을 오르는데 다온이가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마스크 안 써도 돼서 너무 좋아!"


새삼 친정집이 너무 감사하다. 나는 불편해도 사실 친정이 아니면 어디 가서 아이들이 주택을 느껴볼까. 지금 이 시국에 마스크 벗고 눈치 안 보고 어디서 이렇게 뛰어놀 수 있을까.

바람을 가르며 달려보자

두 돌 무렵부터 킥보드를 타기 시작한 아들은 이제 28개월이다. 그동안은 방향도 못 바꾸고 중심도 제대로 못 잡더니 어느 순간 감을 잡고 아주 날아다닌다.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건 물론 가다가 서는 것도 아주 수준급이다. 자기 키에 비해 손잡이가 높이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우리 아들은 소위 말하는 코로나 키즈다. 태어나서 얼마 안돼 코로나가 발병했고 인지라는 것과 동시에 마스크를 써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현관에서 마스크 안 쓰면 무슨 전쟁이라도 난 듯 발을 동동거린다. 이 날도 마스크 안 써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쓰고 올라왔길래 진짜 안 써도 된다고 했더니 한참을 고민 끝에 벗는데 참 마음이 착잡했다. 마스크 안 쓴 모습이 어른인 나도 어색한데 아이는 어땠을까, 새삼스럽게 절망적이다.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얼굴을 보여줄랑말랑

잘 놀다가 갑자기 나타난 텐트에 당황한 우리 아들. 친정엄마가 추석맞이, 아이들 방문 맞이, 온 가족 모인 기념(?)으로 처음 텐트를 꺼내셨다. 그리하여 생전 처음 텐트를 쳐보는 동생과 남편의 고군분투 끝에 짜잔!

참 볼품없다.(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너무 주차 잘한 우리 아들. 겉모습은 볼품없어도 안에서 이렇게나 잘 놀았다는...

장모님과 사위의 커피를 건 내기 게임 한판!

우리 딸은 이번 추석에 송편을 정말 만들어보고 싶어 했는데 양가에서 거부(?)하여 결국 밀가루 반죽 놀이로 대리만족을 했다. 명절 지나고 한번 송편 만들기 키트를 구입해봐야겠다.

자! 이제 우리 딸도 달려보자. 뒤늦게 킥보드 감을 잡은 우리 딸. 엄마가 무려 네 살 때 킥보드 사줬는데 네 살, 다섯 살 그렇게도 못 타더니 여섯 살이 돼서야 씽씽 달린다. 다행히 라온이가 운동신경이 좋아 둘이 같이 킥보드를 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킥보드를 받을 수 있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사실 우리 집에는 킥보드가 한 대밖에 없었다. 라온이가 이렇게 빨리 킥보드를 섭렵할지 모르고 다시 한대를 아예 살 생각조차 안 한 것이다. 그런데 슬슬 타기 시작한 라온이가 어느새 누나 킥보드를 뺏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친정엄마가 저 위에 라온이가 타고 있는 분홍 킥보드를 재활용장에서 주워 닦아오셨다. 그런데 바퀴가 너무 덜렁거려서 고민하던 차, 그 얘기를 들은 다온이 어린이집-유치원 친구 엄마가 킥보드 두대를 지인에게 받았다며 준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네 개가 된 킥보드. 상태 좋은 두대는 집에 두고 상태 안 좋은 두대는 친정 옥상용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리하여 가장 혜택 본 다라온애미...(돈굳었다?!ㅋㅋㅋㅋ)

사실 라온이 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어차피 다온이는 조금 있으면 자전거를 탈 테니까 그땐 다 라온이 꺼! (그런데 왠지 자전거도 라온이가 엄청 빨리 탈듯한 느낌적 느낌.)


맑은 하늘 아래, 아이들의 맑은 맨얼굴을 오래도록 볼 수 있게 해 준 친정집 옥상 덕분에 행복했던 추석 전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이들의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닌 낡은 킥보드와 허름한 옥상 바닥, 어설픈 텐트여도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맘껏 숨 쉴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조건에서 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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