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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Dec 24. 2021

홈 케이크 만들기!

몇 년 전 언젠가.., 아이들과 집에서 케이크를 만든 적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원형 모양의 정식 케이크는 아니고 정사각형의 식빵을 자른 두 개의 덩어리와 생크림, 그리고 약간의 과일과 데코 할만한 조금의 군것질 거리가 동반한 찐 홈 케이크 만들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둘 다 흥미가 없었다.

애초에 라온이는 관심조차 없어서 매트 안에서 다온이만 하라고 해줬더니 "누나 하는 건 나도 다 해야 해!" 하는 오기가 생긴 우리 라온이가 한다고 해서 결국 둘이 같이 하게 되었다. 우리 다온이는 처음에는 엄청 열심히 하더니 갑자기 침범(?)한 라온이가 자꾸 방해를 하자 급격히 흥미를 잃어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심혀를 기울여 생크림을 짜고 있는데 옆에서 동생이 자꾸 찍어먹으니 어디 할 맛이 나겠나!


그래도 누나라고 자기 꺼 급 마무리하고 동 생것도 열심히 치덕치덕 생크림 바르고 청포도 올려줬는데 눈치 없는 라온이는 숟가락으로 계속 찌르기만, 결국 다온이는 모든 걸 내려놓고 매트밖으로 나갔다는... 총총총



이때, 애미가 다시는 집에서 케이크 만들기를 하지 않겠다. 하고 다짐한 걸 모르는 다온이가 어느 날 다시 케이크 만들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다온이는 위의 사진이 두 번째 케이크 만들기였는데, 라온이가 태어나기 전에 소소하게 한번 해준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과 저때의 기억이 손에 손잡고 다온이 머릿속에 쭉 남아서 그런지 한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도 그녀의 요구는 계속되었고. 결국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하하.


그래! 하자! 까짓 거!


마트에 가서 이번에는 더 작은 머핀을 사고, 생크림을 사고, 별사탕과 초콜릿을 샀다. 멋없는 애미가 그냥 숟가락으로 생크림을 바르게 한다고 했더니 멋을 아는 아빠가 다이소에 가서 급하게 짜는 주머니와 여러 가지 모양의 주둥이를 사 왔고 본격적으로 시작!


아빠의 도움을 받아 일단 생크림 짜기! 이렇게 짜는 주머니를 이용할 것 같았으면 더 큰 빵을 샀을 텐데 아이들이 면적이 좁아서 위 로위로 쌓느라고 아주 보는 내내 얼마나 아슬아슬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신나고, 애미는 조마조마하고. 하지만 결국 다 만들고 나서 안 먹은 거 생각하면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작은 빵을 산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그때! 장난기 발동한 아빠. 갑자기 짜는 주머니 주둥이를 자기 입으로 향하더니.. 저런 광경을 만들었다. 윽! 지금 생각해도 속이 느글느글. 생크림 다 바르고 장식에 한참 열을 올리려던 다온이도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도 아빠를 한참을 생크림을 먹어야 했다. 처음에는 경악하던 다온이도 막상 아빠 입에 생크림을 짜 보더니 재미가 있는지 계속 계속 짰기 때문에..... 아마 생크림 1/3은 다 아빠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자, 케이크만큼 아빠도 생크림을 드셨으니 이제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케이크 꾸미기 시작!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영 케이크 만들기에 관심 없는 우리 아들은 생크림 짠 것에 만족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꾸미라고 준 초콜릿, 별사탕, 곰젤리는 결국 그의 입으로 총총총...


우리 딸만 신나서 올리기 시작하는데...

하나 올리고, 하나 먹고. 하나 올리고, 하나 먹고. 케이크 완성시키고 케이크를  먹으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지 그녀의 손은 계속 입으로 향했다. 귀여운 녀석. 그리고 완성된 작품.

꽤나 내 눈엔 근사한 다온이 작품과 역시 여백의 미를 추구하는 라온이 작품. 만들었으니 이제 컷팅을 해야지. 과연 수북하게 쌓인 생크림과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는 저 많은 초콜릿, 젤리, 별사탕이 견뎌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잘라보자! 빵칼 등장!

나의 예상대로 결국 칼질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케이크는 무너져 내렸고 정체성을 잃어갔다. (푸하하) 그리고 한입 먹어본 다온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총총총 멀어져 갔다는... 분명 다 먹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받고 시작한 건데, 한입 딱 먹고 모르쇠 하는 다온이가 얄미워서 또 이 어미는 환경파괴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는 후문이...(그리고 후회 중) 


통으로 버려버릴까 하다가 도저히 양심이 콕콕 찔려서 생크림을 비롯한 모든 장식 재료들을 걷어버리고 빵은 내가 다 먹었다. 야금야금. 평소 빵을 즐겨먹는 건 아닌데 먹다 보니 맛있어서 이틀에 걸쳐 내가 다 먹었다. 우하하하. 아이들에겐 즐거움을 나에겐 살을 선사한 빵. 



요새 코로나가 심상치 않아서 어디 가지도 못하고 주말에 집에서 빙글빙글 도는데 이렇게 한번 놀고 나면 그래도 엄마로서 무언가 해준 것 같아 뿌듯하다. 요리실습은 사실 너무 번거로워서 잘해주고 싶지 않지만 그만큼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도 사실 찾기 힘들어서... 나는 지금도 피자빵을 만들어볼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또 하루가 쌓여간다. 아이들과 추억을 쌓으며. 나중에 이 기록들이 나의 노후를 지켜주는 튼튼한 기둥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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