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Oct 03. 2021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45

섭섭하고 화가 나서.

대체공휴일이 건네준 3일간의 연휴 덕에 마음이 풍성 해져였을까.

금요일 큰맘 먹고 한 시간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유치원 앞에는 이미 하원한 아이들이 실외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고

평소 친분이 있던 엄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얘기하는데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보였다. 인사를 하시는데 그때부터 느껴지는 싸한 느낌.


우리 다온이는 다루기 까다로운 아이였기 때문이다.

가끔 선생님을 만나면 듣는 이야기는 늘 같았다.

똑같은 얘기를 볼 때마다 하시는 선생님이 야속하게 느껴지면서도

나도 늘 느끼는 일들이기에 화도 낼 수 없었지만 그날은 왠지 화도 나고

선생님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는 얘기부터 하셨다.

맞다. 다온이는 유독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다.

빵이나 과자, 과일 등등 밥 외에 음식들은 자기 손으로 참 잘 먹는데

밥은 정말 정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는 한 자기 손으로 먹을 의지가 전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이유식 먹이려면 나를 비롯해 친정엄마 시어머니까지 온갖 재주를 부려야 하는 아이였으니

애가 커가면서 밥을 좋아하게 될 리가 있나.

그나마 집에서는 "밥 다 먹으면 티브이 보여줄게" "밥 다 먹고 아이스크림 먹어"라는 거래성 대가로

밥을 먹게 하나 유치원에서는 그럴 수도 없으니 답답할 것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실까? 아이가 밥을 안 먹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건 바로 나이고

계속 밥 안 먹는다고 혼나고 주의 듣고 훈육당하는 아이도 엄청 스트레스받고 있을 거라는 걸.

어린이집부터 유치원까지 밥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들으니 가끔은 담임선생님을 피하고 싶다.


그리고 이어진 말씀은 다독왕 배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1학기 누적 독서 권수가 100권 이상인 아이에게 오늘 다독왕 배지를 나눠줬는데 다온이는 10권이

모자라서 못주셨다는 얘기였다. 선생님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짜증과 죄책감이 동시에 솟아올라

귀에서 이명이 들릴 지경이었다. 1 학기면 6개월, 다온이는 아마 200권도 넘는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유치원 수첩에 기록을 못해서 아이가 배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사실 8월까지는 엄청 열심히 기록하다가 다독왕에 대한 언급이 방학식 때까지 없어서 9월 한 달 안 했더니

방학 다 끝나고 2학기도 한 달이나 지난 지금 1학기 다독왕 배지 증정이라니. 내 탓이었지만 화가 났다.

그래. 나는 화가 났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물론 배지가 아니라 아이가 그동안 책을 읽으며 나랑 보낸 시간,

그 안에서 배운 것들, 또한 주변에서 놀랄 정도의 표현력 발달이 더 중요하겠지만 아이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속상했다. 다온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아이는 "엄마가 기록을 못해서 미안해"하고 말하는

나에게 "선생님이 열 권만 더 읽으면 된대"하고 말했다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못내 아쉬웠는지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 책만 읽고 싶어 하는 아이(제목), 그 책 읽을래, 나도 책만 읽고 싶어 하는 아이인데, 그리고 더 읽자, 나도 배지 받을래"라고 하며 책을 왕창 들고 왔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열심히 읽어줬고 100권이 넘었다. 과연 선생님께서 배지를 주실지, 2학기 누적 도서가 100권되야한다고 하실지 궁금하다. 2학기 누적 도서를 말씀하신다면 내가 직접 왕배지를 만들어서 아이 가방에 달아줄까 싶다. 이는 아이를 향한 선생님의 부족한 배려에 대한 나의 항변이다. (비단 다독왕 배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선생님께서는 다온이에게 줄 배지가 없었다고 한다.

밥 잘 먹는 아이에게 편식하지 않아요 배지. 책은 다독왕 배지. 환경지킴이 배지와 행복전도사 배지 등등

배지가 많았지만 하나도 해당되는 게 없었다고. 그런데 그렇다고 하나도 해당 안 되는 아이에게 진짜 하나도 안 줘야만 했을까?

물론 유치원에서 하는 것이 아닌 선생님 사비를 들여 일부러 배지 제작을 하여 나눠주신다고 하셨으니

더 바라는 내가 욕심일 수도 있지만 배지를 많이 받은 아이들을 보며 하나도 못 받은 다온이의 기분이 어땠을지

왜 한번 더 고려해주지 않으셨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평소에는 아이가 노래와 춤도 잘하고, 만들기도 잘하고, 놀이도 아주 창의적이라며

칭찬에 칭찬을 하시더니 "노래왕, 춤왕, 발표왕, 놀이왕" 이런 배지는 왜 없었던 걸까.

아이의 기본 생활수칙도 중요하지만 특기를 살려주는 것도 교육의 중요한 일환일 텐데. 참 아쉽다. 아쉽고 아쉽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까짓 기록을 못해서 우리 딸이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배지를 못 받게 하다니. 화가 난다. 지구의 날에 일부러 사진도 찍어서 보냈는데, 그때는 환경지킴이 배지 없고 분리배출 사진 찍어 보낸 아이들에게는 환경지킴이 배지 주신 것도 참.. 서운하기 시작하니 나 자신이 치졸할 정도로 서운함이 쌓인다. 결국 내 탓인 것을. 내가 부족한 엄마인 탓을. 배지 하나에 나는 참 속상하다.


지금도 후회한다. 내 책 한 장 덜 읽더라도 아이 수첩 한번 더 볼 것을.

이렇게 집착하는 내가 조금 징그럽지만 그만큼 아이에게 미안한 것이다.


미안해 다온아.



작가의 이전글 우리 라온이가 아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