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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16. 2021

우리 라온이가 아파요.

입원 4일째.

오늘로 입원 4일째다.

내일은 그렇게도 기다리던 퇴원 날. 하.. 정말 길고도 힘든 한주였다.


토요일 새벽. 평소처럼 부스스 깼는데 라온이의 이마가 살짝 따뜻했다. 내가 평소에 기초체온이 높은지라(평소 37.3-5) 날이 더워서 그렇구나, 하고 넘기고 글 한편 쓰려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바로 들려오는 목소리.


"라온이 열이 38.4 도야"


뭐?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서둘러 자는 애를 깨워 해열제를 먹이고 날이 밝자마자 주말에도 운영하는 소아과로 향했다. 혹시나 고열 때문에 진료를 봐주지 않을까 봐 긴장했지만 다행히 진료를 봐주었고 목이부어서 열이 나는 거라고 했다. 이틀 치의 약을 처방받아 먹였지만 열은 잡히지 않았고 끊임없는 해열제 교차 복용에도 라온이의 열은 오르고 올라 39.2도에 이르게 된다.


결국 월요일 저녁. 다시 소아과에 전화를 했다. 지금 애가 열이 39.2도인데 진료나 해열 주사라도 맞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코로나 검사를 받고 오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분노가 솟구쳤다. 이 간호사는 내 말을 들은 걸까? 지금 애가 분명 39.2도라고 말했는데? 요새 코로나 변이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운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러다 애가 눈이라도 돌아가면 어쩌라고. 하지만 침착하게 물었다. 애가 너무 고열인데.. 그랬더니 행정명령이란다. 알았다고 하고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데리고 야간에도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보건소로 향했다. 내일 입원할 수도 있으니 남편도 받았다. 이때, 나도 받았어야 하는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소 8시간. 아이는 열이 펄펄 나는데 이 도시에 아이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가 아닌 다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죽어간다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밤 사이 아이의 열은 37.5도까지 내려갔고 남편이 데리고 병원에 갔다. (월요일에 학교로 전화를 해서 사정 설명을 했지만 한 번은 나가서 얼굴 보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결국 입원. 피검사 결과 아이의 백혈구 수치와 혈소판 수치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낮다고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비타민 D 수치는 너무 높아서 (함@아 비타민 d를 너무 좋아해서 두 알씩 먹였더니... 당분간 안 먹이려고 한다.) 주의도 받았다.


입원 당일(화요일) 아이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작은 손에 수액 바늘이 꽂히고 가루약, 물약, 해열제에 하루 한번 항생 주사까지. 고행이 시작되었다. 남편보다는 내가 연가 쓰기가 수월해서 수목금을 다 연가를 냈다.


입원 이틀째. (수요일) 남편과 교대해주기 위해 다온이를 8시에 등원시키고 출발. 아직 초행길은 덜덜 떠는 나이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결국 길가에 있는 병원 주차장을 지나치고 엉뚱한 옆 주유소에 들어갔다가 뒤에 따라온 차한테 분노의 크랙션 제대로 맞고 주유소를 빠져나와 다음 블록에 정차한 뒤 움찔움찔하다가 울음이 터져버린 나란 사람.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남편에게 전화했고, 잠시 아이를 간호사에게 맡기고 나온 남편 덕에 겨우 병원 입성. 그런데 아이의 얼굴이...

(월요일 연가 쓰고 둘 다 데리고 있기, 월요일 밤새 남편과 교대로 열 보 초, 화요일 퇴근 후 육아. 나는 너무 지쳤었다. 누가 툭 건드리면 바로 눈물을 쏟을 수 있는 상태였다.)


우리 라온이... 눈... 어디 갔니...?

온몸에 두드러기처럼 난 이건 뭐지....? (진짜 진심 너무 놀래서 말문이 막혔다.)


알고 보니 수액을 맞아 온몸이 부은 상태에 열이 안 떨어져 온몸에 열꽃이 피었던 것이다. 밥 잘 먹고 마스크 잘 쓰는 우리 라온이는 크면서 입원 안 할 줄 알았는데 철저한 나의 오만이었다. 우리 아들 어쩌니.. 게다가 평소 밥을 선호하는 우리 라온이가 밥을 거부하고 약을 주면 알아서 약병 쥐고 먹는 라온이가 약 안 먹겠다고 드러눕는 걸 보며 이 아이가 진짜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다온이는 겁도 없고 호기심도 많아서 입원하면 입원병동을 활보하고 다녔고, 쫄대(수액 걸어두는 대)에 타서 나한테 계속 끌어달라고 하며 신난다고 좋아했었는데 겁도 많고 경계심도 많은 우리 라온이는 병실 밖에 나가면 일단 안으라고 난리, 안고라도 병동 로비 한 바퀴 돌자 하면 앞장서서 우리 병실로 들어오니.. 나도 답답 라온이도 갑갑. 정말 갑갑 답답 대 환장파티였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라온이의 짜증. 그런데 이상하게 라온이가 짜증을 내도 밉거나 나도 짜증이 나진 않았다. 그저 귀엽고 안쓰러웠을 뿐. 둘째는 사랑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진리임을 느끼는 요즘이다.


이날, 아침부터 나오는 약에 해열제를 뺐다고 했다. 화요일 밤새 열이 안 났는데 이게 해열제 때문인지 면역력이 돌아오는 중인지 봐야 한다고 했다. 역시 우리 라온이는 다르구나! 했지만 오산.. 점심부터 바로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37.8도를 지나 38.3도... 다시 해열제 처방, 열꽃은 등도 모자라 배까지 점령해버렸다.


입원 3일째.(목요일) 새벽 4시에 뒤척이다 깬 라온이 덕에 한 시간 반 정도 놀다가 다시 잠든 우리. 라온이가 7시에 들어온 밥을 보고 나를 불렀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잠이 든 건 아니었고 몽롱한 상태였는데 몸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말 그대로 번 아웃. 결국 남편이 조퇴하고 교대를 해주었다. 내가 번아웃될 수밖에 없던 이유가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허리 통증. 평소에도 몸이 안 좋으면 허리로 가장 먼저 통증이 오는데 라온이 입원 첫날부터 정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한걸음 한걸음 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허리 통증 때문에 정말 어금니가 안 남아날 정도였으니... 교대 후 바로 정형외과를 가니 디스크가 진행되었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고 대신 걷기 운동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 폭염주의보에 어디서 걸어야 하나 생각되었지만 일단 알았다고 하고 물리치료받고 다온이 데리고 귀가했다. 금요일엔 남편은 숙직 나는 병실을 지켜야 했기에 다온이 봐줄 사람이 없어서 친정엄마께 부탁했더니 와주셔서 여자 3대가 나란히 같이 잤다.


딱 하루였는데 우리 다온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는 우리 딸. 집에 왔을 때 엄마 없으면 눈물부터 보이는 우리 딸인데, 그래서 밤 10시가 되도록 놀아줬다. 같이 라푼젤 옷도 만들고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책도 읽고. 여전히 다온이는 자신만의 옷 창작에 푹 빠져있는데 사진을 꾸준히 찍었으니 홍다온 컬렉션으로 나중에 글 한편 써야겠다. 아이는 요새 옷 만드는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하는데 정작 바느질 영상을 보여주니 무섭다 하고, 옷은 만들고 싶다 하고... 점토공예나 종이공예 쪽으로 알아봐야 할까 싶다.


그리고 오늘. 입원 4일째. (금요일)

남편이 미리 가져다 놓은 블록으로 재주껏 신나게 놀았다. 만들기도 하고 던지기도 하고 쏟기도 하고 쌓기도 하고 색깔별로 모아보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면서 정말 신나게 놀았다.


(그 전날에도 미리 챙겨간 종이와 크레용으로 놀려고 했으나 영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없는 라온이기에 실패. 머리를 굴려 굴려.... 뭐라도 해야 해.... 그래! 종이를 찢자! 라온이는 한 손밖에 쓸 수가 없으니 내가 살짝살짝 찢어놓은 부분을 당기도록 했다. 다 찢고 나니 또 멍... 이번에는 찢은 종이를 뭉쳐보자! 꾹꾹 눌러 뭉치니 라온이가 침대 바깥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오!? 재밌네? 그래서 몇 번 던지고 또 던졌다.)


한참 그렇게 놀고 있는데 병실 전화가 울렸다.


"어머님, 피검사 오늘 처방 나왔어요, 아래층으로 오세요."


오!? 그래! 오늘 결과보고 괜찮으면 제발 오늘 퇴원하자! 하고 신나게 내려갔다. 수액 바늘도 다른 손으로 바꾸고 피도 뽑고 올라오니 라온이가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했다. 응? 어쩌지......... 아직 점심시간까지 1시간이나 남았는데..(이때 라온이의 컨디션이 회복되어 그의 식욕도 돌아온 걸 알았어야 하는데 나란 엄마.. 미련... 하다...) 그래서 사둘러 과자를 뜯었다. 몇 개 집어먹는가 싶더니 결국 밥타령. 아.. 어쩌지..


"젤리 먹을까?" 절레절레

"과자 더 먹을까?" 절레절레


놀자! 다시 블록 등판! 꾸역꾸역 놀다 보니 이제 10분 남았다. 거의 다 됐다! 그런데 그의 인내심도 거의 다 됐다. 짜증이 시작되고, 결국 나는 영상을 틀었다. 보다 보니 드디어 밥이 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진짜 배가 고팠는지 라온이는 성인 밥그릇 가득 나온 밥의 절반을 먹었다. 기특한 녀석...! 다온이가 밥을 잘 안 먹는 아이이기에 나는 라온이가 밥을 잘 먹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 녀석이 너무 예쁘다.


수액에서 벗어난 손은 아직도 부어있다.

눈은 패드에. 입은 우물우물. 귀여운 녀석. 밥 다 먹고 꿀잠 타임. 나도 꿀잠 타임! 2시간 꿀잠 자고 일어난 라온이. 침대에서 빈둥빈둥 나랑 굴러다니다가 저녁 먹기. 열심히 먹였는데, 분명 더 안 먹겠다고 했는데...? 다 먹고 놀다가 잘 시간이 되었는데 배가 고프단다!

먹을 게 없는데..., 먹을 거라곤 과자밖에 없는데... 과자 몇 개 먹더니 또 아니란다. 비타민 젤리 세 개나 줬는데 여전히 배고프다고 손가락 쪽쪽. 간호사실에 전화해서 애기 데리고 잠시 나갔다 와도 되냐고 물었지만 퇴짜. 게다가 비도 오네. 어쩌지......... 어쩌긴. 재우는 수밖에. 뽀로로 주스 반 병 정도 마시고 이 잘 닦고 잠든 라온이. 너무너무 속상하다. 분명 많이 먹였는데.. 자책이 밀려온다.


내일 아침밥은 정말 많이 많이 먹여야겠다. 집에 가고 싶다. 라온이 수액주사도 빨리 뺐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건... 더 이상 아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만 나도 병원에서 문전박대당하는 코로나 시국에 더 이상 열이 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피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 정상, 혈소판 수치 낮음, 염증 및 바이러스 없음으로 나왔다. 혈소판 수치가 걱정되나 아이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다 하니 나중에 피검사 다시 해보라고 했다.


*학교를 못 나간 사이 교장선생님, 교무실무사님, 교무부장 선생님, 우리 행정실 주무관님, 영양 선생님께서 안부 연락 주셨는데 너무너무 감사했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이래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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