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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Oct 06. 2021

그놈이 그 놈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며 공문처리를 하다 보면 의문점이 생길 때가 자주 있다. 그러면 가장 먼저 공문을 보낸 담당 주무관님이나, 장학사님께 전화를 한다. 전화통화를 통해 사이다 같은 답변을 받으면 좋겠지만, 나의 경험상 속 시원한 답을 해주는 사람은 몇몇 없다. 대부분은 공문을 잘 읽어보라거나, 알아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하거나(하지만 이런 경우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곤 전화를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아예 자신도 상급기관에서 보낸 공문을 그대로 보낸 것이라며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화가 났다. 나는 이 공문의 담당자이고, 기한은 정해져 있는데 나의 질문에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답을 하면 당장 어쩌란 말인가? 기한의 압박에 내 해석대로 해서 보내면, 본인들이 원하는 자료가 아니라고 다시 해서 보내라고 할 거면서, 그러면 나는 또 그 기준에 맞춰 결재권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뒷목이 당기고 핏대가 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급격히 흥분하는 횟수가 줄었다. 오늘 글의 제목처럼 "그놈이 그 놈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건 내가 교육지원청에서 1년 조금 넘게 다녔을 때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이제 와서 깨달았다는 것이다. 새삼 연차가 이래서 중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feat. 올해 연차로는 9년 차 공무원)


(그놈이 그 놈이라는 표현이 사실 누군가 듣기에는 거북 할 수 있기에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로 바꿀까 "그 주무관이 그 주무관이다."로 바꿀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나는 내 느낌대로 쓰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를 비하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단지 너나 나나 다 똑같다, 이런 맥락으로 쓰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지역단위 교육지원청이나 도단위 교육청(일반적으로 도교육청이라 부른다.)에 근무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뭔가 업무적으로 더 명확하고 명백하게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실상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인사발령이다.


교육청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능력이 뛰어나서 상급기관에 앉아있다거나 반대로 너무 평범해서 학교에 있다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인사발령이 어디로 나느냐에 따라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금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내 업무적 능력과는 별개로 지금의 나는 학교에 있지만 다음 발령으로 교육청으로 갈 수도 있다. (되레 이런 경우도 있었다. 일을 너무 못하는데, 노력해서 개선할 의지도 보이지 않고 사고만 쳐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어떤 주무관님을 어느 학교에서도 받으려고 하지 않아 결국 인사팀에서 교육청에 발령을 냈고 그 후로도 그 주무관님은 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은 자신의 희망과는 달리 몇 년을 교육지원청에서 맴맴 돌았다는.)


그렇다면 내가 교육지원청에 간다고 갑자기 내가 맡은 분야에 전문가가 될까? 혹은 공부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질까? 그렇지 않다. 전자는 어림도 없고, 후자는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교육청에 가면 업무 범위가 학교보다 더 넓어져 초반에는 대부분이 어리숙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업무량도 많아지고 학교나 지역교육지원청에서 질문도 많이 들어와서 처리하다 보면 근무시간이 학교보다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앉아서 매뉴얼과 관련 법령을 들여다볼 시간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일부 소위 일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은 상급기관에 가서 몇 달 지나지 않아 마치 그 업무를 했던 사람처럼 능숙하게 처리하는 사람들도 보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그세사(그들이 사는 세상)이고 나같이 평범한 공무원들은 지역에 보내는 공문이나, 혹은 도 전체에 보내는 공문에 실수 안 하고 민원전화를 받았을 때 이상한 소리만 안 해도 감지덕지이다.



더불어 상급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에게 "명확한" 답변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는 "책임"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학교에서 학교 단체티를 맞추기로 했다. 그런데 담당 선생님이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까지 포함해서 구입하겠다고 결재를 올린 것이다. 담당 주무관은 갑자기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학생들의 단체티는 교육의 대상이기에 교육과정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사줄 수가 있지만 과연 선생님들의 단체티는 학교 예산으로 굳이 사줄 필요가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더하던 담당 주무관은 결국 교육지원청에 전화를 한다.


담당 주무관: (관등성명) (상황설명) 가능한가요?

교육청 예산담당 주무관: 관련 법령이나 매뉴얼에 절대 선생님들 것을 사주지 말라는 건 없어요. 학교에서 판단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담당 주무관: (한숨) 알겠습니다.


어쩌면 담당 주무관은 교육청 담당자의 저런 원론적인 답변을 예상했으면서도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주겠지, 하는 기대가 있다기보다는 내가 상대해야 하는 누군가에게 나의 단독적인 답변보다는 상급기관의 답변이 더 무게감 있게 다가갈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혹자는 교육청 담당 주무관의 답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뭐야? 학교에서 판단하라는 말은 나도 하겠네"


맞는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책임소재"를 언급한 것이다. 교육청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관련 법령을 찾아주거나 학교에서 재량껏 판단을 하라는 말을 주로 하는데, 만약 "해라" "하지 마라"라고 판단을 해주었다가는 해당 교육지원청이나 학교에서 감사를 받아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지적사항이 되었을 경우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매뉴얼에 명시되어 있는데 찾지를 못해서 질문하는 사항에는 어느 매뉴얼에 이렇게 나와있다고 말을 해주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난감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 역시도 그 자리에 가면 똑같이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어찌하면 좋을까.


이렇게 쓰고 나니 마치 내가 상급기관의 애매한 답변에도 달관한 사람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흥분하는 경우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사람이나 나나 그놈이 그놈인 것을.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권하듯이 학교에서 재량껏 판단한 것들이 감사에 지적사항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지 않을까. 더 나아가 나의 역량에서 벗어난 예산 낭비나, 법에 저촉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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