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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Oct 14. 2021

차이인가? 차별인가?(3)

오늘은 전환직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차이인가? 차별인가?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다.


https://brunch.co.kr/@jsmbja/451

https://brunch.co.kr/@jsmbja/452

내가 처음 전환직을 접한 건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근무할 당시 순회를 나갔던 한 초등학교에서였다. 그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무섭기로 정평이 나있는 분이었는데, 유독 나에게 친절하셨다. 오죽하면 그 학교 정교사들이 나에게 와서 "선생님이 한번 얘기해봐~" "선생님이 얘기하면 교장선생님이 마음을 바꾸실지도 몰라~"하고 진심인지 빈말인지 모르겠는 말을 수시로 할 정도였다.


눈치가 없던 나는 교장선생님이 일개 비정규직 강사에게 왜 그렇게 호의적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수업을 다 마치고 교실에 혼자 있는 나에게 교장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가정을 소중이 생각해야 해, 이혼에 대해 쉽게 생각하면 안 돼"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나는 그저 도대체가 속을 알 수 없는 분이라고만 생각했지, 다른 의도가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주말, 집에서 쉬고 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전화를 했다. 본인이 연수를 받으려고 밖에 나왔는데 우리 집 근처이니 어느 어느 횟집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황당했지만 말 그대로 나는 계약직이었다. 소속 학교는 아니었지만 워낙 작은 지역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혹여나 그의 부름에 불응했다가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랐기에 찝찝하고도 무서운 마음을 가지고 나갔다.


역시나 그는 나를 반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 미소가 얼마나 음흉(?)했는지 헛웃음이 난다. 그가 말했다.


"내가 선생님을 우리 아들 베필로 삼고 싶은데, 우리 아들이 전환직이야. 기능직으로 들어갔다가 전환시험 1등으로 이제는 어엿한 교육행정직이지. 둘이 결혼하면 풍족하게는 못살아도 웬만큼은 잘 살 수 있을 거야. 내가 집도 해주고, 이미 우리 아들이 차도 있으니까."를 시작으로 그는 자신의 형제들이 어떤 사업체를 가지고 있고, 그 사업체가 얼마나 잘 나가며, 자신들은 둘 다 공무원이라 나중에 부양을 안 해도 되고, 그저 둘이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말했다.


그때는 교육행정직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전환직이고, 교육행정직이고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오니, 내가 교육행정직으로 될 운명이었고, 만약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과연 나의 남편인 전환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었을 것 같다. 나의 남편이지만 내 앞길을 막는 사람. 다행히(?)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그 집에도 나 아닌 다른 며느리가 들어갔다.



그후에도 나는 이상할 정도로 모든 근무지에서 전환직을 만났다. 첫 근무지에서는 부장님이 전환직이었는데, 그 당시 실장님이 전환직을 못 믿으신다면서 나에게 응당 부장님이 해야 할 학운위, 교원인사 등을 주셔서 동기들이 보수업무로 회계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회계와는 동떨어진 업무만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온이 만삭 때 근무했던 근무지에서의 실장님도 우리는 모두 "순수혈통"이라는 말로 교육행정직과 전환직을 선 그으셨고, 라온이 임신했을 때 근무했던 근무지에서 모셨던 부장님도 전환직이셨는데 그분은 자신이 어떤 경로를 거쳐 끝내 교육행정직이 되었는지 나에게 장황하게 두 번이나 이야기해주셨다. 듣는 내내 나는 아무도 모르게 분노했고, 혼자서 속을 끓였다.


전환직은 말 그대로 기능직으로 근무하시던 분들이 소정의 전환시험을 거쳐 교육행정직으로 편입된 분들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첫 번째는 전환시험과 교육행정직 시험(공무원 시험)의 차이이다.

현재도 몇백대 일, 혹은 몇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 앉기 위해 하루 14시간 혹은 그 이상을 공부하는 공시생들이 있다. 나 역시도 공부할 당시 순공(순수하게 공부만 한 시간) 14시간을 찍었었다. 그것도 모자라 온 집안에 벽과 냉장고 싱크대 휴지걸이 손 닿는 곳마다 영어단어나 한국사 연대기를 붙여놓고 달달달 외우느라 정말 용을 썼다. 그만큼 노력해야 올 수 있는 자리다.


그런데 전환시험이 과연 정식 공무원 시험만큼 어려웠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는 것에 나의 모든 표를 걸겠다. 그만큼 어려우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금세 통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경쟁률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박탈감을 느낀다. 우리는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4년을 공부해서 겨우겨우 면접까지 통과해서 쟁취한 자리인데, 그들은 마치 고속도로를 탄 듯이 한 순간에 우리와 같은 직렬이 되다니, 허들 하나 넘은 낙하산 같이 보인다면 내가 너무 한 걸까?


두 번째는 그들로 인해 승진 적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할 것이다. 승. 진. 적. 체. 나는 특히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기수이기에 더 많이 분노한다. 내가 임용되었을 무렵 기능 직분들이 우르르르 전환직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승진체계로 가고 있었고 우리는 우리의 승진체계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꺼번에 많은 이들이 우리 승진체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보겠다.


A주사님은 2010년 임용이고 B주사님은 2013년 임용이다. 그런데 A주사님은 2년 만에 7급으로, B주사님은 5년 만에 7급이 되었다. 게다가 B주사님은 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던 7급 대우이기도 했다. (대우: 승진적체 현상으로 승진을 하지 못한 사람 중 유능한 사람에게 상위계급에 상응하는 처우상의 대우를 해주는 것. 대우 수당이 있다.  - 출처: 지방공무원 임용령)


B주사님은 갑자기 자신의 승진체계에 난입한 전환직들 덕에 승진을 3년이나 늦게 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유일한 낙이라 하면 급여가 오르고 나의 직급이 오르는 거 아닐까? 그들의 끼어들기 덕에 수많은 교육행정직들이 직장인으로서의 낙을 잃었다. 나 역시 낙을 잃었다.


세 번째는 그들은 우리의 업무가 익숙하지 않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맡아왔던 일이 다른데 갑자기 그들이 우리 자리에 왔다고 우리 업무를 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어쩌면 엄청나게 친절하고 자세한 인수인계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행정실은 "시리고도 차가운" 곳이다.

https://brunch.co.kr/@jsmbja/428

전환직이라고 신규한테도 잘해주지 않는 친절하고 자세한 인수인계를 해줄 리 없다. (물론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에 그들은 실수를 하고, 수습을 하고, 혹은 나 몰라라 배 째라 식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환 직분들이 나이가 젊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것을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자리를 옮길 때에는 그에 따른 책임도 다 감안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제 기능직일 때보다 승진이 빠를 것이다, 우리도 실장이 될 수 있다 이런 부푼 꿈만 가지고 마주한 현실을 그들에게 참 가혹해 보였다.


물론 모든 전환직들이 다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내 전임자 중에 한 분도 전환직이었는데, 이분은 일을 잘하다 못해 너무 과하게 하셔서 내가 참 힘들었었다. 나는 힘들었지만 모든 전환직들이 나의 전임자만큼만 하면 아마 교육행정직들의 이런 불만이 쏙 들어가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현실은? 글쎄. 아마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도 승진이 늦어진 입장이라 전환 직분들이 호의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100% 어떤 잘못을 했다고는 할 수가 없다.


*내가 그들이라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늘 이 생각으로 전환직들에 대한 분노를 삭인다. 내가 기능직이었고, 조금만 공부해서 시험 합격하면 교육행정직이 된다는데, 그러면 승진도 빠르고 나도 말 그대로 "장"이 될 수가 있는데, 나라고 시험을 보지 않았을까? 100% 봤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결국 이건, 개개인의 잘못이 아닌 제도적인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들은 친절하다.

사실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겪어온 전환 직분들은 다 친절했다. 나와 같이 시험으로 통과해서 교육행정직이 된 분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결이 다른 친절함이랄까. 특히나 업무를 물어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선까지 최대한 알려주고, 내가 업무를 못해서 곤란해하면 같이 남아서 야근을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은 같은 교육행정직보다 전환직을 대할 때 마음이 더 편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건 내 인복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전환직이라고 다 친절하며 교육행정직이라고 다 차가울까.



이제 와서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 결국 전환직과 교육행정직은 같은 사무실에서 이제 같은 길을 가며 공생해야 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로 인해 우리의 승진이 늦어지고 그로 인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명예적인 권리가 늦어지거나 혹은 박탈된 것이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므로 나는 그들이 "우리가 아니면 네 승진이 엄청 빨랐을 것 같아?" "네가 그 정도 능력이 돼?" "왜 우리 탓만 해?"라는 식의 반응은 안 해주길 바란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들의 잘못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이 아닌 "선택"에 우리는 누가 봐도 명확한 "피해"를 입고 있으니까.


그저 우리 입장에 공감해주지 못하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묵묵히 그 자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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