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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pr 06. 2021

시리도록 차가운 행정실이여(2)

https://brunch.co.kr/@jsmbja/427

 1편에 이어 쓰는 이야기.


전임자에게 계속 계속 물어볼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도 나와 같은 처지이니까. 서로가 새로운 자리에 가서 새로운 업무를 맞아 고군분투하는데 계속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질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러면 옆에 있는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되잖아?라고 하겠지만 그것도 불가하다. 그 이유도 단 하나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은 내 업무를(내 전임자가 했던 업무를) 모른다.(관심도 없다.)


이 와중에 나는 운이 참 좋았던 게, 내가 급여를 처음 할 때는 다행히도 그 당시 부장님은 급여에 통달한 분이라서(전환직: 사무원에서 교육행정으로 전환한 직렬 출신) 이거 저거 물어보면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보통의 전환직들은 나이가 좀 있으시고 인자하다. (음, 내가 겪은 사람만 그럴 수도 있다.)


*사무원은 사무운영으로 주로 급여, 물품, 재산, 여비 등등의 고유업무를 하신다.

 우리가 하는 예산, 학운위, 지출 등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같이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혼자 헤쳐나가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흐릿한 희망의 빛줄기 하나가 있으니 그건 바로 '다른 학교'이다. 다른 학교에 나와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어느 정도 돌파구가 보인다. 조금씩 길이 열리는 듯하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그 사람도 나와 업무가 같을 뿐이지 학교 상황은 다르니 주야장천 전화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전화했다 매뉴얼 봤다 그것도 안되면 교육청에도 전화했다 또 안되면 동기들한테 물어봤다... 무한반복이다. 이 과정을 악순환이라 보면 악순환이고 당연한 절차라 하면 당연한 절차겠지만, 참 어려운 과정이고 나는 아직도 이 과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참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이 나는 정말 씁쓸하다. 선생님이 하나하나 다 알려주는 학교도 아니고, 우리는 학생도 아닌 어엿한 성인이니 자기가 버티고 적응하고 이겨내야 한다지만, 이런 과정들을 못 버티고 결국 의원면직(사직)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네 번째, 알려주지 않을 거면 독촉하지도 말아야 하는데 내 마음 같지 않다. 


혼자만의 고군분투도 버거운데, 행정실은 정말 녹록지 않다. 바로 앉자마자 업무에 통달하고 학교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있는 아주 맞춤형 인재를 바라는듯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할까?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시간과, 당신의 배려가 절실하다. 아직 전임자가 쓰던 컴퓨터 폴더 배열도 적응 못했는데 이 공문 며칠까지니까 기한 놓치지 말라는 당신의 말은 칼 한번 못 잡아본 사람한테 대나무를 자르라는 말과 같다. 


그렇지만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공문의 기한을 놓치면 교육청에서 연락이 오고, 바로 상사의 날카로운 지적이 날아온다. 그 지적에 맞아 허우적대면 그 불똥은 되레 옆에 있던 다른 직원한테 튄다. 정말 설상가상 사면초가이다. 이런 살얼음 같은 상황들을 다 딛고 버티면 살아남는 거고, 아니면 의원면직 발령 문에 자기 이름 세 글자 남기는 거다.


(가장 중요함) 다섯 번째, 다 그렇지는 않다. 


이렇게 장황하게 쓰니 교육행정직이라는 게 정말 못해먹을 직업이구나. 하고 느껴지겠지만 다른 회사도 다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같이 운 좋게 좋은 선배, 좋은 부장님을 만나서 업무를 차근차근 배울 수도 있으니 너무 겁먹지 말라는 말도 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행히 우리 사무실이 아닌 다른 사무실의 누군가는 나에게 친절하고, 교육청이나 콜센터(에듀파인)도 있고 무엇보다 매뉴얼이 엄청나게 잘 나온다. (잘 안 본다는 게 함정, 왜 이렇게 교과서도 그렇고 책은 눈에 들어오질 않는지..)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교육행정직을 희망하는 분들이 현실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이다. 무조건 취업을 해야 해서 정말 죽어라 공부해서 들어왔는데, 누구 하나 업무는 알려주지도 않고, 신규라고 배려해주지도 않고, 할 줄 모르는 일들을 쌓여만 가서 혼자 고민하다 그만두지 말고, 업무는 당연히 알려주지 않으니까 전임자에게 최대한 양해를 구해서 많이 배우고 매뉴얼도 열심히 보고 여기저기 열심히 전화해서 물어보면서 극복해야 하고, 본인은 신규이지만 기존 행정실에서는 직원이 들어온 것이니 특별한 배려는 바라지도 말고, 할 줄 모르는 일들은 어떻게든 해 내야 한다. 틀리면 혼날 각오 하고라도 우선 기한을 맞춰서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직렬에서 버틸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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