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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Dec 16. 2020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그런 날이 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 그런데 일의 순서를 차분하게 정리해야 할 시간조차 아까워서 일단 자리에 앉고 나면 눈앞에 닥친 뭐라도 순서 없이 정말 해치우듯이 하는 날. 그런데 그런 날을 더 우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상대할수록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 바로 결정권을 가진 그들이다.     


정말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꼭 그들은 내가 꼭 오늘까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는데, 중요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결재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     


“이게 이상해요.” “이해가 안 가네요.” “이건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요?” “잠깐만 와보세요.” 등등 정말 가지각색의 말들로 나의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설명하면 완전히 이해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에게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할 시간이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모든 것을 총괄하고 책임져야 하는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부분은 그것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위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장황하게 말했지만, 결국 예산에 관한 크고 중요한 것들은 내가 알아서 상의하고 보고하는 과정들을 거쳐 결정하고 집행하고 있으니 너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간섭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초짜여도 행정실장이고, 실제 감사에서도 결국 담당자가 무언가 실수를 하면 처분을 받지 최종 결재권자에게 처분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작 3개월 동안 공사, 감사, 예산집행과 같은 큰일들을 겪으면서 정말 많은 반려를 맞았다. 오죽하면 ‘너무 수고한다.’ ‘고생해줘서 고맙다’라는 칭찬 안 받아도 되니까 내가 추진하려는 것들에 대해서 제동만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물론 각자 위치한 자리를 떠나서 성향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부딪히는 부분들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지만 그냥 나는 지쳤다. 그분들의 세세함과 꼼꼼함에 아주 나가떨어지기 직전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나 역시도 관리자라고 앉아서 나도 모르게 같이 지내는 직원분들을 피곤하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 계속 구시렁구시렁하다 보니 문득 자문하게 된다. 나는 결재할 공문이 올라왔을 때 형식에 안 맞으면 그냥 내가 고쳐서 결재하고(말하지 않아도 시스템에 다 표시가 난다는 게 문제), 저번에도 한번 언급했지만 웬만한 건 그냥 메신저로 소통하려고 하고, 기한을 안 지키거나 그런 일들이 발생하면 최대한 좋게 말하려고 노력하거나 그 기한이 되면 넌지시 말해주곤 한다.

    

나는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나도 모르는 어떤 부분이 그 누군가에게 내가 느끼는 피로감과 답답함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조금은 마음을 다잡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정말 날이 갈수록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그들의 입장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어떨까? 결재할 공문이 올라왔는데 오탈자가 보일 때, 누군가 뭘 상의하러 왔는데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지적을 하거나 다른 의견을 낼 때,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조심스러울까? 아니면 어쨌든 내가 이 집단의 최종결정자이니 한없이 당당할까? 아니면 결국은 내 뜻대로 될 것을 아니까 그저 일상적일까?    


-문득 어떤 일을 가지고 고민하는 내게 ‘결국 그분들 뜻대로 될 테니 우리 의견은 아무 필요도 없어요’라고 말해주던 직원분의 말이 생각난다.-    


맞다. 그들의 의견 말고 정말 사실적으로 모든 직원들의 의견은 누구를 불문하고 다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반영이 되면 황송하고, 아니면 원래 당연히 그런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오늘도 상의할 것이 있어 그들에게 가는 나에게 평소 말을 잘하지 않는 어떤 직원분이 힘내라는 격려를 해주었다. 어지간히도 내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이렇게 어렵고 답답하고 일에 치이는 일상이지만, 그 탓은 누구에게도 있지 않다. 사실은. 당사자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저 각기 다른 사람이기에 의견이 안 맞았을 뿐이고, 그 횟수가 유난히 많았을 뿐이고, 다 각자의 위치가 있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버틸 수 있기도 하다. 단지 나는 그들의 입장이 궁금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누군가들은 본인들을 한없이 어려워하고 답답해한다는 걸 안다면 어떤 기분일지도 궁금하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왠지 느낌이 온다.)    


글을 쓰면서 한숨이 나는 건, 시간이 흐르면 나도 진짜 결정권이 있는 관리자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정말 날이 갈수록 상대하기 힘든 대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미래의 실무자들에게 잘하려고 해도 오히려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갈 수도 있고, 그렇다고 그들을 편하게 하자고 방관자형 관리자가 되면 남모르게 깔보일 수도 있는.. 그런 관리자.     


아직 한참이나 남은 날들에 대하여 더 이상 생각을 해봤자 마음만 답답해지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에 조금은 그들을 덜 어려워하고자 노력해봐야겠다. 내일은 반려의 횟수가 조금이라도 적어지기를. 그리고 이왕이면 뭔가 상의하거나 보고할 일이 없기를 바라본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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