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Apr 05. 2021

시리도록 차가운 행정실이여(1)

"행정실 분위기가 좋아진 건 인정한다만.."


얼마 전 교장 승진을 하셔서 다른 학교로 가신 전 교감선생님의 말이다. 내가 와서 행정실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말인데, 왜 하필 but이 들어간 걸까.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지 뒷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6번째 근무지에 일하고 있다. 7년이 조금 넘는 경력에 근무지를 6번 옮긴 건 평균적으로 봐도 많이 옮긴 편이다. 이렇게 많이 옮긴 이유는 임신과 출산이다. 휴직을 하고 복직을 하면 기존 근무지가 아닌 다른 근무지로 발령이 나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번 더 많이 옮긴 셈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렇게 옮긴 근무지들 중에 한두 번 정도 빼고는 내가 있었던 행정실은 다 분위기가 좋았다. (단지 내가 그 속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을 뿐.)


지금의 행정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다고 하는 이유는 구성원이 많지 않고, 그중 한 분이 유난히 내성적이어서 분위기기 애매 뽕짝 하지만 웬만하면 말 많고 웃음소리 큰 내가 조잘조잘 떠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행정실보다는 좋기 때문!)



그리고 지금까지는 실장으로서 만난 낯선 업무에 대해서만 썼지만, 이제는 조금 방향을 바꾸어 업무 얘기도 하지만 그 외의 얘기도 해보고자 한다. 왜냐면 현직에 계신 분들이든, 예비 공무원이든, 혹은 그밖에 관련이 없으셔도 내 브런치를 구독해주시는 분들이 업무 얘기도 업무 얘기지만 그 외적인 얘기도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순전히 저의 추측.......>////<)


소위 행정실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질까? 아마 아무 느낌도 생각도 없는 분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학교를 12년이나 다녔음에도(초, 중, 고) 학생인 시절에는 행정실이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행정실은, 그 교실 한 칸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정말 미친 듯이 일을 하고, 미친 듯이 회의하고, 미친 듯이 번잡하다. 그런데 그것이 딱 업무에 한정된다는 것이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이다. 업무에 있어서는 정말 찰떡같이 서로 협조하고(물론 안 그럴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서로 대화도 잘하고 착착착 손발이 잘 맞지만, 그 외에는 제목과 같이 시리도록 차가운 곳이 내가 느낀 행정실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우리는 자기 일만 하기에도 벅차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우리는 자기 일만 할 줄 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딱 처음에 발령받아 새로운 근무지에 가면 사무분장표를 받게 되는데, 보통 전임자가 했던 일을 하지만 가끔 업무분장이 조정되는 경우도 있다. (조정되는 경우에는 거의 추가가 되고, 감소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하튼 그러면 사무분장표에 있는 내 업무만 하는 것이다. 모두의 상황을 똑같다. 그 업무만 익히는데 한 세월이 걸리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업무만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주 자연스럽다. 굳이 다른 사람 업무까지 관심 가질 필요도, 여유도 없으니까. 그런데 부작용이 있다.


바로 누군가 자리를 비울 때이다. 누군가 자리를 비울 때 그 업무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남아있는 사람이 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하겠지만, 남아있는 사람이 그 업무를 모른다. 모르니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그 업무를 대신 맡아서 처리해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리를 비우려면 자기가 쉬는 동안 자기 업무로 인해 짜증 나지 않도록 다 처리해놓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업무는 한없이 뒤로 밀리고, 결국 상급기관에서 연락이 오고, 그러면 그 사람은 일순간에 자신의 업무도 추단을 못하면서 자리를 비운 무능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즐거움을 위해서든, 아니면 불가피한 이유이든 내가 없는 사무실에서 내 업무로 인해 행정실이 곤란해지면 당사자인 본인도 전화를 받게 되고, 결국 자리만 지키지 않았을 뿐 다른 곳에서 유선으로 일을 하는 꼴이 되니 이 참 얼마나 서로에게 피곤한 상황인가.


나 같은 경우에는 몸이 아프거나, 원격연수로 우리 학교에 온 이후로 가끔 자리를 비웠는데 다시 출근한 그 날은 진짜 화장실도 못 가고 일만 해도 다 처리를 못했다. 그 누구도 나의 일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일은 협력해서 하지만, 협력은 그 순간일 뿐,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주어진 시간에 다 해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일을 할 뿐이다. 이에 대해서 누가 누구를 욕하겠냐만은, 그래서 행정실은 오늘도 차갑고 내일도 차갑다.


둘째로 행정실은 참으로 조용하다. 학교에 7년 넘게 있으면서 몸으로 체감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교무실은 시끌시끌하지만 행정실은 참으로 조용하 다는 것이다. 진짜 말 그대로 조용하다. 조용한 가운데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그 적막함을 채운다. 정말 나같이 실없는 소리도 잘하고, 수다스러운 사람이 없으면 아마 행정실은 8시간 동안 업무적인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침묵으로만 가득 찰 것이다. 실제로 내가 겪은 행정실들은 다 똑같이 한 명의 분위기 메이커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했고, 그렇지 못했던 한두 군데의 행정실은 정말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앉아있는 집행장처럼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복사를 하거나 파쇄를 하는 일상적인 잡음조차 민망할 정도로.


그런데 정말 일관성 있게 이는 교육청도 마찬가지이다.(아주 주관적인 경험으로 쓴 글이니, 혹시 아닌 곳 있으면 댓글 남겨주세요. 필자가 굉장히 부러워할 것입니다.ㅎㅎ)

교육청에는(교육지원청 포함) 행정과(나와 같은 일반직들이 모여있는)와 교육과(교사, 장학사들이 모여있는)로 나누어져 있는데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행정과는 행정실의 확대판 아니랄까 봐 진짜 조용하고, 교육과는 교무실의 확 장판답게 화기애애하다. 내가 교육지원청에 근무할 때, 나는 교육과에서 근무했었는데 교육과는 정말 간식이 들어오면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면서 먹고, 복장도 예의에만 벗어나지 않으면 편하게 입고, 신발도 편하게 신고 그랬는데 어쩌다 행정과에 갈 일이 있으면 일단 신발부터 갈아 신어야 했다. 사무실에서 신는 실내화가 아니라 구두로, 그리고 복장 한번 다시 살피고, 아주 조심조심 들어가서 살금살금 볼일만 보고 나오곤 했다.


*물론 이런 분위기에는 직급체계와 평등 체계라는 뿌리 깊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행정직들은 9급부터 고위공무원까지 계급사회이지만, 교육과는 일단 장학사들은 평등관계이고, 과장님과도 선후배 사이인 경우가 많아 조금 더 편안한 대화와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행정직이지만. 우리는 너무 딱딱하고 조용하다. 



세 번째로 인수인계는 형식적 절차이다. 내가 처음 임용되었을 때 우리 동기들 중에는 50대 아저씨 두 분이 계셨다. 나는 두 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들도 몇 번 고배를 마시는 시험을 늦은 나이에 합격해서 오셨다는 것이 한편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두 분이 다 그만두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그게 다 업무적 무관심과 형식적인 인수인계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까지나 카더라이기 때문에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근무지를 많이 옮겼고, 그만큼 많이 헤맸다. 인수인계라는 게 아무리 전임자가 하루 날 잡고 와서 하루 종일 성심성의껏 알려준다고 해도, 앞으로 2-3년간 할 업무를 하루 안에 다 파악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전임자를 붙잡고 주야장천 물어볼 수도 없다. 왜?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다음 편에...... 이어서.....



이전 16화 장애인 업체는 왜 갑질을 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