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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Oct 19. 2021

이렇게 꼰대가 되어간다.

요새 같이 일하는 주무관님과 자꾸 부딪히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주무관님이 생각이 짧으신 건지, 아니면 내가 실장이라고 꼰대 짓을 하는 건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 시설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사이트에 담당 주무관님께서 우리 학교 재산대장에 등록되어있지만 시설 지도에 표시되어있지 않은 곳을 다 표시해서 정정신청을 하셨다. 나는 누가 체크하지도 않고, 지적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업무를 하시는 모습에 감명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걸 나에게 말하지 않고 보내버린 것이다. 물론 내가 시설 쪽으로 주무관님보다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현장에서 작업을 해보지도 않았고,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시설 지도를 자세히 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행정실의 장이다. 굳이 "장"이라는 것을 앞세워 누군가에게 어쩌고 저쩌고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행정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업이 시작하기 전에 말을 꺼냈으면 더 좋았겠고, 혹은 작업을 다 끝낸 후에 말하셨어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설지도 수정 작업부터 요청까지 다 끝난 후에, 그것도 내가 물어보니 그제야 자초지종을 다 설명하시는 것이다. 나는 기분이 안 좋았다. 내가 꼰대여서 그런 걸까?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은 출근을 하니 냉난방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약간의 화도 났지만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고 물었다. 


"누가 킨 거예요?"

"내가 켰어요."

"왜요?"

"추우니까요."


이 대화를 읽은 사람들은 아마 어떤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냉난방기는 주로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가동을 한다. 그렇다면 간절기는 어떨까? 봄과 가을 말이다. 요새는 봄에도 너무 춥고, 가을에도 너무 추워서 사실 난방기를 틀면 좋겠지만 이는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대한 교육 수혜자들이 교육을 받는데 불편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주어진 예산이 있다. 


"아니, 아이들이 추워서 혹은 더워서 공부를 못하겠다는데 돈이 없어 못 튼다는 게 말이되? 다른 것을 안 하더라도 아이들 수업이 최우선 아니야?"


"맞다."


하지만 주어진 예산은 10인데, 애초에 2-3 정도로 잡아놓은 전기세를 춥다고 4-5로 늘리면 그만큼 아이들의 현장체험학습이나, 도서구입, 운동회와 같은 다른 부분에서 누릴 수 있는 기본 권리 혹은 혜택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협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걸 다 감안하지 않고 마냥 추워서 틀었다는 말에 나는 짜증이 났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냉난방기를 가동할 때는 아이들이 있는 학급을 제일 먼저 틀고, 관리실은 그 후에 트는 관례가 있다. 어찌 보면 불평등하다고, 어른은 안 춥냐고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학교라는 공간이 교육이 목적인 공간이므로 교육 수혜자가 최우선시되는 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의 직접적인 요구가 없었는데, 간절기에, 아무런 협의 없이 자신만의 판단으로 히터를 가동한 행동은 난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진짜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결국 당사자인 나와 주무관님이 계속 이야기를 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것이고, 굳이 감정 소모하고 싶지 않아 제삼자인 다른 주무관님께 여쭤보았더니 이런 답이 나왔다.


"그건 실장이 좀 너무한 거 같은데, 히터 켜는 것까지 말을 해야 해? 게다가 실장은 늦게 오는데 애들은 춥다 하고 그럼 어떡해?"


듣는 순간 깨달았다. 괜히 물어봤다. 나는 늦게 오고, 애들은 춥다 한다. 핸드폰은 먹는 건가요? 



내가 만약 나이 어린 실장이 아니라면, 경력 짧은 실장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내 나이고, 내가 그분들의 나이였어도 그분들이 그렇게 아무런 상의 없이 일처리를 할 수 있었을까? 상황과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 분 다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내가 나이 많은 두 분과 일하면서 어린 게 "장"이라고 앉아있는 것에 대해 두 분이 어쩌면 고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최대한 격이 없이 상대하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편하게, 이왕이면 맡은 분야에 대해서는 존중도 최대로 해주고 일임도 해드리고. 행정적인 일에서 실수가 있어도 가르치거나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 얘기하듯이 말해드리고, 수다도 많이 떨고.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나이가 어리니, 경력이 짧으니 더더욱 "장"답게 행동했어야 했을까. 차갑고 정확하게, 할 말은 하고 존중은 하되 하나하나 따져가며 일도 다 처리했어야 할까. 깊은 회의감이 든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남은 시간 약 1년. 이미 수차례의 의견 차이로 벌어진 이 관계를 더 이상 나도 이어 붙일 의지가 없어진다. 



만약 누가 봐도 내가 꼰대인 거라면, 나는 어쩌면 좋을까? 내 나이 겨우 30대 중반. 어쩌면 너무 일찍 실장의 자리에 앉았는지도 모른다. 아직 다 여물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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