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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Nov 23. 2021

아찔한 회계사고!

가끔 생각한다. 학교는 교육의 기관인가 회계의 기관인가. 음. 물론 교육의 기관이지. 그런데 학교만큼 돈의 흐름이 많은 곳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학교에는 여러 갈래도 돈이 흐르고 있다. 



보통 학교에는 세 개의 통장이 있다. 학교회계 통장, 세입세출외 통장, 법인카드 통장. 그런데 우리 학교에는 통장이 하나 더 있다. 우리 학교에서 공모해서 선정되어 집행하고 있는 국가보조금 통장이다. 통장이 하나 늘어난 것이 언뜻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회계를 집행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하게 큰 부담이다. 예산을 하나하나 집행할 때마다 집행방법을 달리해야 하고 돈이 나가는 계좌가 다르기 때문에 계좌 선택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초짜 실장이 드디어 계좌를 헛갈려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국가보조금 통장에서 집행되어야 할 금액들이 학교회계 통장에서 집행된 것이다. 그것도 무려 3개월 동안. 어떻게 3개월 동안 모를 수가 있었을까? 통장은 달라도 학교회계를 주관하는 회계프로그램(k에듀파인)은 같았고, 그래서 현금출납부 즉 학교의 가계부 총액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기에 몰랐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국가보조금은 12월까지 마감하고 정산을 해야 하기에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 하여서 살펴보던 중 9월부터 국가보조금 통장 입출금 내역이랑 예산 집행현황이랑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진짜 손이 덜덜 떨렸다. 학교에 안전사고가 난다거나,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도 엄청난 일이지만 교육행정 공무원으로서 회계사고가 일어났다는 건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눈물까지 차오르려고 했다. 같이 회계를 집행하는 주무관님께 제가 지금 너무 놀라서 마음이 진정이 안되니까 좀 도와달라고 하니 국가보조금 교부 담당자에게 전화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셔서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했다. 


밝고 힘찬 목소리. "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하... 절망이 몰려왔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법. 


"저기.. 제가.. 사고를.. 좀.. 친 것 같아서..."


또 밝은 목소리. "무슨 일이실까요?"


"제가 보조금 통장에서 나가야 할 돈을 9월부터 학교회계통장에서 집행을 한 것 같아요..."


무한반복 밝은 목소리. "아, 몇 건에 얼마 정도 되실까요?"


"몇 건에 얼마 정도 돼요."


계속해서 밝은 목소리. "아, 그러면 제가 회계법인팀에 알아보고 전화드릴게요."



절망과 고민에 휩싸인 초짜 실장. 그리고 다시 걸려온 전화.


밝은 목소리. "선생님, 제가 알아봤는데 처리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건건이 사유서를 쓰시고, 이체 내역을 첨부하시고 정산서 비고란에 사유 첨부라고 쓰시면 돼요. 원래 이런 상황이면 다 책임지셔야 하는데 이번에는 봐드릴 테니까 다음부터는 집행에 신중을 기해주세요."


오 주여! 해결책이 나왔다. 그래서 사유서를 건건히 작성하던 초짜 실장.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고 마는데... 그것은 바로 업체들에게 다 전화해서 사정 설명을 하고 학교회계 통장으로 돈을 다시 다 받아서 보조금 통장에서 재 집행하기로 마음먹은 것! 사실 사유서 쓰고 그냥 통장에서 통장으로 이체시켜버리면 그게 가장 좋지만, 그건 이번에 넘어간다 하더라도 계속 찝찝함이 남아있을 것 같아 회계를 다시 제대로 되돌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후하........" 큰 한숨 쉬고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과연 업체들은 이 초짜 실장을 구원해줄 것인가. 아니면 욕만 엄청 먹고 결국 사유서를 쓰게 될 것인가...







*이야기가 길어져 나누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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