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Oct 19. 2021

앞 범퍼까지 다 갈아달라는데요?

후방 주차 못하는 초보운전(2)

그날은 하필 남편이 근무지를 벗어나 직원들과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회식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남편의 회식 통보. 그것은 늘 반갑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회식을 한다는 건, 30킬로를 넘게 달려 집에 도착해 혼자 아이들을 하원 시키고

오돌토돌 생긴 주부습진으로 피부가 갈라져 저절로 "윽"소리가 나는 통증이 느껴지는 손으로  

아이들을 씻기고, 저녁 해서 먹이고 책 읽어주고 재워야 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퇴근을 위해 집으로 달리는 길이 즐겁지 않았어요.

한숨을 한 백만 번쯤 쉬며 아파트 주차장으로 진입했습니다.

평소에는 후방 주차는 꿈도 못 꾸고, 전방주차도 주차자리 세 칸은 비워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네에 들어서면서부터 제발, 제발, 세 칸 비어 있는 자리 있어라 제발, 제발 하며 소원 빌듯이

마음으로 간절히 기원하지만 그날은 주차자리보다 퇴근 후 독박 육아가 더 짜증이 났는지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세 칸 비어있는 자리가 있었던 건 저의 기원이 통한 것이었을까요?

하필 그날. 모든 차가 작정이라도 한 듯이 한 칸 두 칸만 띄어놓고 주차되어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주차장을 한 바퀴 두 바퀴 돌았으나 있을 리가 있나요.

되레 하나 둘 들어오는 차들이 능숙하게 주차를 하는 바람에 주차공간만 줄어들고 있었어요.


안돼!!!!! 오늘은 대리 주차해줄 남편도 없는데....!


급한 마음에 두 칸이 비어있는 곳에 과감히 머리를 들이미는데..


"콰광! 찌이익.."


망했다. 처음 낸 접촉(?) 충돌(?) 사고였는데 금방 알겠더군요. 내가 남의 차를 긁었고

내 차 역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요. 그 와중에 제 맞은편에서 주차를 하고 있던

차주분과 눈이 마주쳤고, 그분 역시 엄청 당황하셨더군요.


저는 급히 내렸고 처참한 상황과 마주했습니다.

제 앞 범퍼는 제 얼굴이 들어갈 만큼 훅 들어갔고 주차돼있던 상대차는 앞바퀴 휠에

엄청난 흠집이 났다는 것을요. 애써 침착하고자 두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 상태로 손은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지금 같으면 보험회사에 전화하고 상대 차주에게 전화해서 보험처리를 하든

수리비를 주든 했겠지만 그 당시에 저는 머리가 하얘지고, 다리가 풀려 제 차 옆에 주저앉았습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라고는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애들은 어쩌지. 데리러 가야 하는데,

지금 가도 분명 꼴찌 하원일 텐데..


그래서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남편과 사무실 직원은 한 차로 움직이고 있었고

제 전화를 받은 세명의 남자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에게 달려와 주었습니다.

아마 남편 직원분들과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고맙기도 하고

정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하... 그때의 복잡 미묘한 마음이란.


여하튼 남편은 보험 처리하면 된다면서 보험사에 연락을 했고, 상대차 주에게 연락을 해서

보험 처리한다고 말하자 상대차주도 알았다고 하고 들어갔습니다. 상대 차주는 중년의 아저씨였는데

나오시면서 차 옆에 서있는 저를 보고 무서운 표정으로 다가오시다가 제 뒤에 서있는 세명의 장정들을 보고

당황하신 표정이 역력하시더군요. 저 혼자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그렇게 일단락하고 남편은 다시 회식자리로,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제 차는 그 주 주말에 공업사에 들어가 보험 처리하고도 제 돈 몇십만 원을 잡아먹으며

앞 범퍼에 새 범퍼를 갈아 끼웠습니다. 혼자 운전하고 다닌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한 달 기름값을

날려버리니 진짜 운전이고 나발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칼치기에 접촉사고까지 기간을 얼마 두지 않고 연달아 발생하니 정말 덜컥 겁이 나더군요.


그래서 풀이 죽어 있던 어느 날.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상대가 휠 교체뿐만 아니라 앞 범퍼 교체를 요구했다더군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쪽 앞 범퍼는 괜찮았는데.... 제 앞 범퍼가 다 나갔어요. 보셨잖아요?"

그랬더니 "안 그래도 앞 범퍼는 너무 과한 요구라서 안된다고 했어요."라고 하시더군요.


앞 범퍼라니, 순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아파트 주차장에서  상대차 주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아저씨를 한 번에 알아보았고 그쪽에서도 저를 알아본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자리를 피하시더군요.

사고가 났을 당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지만, 다시 말씀드리고 싶어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렇게 저를 피하시는 모습을 보고 참 씁쓸했습니다.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후 그분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제 앞 범퍼는 유난히 반짝거립니다.

차는 10년이 되어가는데 앞 범퍼는 새 거로 갈아 낀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요.

빛나는 앞 범퍼를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 건 안 비밀입니다.

그날의 "쿵!"은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그 후로는 한동안 무조건 세 칸이 비어있을 때 주차하느라 정말 진땀을 뺐답니다.


지금은 어떠냐고요?

지금은 조금 나아져서 두 칸이 비어있을 때 전방, 후방으로 다 주차가 가능하답니다!

물론 한 칸이 비어있어도 앞으로 쭉 뒤로 촥 자리 잡고 쭉! 해서 바로 후방 주차하는 남편이 너무 부럽지만

저는 스스로 후방 주차를 터득한 저를 맘껏 칭찬해 주고 싶어요. 사고의 기억을 사고의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제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었으니까요.

       

사람이 새로운 어떤 것에 도전하다 보면 시행착오는 필수관문 같아요. 그 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앞으로 더 나아갈 수도 있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겠죠. 저는 발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기대하며 한발짝 더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가씨, 차를 이렇게 대면 어떡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