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Nov 21. 2021

취중진담, 그 아픈 속내

며칠 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연락도 잘 안 하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그저 잘 지내는 줄 알았던 동생이 술에 잔뜩 취해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를 한 것이다. 그날은 남편이 늦게 와서 나 혼자 퇴근 후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약 먹이고 호흡기 치료하고 모든 해야 할 일을 겨우 마친 후 책 읽어주고 재우기만 하면 되었던 날이다. 너무 지쳐서 얼른 읽어주고 재워야지, 하는 생각에 서두르고 있는데 이 녀석이 전화를 해 취중진담을 갑자기 쏟아내는 바람에 결국 우리 아이들은 또 10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알고 있었다. 내가 지고 가는걸 내 동생도 지고 간다는 걸.

그 속에 쌓인 아픔에는 자신의 아픔, 나의 아픔, 엄마의 아픔까지 다 포함되어있었다는 걸.

녀석의 울분을 한 시간이 넘는 동안 듣고 있으면서 내가 그동안 삶에 짓눌려 모든 걸 잊은 듯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내 아픔만 아픔인 양 꼭 껴안고 있었다는 걸..


녀석에게 말했다. 

"내려놔, 너의 아픔이 아닌 것까지 굳이 힘든 삶에 지고 갈 필요가 없어"

물론 소주 세병이 흩트려 놓은 그 녀석의 머리에 내 말이 들어갈 리 없었다. 

하지만 계속 말했다. "내려놔.." 어쩌면 나에게 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오래된 그 상처와 아픔들을 어떻게 한순간에 내려놓을 수 있을까. 

너무 아픈 나머지 분노로 변한 그것들이 불쑥불쑥 갈라진 틈으로 새어 나오려는 것을 겨우겨우 막고 사는 게

어떻게 안 힘들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 녀석이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으면 한다. 

지나간 시간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더 이상 녀석의 마음에서 활활 타오르지 않고 한 줌의 재가 되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영영 날아가기를 소망한다. 


 


언젠가부터 남편이 술을 마시면 하는 말이 있다. "운칠기삼"


그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고단함이 술을 타고 줄줄 흘러내릴 때 나는 극도의 답답함을 느낀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사람은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으며 언제까지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일까.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꾸역꾸역 목구멍까지 기어오를 때 너무도 무거운 회의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가 절절히 자신의 마음을 토해낼 때 나는 더욱 열정적으로 핸드폰을 만진다. 

그런다고 그의 말이 내 귀에서 튕겨져 나가기는커녕 한마디 한마디가 액정에 쌓여 곧 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액정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이 찔려버릴 것 같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도 누군가를 향한 분노, 누군가를 향한 원망, 그리고 절망과 좌절로 뒤덮여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운. 칠. 기. 삼.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서운 말이다. 


 


두 남자의 취중진담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취하면 어떤 말을 할까. 아마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내 삶의 의미는 어디 있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행복한가?"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이름은 "김범석"이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