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내 머릿속을 맴도는 노래가 있다. 한참 핫한 쇼미 더 머니 시즌 10에서 나온 음원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방탄소년단 노래도 아니다. 그건 바로...
이들의 노래이다. 이들은 요새 유치원 아이들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마음까지 싹 뺏어간 바로 캐치티니핑이라는 만화의 주인공. 티니핑들이다! 우리 딸은 하루 종일 이 만화의 주제곡을 부르고 있다. 얼마나 많이 부르냐면 내가 대부분의 "핑"을 외울 정도이다.
사랑의 하츄핑~용기를 줘 아자핑~희망의 차차핑~즐거움의 라라핑~올바름의 바로핑~!
아마 이 가사를 보고 저절로 입이 움직이는 엄마들 있을 것이다. (바로 당신!?ㅎㅎㅎ)
사실 왜 갑자기 이들이 급부상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딸은 시크릿 쥬쥬 언니들에게 푹 빠져있었다.
바로 이 언니들이다. 쥬쥬 로사 릴리 아이린 샤샤 시크릿 플라워~!(이것도 따라 부른다면 당신은 진정한 육아맘!ㅎㅎ) 그래도 이 언니들은 사람이고 예쁘고 아름다우니 이해가 가지만 나는 어제까지도 우리 딸이 "티니핑"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 알지 못했다.
오늘도 이유를 모른 채 딸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사랑의 하츄핑~을 중얼거리고 있는데 무심한 듯 관심도 없던 남편이 갑자기 한마디를 툭 꺼냈다. 충격이었다.
"저거 꼭 우리 어렸을 때 포켓몬스터 같네"
아...! (깊은 깨달음) 그랬다. 여전히 이유는 모르지만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결국 같은 것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 대상의 겉모습만 달라졌을 뿐. 애완동물 같은 존재들을 잡으러 다니는 것 까지 똑같은 만화.
포켓몬스터를 생각하다 보니 내가 어린 시절 열광했던 추억의 언니들이 생각났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언니들을 다 안다면 당신은 혼란의 80년대 생! 나와 같은 세대 인증. ㅎㅎ
1. 웨딩피치
나에게 인생 처음으로 드레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한 언니들이다. 피치, 릴리, 데이지. 20년이 넘는 세월에도 이렇게 이름이 또렷이 기억나는 것 보면 진짜 이 언니들을 좋아했나 보다. 이 언니들은 드레스를 입은 모습도 이쁘지만 악역들과 싸우기 위해 변신한 전투복(?)이 더 멋있었는데 그림에 소질이라고는 1도 없었던 내가 정말 많이 그렸던 기억이 난다.
이에 얽힌 나만의 슬픈 사연도 있는데.. 이 당시 핑크머리의 피치 언니는 화장품 "쿠션"같은 모양의 아이템을, 갈색머리의 릴리 언니는 립스틱을, 데이지 언니는 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피치 언니가 가장 인기가 많았고 그녀의 아이템이 아주 핫했다. 그리고 핫한 만큼 비쌌다. 나도 열렬한 팬으로서 피치의 아이템을 갖고 싶었지만 우리 집 사정은 좋지 않았다. 결국 엄마에게 정말 어렵게 갖고 싶지 않지만 그나마 갖고 싶었던(?) 데이지의 시계를 사달라고 한번 말을 꺼냈지만 결국 어린 나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사정도 사정이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해한다.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살아가기도 벅찼을 텐데 데이지의 시계가 귀에 들어왔을 리가 없지.
2. 세일러문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역시나 여전히 생생한 주제곡. 그리고 지금까지도 유명한 리지의 유행어. (그런데 이름이 리지가 맞나?)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그런데.. 세일러문 주인공이 이렇게 많았나. 왜 가운데 노랑머리 언니밖에 기억이 안나는 걸까. 오늘 딸과 함께 세일러문 한편을 보았는데 참 새삼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엄마도 어린 시절에 좋아하던 요정이 있었다고 보여주는데 딸내미가 이쁘다고 눈을 반짝이는 걸 보니 마음이 괜히 뭉클했다.
3. 카드캡터 체리
만날 수 없어~만나고 싶은데~그런 슬픈 기분인걸~말할 수 없어~말하고 싶은데~
지금 들어보면 여자 아이돌 노래 같은 주제곡. 목소리도 얼마나 애틋하고 달콤한지 정말 내 마음을 사르르 녹였던 노래다. 사실 체리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저 요술봉으로 카드를 내리치던(?) 장면은 정말 생생히 기억이 난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이미지를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아쉽다.)
4. 천사소녀 네티
마지막 주인공은 천사소녀 네티! 네 명의 언니들 중에 가장 열정적으로 봤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았던 네티 언니. 네티 네티.
오늘 밤엔 무슨 일을 할까~누구에게 기쁨을 줄까~나쁜 마음 끝이 없는 욕심 멀리멀리 사라지면~
밤마다 나가 선한 일(?)을 했던 네티 언니.
저 귀여운 고슴도치 이름은 뭐였더라.. 기억의 한계. (구글에서 루비라고 알려주었다.)
한 20년 만에 혹은 더 오랜만에 불러본 언니들 이름. 이상하게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라는 마음과 와.. 진짜 오랜만이다 반갑다 하는 마음이 뒤섞인 느낌이랄까. 옆에서 신나서 딸이랑 수다 떠는 나를 보며 옆에 계시던 친정엄마가 이런 말씀을 건넸다.
"너는 다른 면에서는 엄하면서 이런 캐릭터 상품에 대해서는 엄청 관대해, 데이지 시계에 기억이 남아서 그런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건 친정엄마가 뒤늦게 느낀 괜한 미안함으로 인해 드는 생각이고 나는 다온이나 라온이에게 딱히 관대하지 않다. 그리고 아직까지 데이지 시계가 잊히진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 슬프다거나 어린 시절의 내가 안쓰럽지도 않다. 그저.. 약간의 미련만 남았을 뿐. 그 당시에 엄마가 무리를 해서라도 데이지 시계를 사주었으면 달라졌을까?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피치의 아이템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겠지.
그래서 나는 괜찮다.
요새는 이 언니가 대세던데..
다온이가 내 나이쯤 되었을 때 이 언니 기억나? 하고 이야기를 나눌 날이 기대가 된다. 그때는 다온이도 가정이 있고 나는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가 되어있겠지. 부디 그때까지 내가 로미 공주 언니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