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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Dec 12. 2021

맞지 마! 차라리 때려!

왕따후유증(1)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 하고 싶지만 절대 하지 않는 말이다. 해서도 안 되는 말.


몇 주 전 딸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딸 친구가 우는 일이 생겼다.

사건의 요지는 이러하다. 


숨바꼭질을 하는데 우리 딸이 술래인 그 친구에게 "내가 찾으라고 하면 찾아"라고 말했지만 그 친구는 술래잡기의 원칙대로 숫자를 다 세고 찾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격분한 딸이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도 목청이 큰데 마주 보고 직격탄을 날렸으니 그 아이가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야!!!!!!!!!!!!! 내가 찾으라고 할 때 찾으랬잖아!"


근데 그 순간 그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정말 서럽게. 그리고 억울하다는 듯이. 난 당황했고 다온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에게 이렇고 저렇고 하니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투는 안 쓰는 게 좋으며 반대로 네가 그렇게 당하는 입장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아직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의 뚱한 표정을 무시하고 친구에게 사과하라는 엄마의 명을 내리고 방을 나섰다. 


아이는 사과했지만, 친구는 상처를 받은 듯 한동안 훌쩍거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이 잠든 조용한 밤. 

낮에 있던 일을 복기하며 걱정과 안도의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걱정의 마음은 이러했다. 혹시 유치원에서도 그러면 어떡하지? 만약에 그게 학교까지 이어지면.. 그게 말로만 듣던 일.... 진?(옛날 사람 인증, 요새는 이런 아이 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안도의 마음은 이러했다. 그래, 차라리 때려라! 맞느니, 옛말에도 때린 놈은 다리피고 자도 맞은 놈은 그러지 못한다고 하지 않나. 맞는 건 나 하나로 족해. 차라리 내 딸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때려라! 때려!



여기까지 쓰면 이런 생각이 들것이다.


뭐 이런 망나니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어? 욕먹고 싶어 환장했나? 그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불쌍하다. 이런 생각들. 당연하다. 


그래서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하고 글도 끝까지 읽어야 한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저런 생각을 한 데는 나의 불우한 학창 시절 때문이다. 나는 100% 피해자의 입장에서 따돌림당하고, 조롱당하고, 맞으며 학교를 다녔다. 그것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졌고 그 후유증으로 대학에서도 과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되레 과 밖에서 더 활발히 활동했으며 직장에서도 한 5년간은 사람들 사이에서 겉돌았던 것 같다. 


얼마나 울었던가. 고등학교 시절 수능이 끝나고 특별반에서 송년회를 한다고 모였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가기 싫다는 나를 억지로 끌고 식당에 가서 모든 사실을 알아버리고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흘렸던 우리 엄마의 눈물은 내 마음속에서 아직도 흐르고 있다. 아무도 보상해줄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그 당시 나를 철저하게 따돌리고, 배척하고, 괴롭히던 동급생들이 다 벼락 맞아 죽었다고 해도 이 마음속 한은 풀리지 않는다. 이제 와서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들이 죽는다고 나의 지옥 같던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아직도 심신이 지칠 때면 꿈속에 나와 나를 괴롭히는 그 시절 하루하루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행복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고, 어떤 무리에게 당할 일이 있으면 차라리 그 반대편에 서길 간절히 바란다. 물론 그 어떤 것 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그냥 학교폭력과는 연관 없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따돌림의 후유증은 비단 나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요새는 딸, 아들의 일상을 키즈노트 앱이나 다음 카페에서 선생님들께서 올려주신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사진들 속 나의 아이들이 혼자 노는 사진을 보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혼자 놀 수도 있는 나이이고, 혹은 아이가 혼자 놀 수도 있는 것인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혹시 못 어울리나?"

"제발, 가장 우려했던 일이 결국..."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 괴롭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든 건 나의 노파심이다. 아이들은 잘 어울리고 잘 논다. 벌써 딸에게는 단짝 친구도 생겼다. 그 단짝 친구와 너무 가까워져서 다른 친구들이 질투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는데, 안심이 되기도 하고 아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너무 교우관계가 좁아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하지만 한 짐 내려놓으려 한다. 놀이터에서도 우리 아이가 혼자 놀면 늘 전전긍긍 아이에게서 눈을 못 떼고 같이 있는 엄마들과 대화조차 못할 정도로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조금 진정하려 한다. 이제는 지켜보되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아예 내가 나서서 엄마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우리 딸도 같이 놀게 언니(친구 엄마) 딸에게 말 좀 해달라고. 그러면 어느새 아이들은 다 같이 몰려다니고 손잡고 다니고 논다. 언제까지 내가 개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개입하는 것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안정을 찾는 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오늘 띠링! 키즈노트에 알람이 울렸다. (부지런한 담임선생님, 주말에 사진 작업 참 열심히 하신다.)

몇 장의 사진이 나의 눈길을 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우리 딸이 단짝 친구랑 붙어있고 친구 하나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사진이다. 

셋이 있는데 사진 찍을 때 우리 딸과 단짝 친구는 어깨동무를, 다른 한 명의 친구는 동떨어져있는 걸 보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올린 걸까? 그 친구의 엄마가 보면 얼마나 속상할까.


아닌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만약 그 친구 자리에 우리 딸이 있었다면 나는 또다시 마음이 훅 내려앉았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업보.

나의 후유증.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남기 위해 티 내지 않는 법만 수련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래도 그 수련이 쓸모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 중에 혹시 나와 같은 후유증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결국은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무게이지만, 그래도 지금껏 살아있다는 것이 우리의 강함을 반증하고 있는 거라고. 하루하루 잘 버티라고.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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