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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Dec 16. 2021

앉아서 자는 사람

불면의 밤

나다. 앉아서 자는 사람.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만 자다가 갑자기 목이 아파와서 부스스 깨 보면 내가 앉아서 고개는 떨군 채 자고 있다. 이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다들 기겁을 한다. 왜냐면 나는 어깨가 넘는 길이의 머리카락의 소유자로서 내가 앉아서 고개를 숙이면 길고 긴 머리카락이 바닥을 향해 축 늘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증상은 보통 엄청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데 한동안은 초과근무로 인해 빈번하게 늦는 남편 덕분에 퇴근 후에 육아를 독점하다 보니 체력이 안돼서 그냥 떡실신을 하느라 자는 동안 몸이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런데 어제, 오래간만에 목이 아파 눈을 떴더니 내가 앉아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인지를 했으니 다시 눕는  맞지만 이상하게 나는 다시 누워서 자리 잡는  귀찮아서 그냥 그대로 잠을 청한다. (물론 누가 눕혀주면  손길에 몸을 맡겨 다시 누워 잔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 흡사 기차가 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윗집에서 의자를 드륵드륵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잠결이지만 아주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갑자기 겁이 났다. 온몸이 굳어오는 듯한 공포를 느끼려던 찰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 잠결에 손을 빨면서 습관대로 내 손을 찾고 있던 것이다. 급격하게 안정을 찾은 나는 아들 곁에 누웠다. 그리고 그 소리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남편의 코골이 소리였다. 베란다 쪽 방에서부터 들리는 정말 우렁차고 대찬 소리. 정체를 알게 되니 갑자기 분노가 끓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짜 한대 걷어 차주고 싶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렇게 어제 나의 잠은 끝이 났다. 새벽 네시.

출처: unplash



내가 잠을 못 자는 이유가 남편의 코골이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평소에 커피를 엄청 좋아해서 드립 커피로 하루 두 잔, 기성 블랙커피로 한잔 정도를 마시는데 일반 생각하는 양이 아니라 500ml 컵으로 세잔을 마신다. 그럼 하루에 총 1500ml 정도를 마시는데 또 그렇다고 진하게 마시는 건 아니다. 우리 엄마의 표현을 빌자면 드립 커피에 희석을 너무 많이 해서 커피 느낌만 날 정도의 커피를 그 정도 마신다.


하지만 연하게 마시든 진하게 마시든 수치상으로만 보면 엄청나게 마시는 거니까 이 또한 내가 못 자는 것에 톡톡히 한 몫할 것이다. 평소에 애들이랑 같이 잠이 들면 10시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깨면 2-3시쯤. 깨면 깬 김에 화장실 가고 그렇게 몸을 움직이면 다시 누워도 잠이 안 온다. 그러면 책을 폈다가 핸드폰 봤다가 티브이도 봤다가 하면 한두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그러면 4-5시. 서서히 밝아지는 바깥을 보면 당장 내가 일구어야 할 하루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부스럭 부스럭 뒤척 뒤 척하다 보면 한 시간. 6시는 돼야 잠이 든다. 그러고 7시 20분 기상.


내가 무슨 4당 5 락(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의 마음가짐으로 시험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의도치 않게 4시간에서 5시간밖에 하루에 못 자는 것이다. 이런 나날들이 한 3일 4일 이어지고, 어쩌다 아이들과 같이 잠들지 않으면 신이 나서 놀다 보면 새벽 2-3시는 돼야 잠자리에 들어가지만 또 뒤척 뒤 척하다 보면 4시.. 그럼 그날은 진짜 3시간 정도 자는 것인데, 이러면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참 아이러니한 건 정말 정말 너무 피곤해서 누우면 당장 잠이 들것 같은 날은 또 막상 잠이 안 온다. 너~무 배고프면 정작 많이 못 먹는 것처럼 잠이 안 오는 것이다. 몸은 저 지하 1000m까지 가라앉는 느낌인데 정신은 또렷또렷한 것이다. 그럼 그다음 날은 진짜 눕자마자 기절이다. 그런 날은 10시부터 잠들어서 7시까지 완전 폭 잠!


나의 수면 패턴을 아는 한 지인이 폭잠이 진짜 건강에 안 좋다고 말해줬지만, 어쩌다 놀다가 늦게 자는 걸 제외하더라도.. 중간에 깨는 건 내 의지가 아닌걸..


출처: unplash / 내 사랑 커피 / 드립 커피에 요새 푹 빠져있다



게다가 나는 육아맘이다. 아이 둘을 양쪽에 끼고 자는데 첫째는 이제 컸다고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잘 자는데 둘째는 뒹굴뒹굴도 모자라 풍차가 돌아가듯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지를 않나, 돌면 얌전이 돌 것이지 꼭 나를 때린다. 진짜 퍽! 그럼 잠결에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잠이 홀랑 깨버린다. 그럼 그날도 그냥 끝이다. 잠 끝.


그러면 남편에게 같이 자라고 하면 될 텐데, 이것조차 안된다. 아이들이 아빠랑 자려고 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어쩌다 잘 일이 생겨도 첫째가 남편 코 고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깨버린다는 것. 언젠가 여행을 가서 한 방에서 같이 잘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는데 나는 몰랐는데 남편 말로는 첫째가 한 3-4번은 자신을 깨웠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남편도 살을 빼든(코로나도 심각하고 미세먼지도 안 좋은데 자꾸 바깥에 나가서 운동해야 하는데 못하게 한다고 핑계 대지 말고 홈트 하세요.) 술을 끊든(남편은 술을 마시면 정말 평소보다 두배의 크기로 코를 곤다. 미칠 지경) 해야 하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결국 나와 아이들이 견디며 하루하루가 지나갈 뿐. 물론 남편들이 코 골아서 각방 쓰고 괴로워하는 집안이 어디 우리 집뿐이랴. 이상하게 남자가 코를 많이 곤다는 소리를 못 들어봤는데 남편들이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미쳐버리겠다는 글은 여기저기서 정말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리고 더 심각한 건 이거다. 내가 혼자 못 잔다. 혼자 자면 100% 가위를 눌린다. 지금의 친정집으로 이사 간 후 드디어 나만의 방이 생겼는데 처음에는 괜찮다가 어느 순간부터 가위를 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항상 불을 켜놓고 자던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금도 가끔 남편이 애들 옆에 누워만 있겠다고 했다가 잠이 들면 내가 혼자 자야 하는 상황이 되는데, 그럴 때면 불을 켜놔도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




이쯤 되면 드는 생각.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커피를 끊을 수도 없고(나는 진짜 커피를 사랑한다. 약간 중독 같기도 한데 아침에 아이들 등원시키고 나서 운전석에 앉아서 집에서 텀블러에 담아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진짜 갑자기 몸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다. 이런 나의 엔도르핀을 어찌 끊으랴.) 아이들과 떨어져서 잘 수도 없고. 남편과는 시끄러워서 같이 못 자고.


정말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산신령님이라도 나타나서 나에게 해결책을 주었으면 좋겠다.

커피를 디카페인으로 바꿔볼까.


오늘도 불면의 밤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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