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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2)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

by JA

문이 쾅! 열리는 소리에 모든 시선이 그 남자아이의 여자 친구에게 쏠렸다.

나도 당연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살벌한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많이 화가 난듯한 표정으로 우리 교실에 들어온 그 여자아이는 쿵쿵거리며 칠판 쪽으로 다가가

분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두 글자를 썼다.


"걸레"


칠판이 가득 찰 정도로 큰 글씨로 쓰인 두 글자.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빛.

그리고 그 눈빛을 뒤따르는 수많은 눈동자들. 황당했다. 당황스러웠다.

지금이야 저 두 글자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멍청할 정도로 순진했던 열여섯의 나는 저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나를 바라보는 눈들 가득 어떤 경멸과 비슷한 감정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겠구나, 하고 추측했을 뿐이다.


그 두 글자는 쉬는 시간 내내 칠판에 적혀있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 아이가 대충 지워놓고 자기 반으로 돌아갔지만 아마 선생님의 눈에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해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학교에 와서 내 책상에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거나, 엎드려있거나, 하하호호 거리는 다른 아이들을 하루 종일 바라보거나, 가끔 화장실에서 울었을 뿐인데 왜 나한테 저러는 걸까. 그냥 내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화가 나는 걸까.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문제의 남자아이가 우리 반 교실을 향해 하트를 만들어 보였을 때

하필 나랑 눈이 마주쳤다. 나는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남자아이도 무표정이었다. 앞선 글에 썼듯이

나는 '여자 친구한테 잘 보이려고 별짓을 다하네'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표정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눈이 1초, 2초, 3초, 4초, 5초간 마주쳤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하트의 주인공이 나였을까? 아니,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이 마주친 이유는 아마 내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에 사랑을 가득 담고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여자아이들과 달리 나는 아주 한심하다는 듯 생각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 생각을 감추려 아주 힘껏 무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눈에 띄었겠지. 그런데 그것이 입과 입을 타고 엉뚱한 소문이 되어 당시 여자 친구 귀에 들어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치욕스러운 꼬리표를 달게 된다. "걸레"



그런데 그 여자아이의 괴롭힘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체육시간이었다. 그 여자아이 반과 우리 반이 한 운동장에서 같이 체육수업을 듣고 있었다.

갑자기 누가 나의 팔을 끌었다. "일진" 여자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반항을 할 틈도 없이 질질 끌려갔다.

끌려간 곳은 운동장 한쪽 끝에 있는 수돗가 근처였다. 또 그 남자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 남자아이가 엉거주춤하게 자기 발목을 잡고 앉아있었고 그 주위로

여자 일진 애들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 친구의 모습도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그 여자아이는 큰소리로 말했다.


"야! 네가 좋아하는 남자애 여기 있으니까 어디 한번 일으켜봐!"


황당했다. 지금은 화가 나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웠고 괴로웠다.


"얘 지금 축구하다 다쳤다고! 안 일으키고 뭐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관통하듯 들렸다.


선생님한테 무자비하게 혼난 학생처럼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일어나.."라고 말했다. 그 남자아이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당시 받은 상처가 너무도 생생해 화가 난다. 그 남자아이는 왜 거기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날 쳐다보고 있었을까. 뭐 하는 거냐고 화라도 냈으면 난 수업 중이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초등학교 때 나를 그렇게 벌레 취급했듯이 그 당시에도 내 존재를 더럽다는 듯이 꺼지라고 욕이라고 했으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진짜 그 남자아이는 그냥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그 여자아이의 분노를 더 일으켰다.


비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은 뭘 하고 있었을까. 수업 중이던 장소로 돌아간들 나를 반겨줄 사람 하나 없었겠지만 제지가 있었다면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에서만큼은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가버렸다. 둘만 남았다. 나와 그 남자아이. 그 남자아이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때까지 앉아서 약간 아픈듯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다가 둘만 남겨지자 자기도 일어나서 가버렸다. 양호실 쪽이었다. 가다가 한번 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둘이 결국 헤어졌구나'하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로 그 여자아이가 이끄는 여자 일진 아이들은 지나갈 때마다 나를 비웃었다. 나는 못 본척했지만 항상 가슴속에 흐르지 못한 체 고여 썩어가는 눈물을 쌓아갔다.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한다. 강산이 바뀌었으면 두 번이나 바뀌었을 시간인데, 이토록 기억이 생생한 건 나에게 마치 형벌처럼 느껴진다. 한 번쯤은 기록으로 남겨야지, 생각했지만 내키지가 않았다.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억지로 감싸 안을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제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나이에 미친 듯이 써 내려간 이유는 어제 아는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티브이를 잘 보지 않는 터라 유행하는 프로그램의 이야기는 보통 지인을 통해 듣는다. 어제도 대화가 오가던 중 "유 퀴즈 온 더 블록" 얘기가 나왔다. 당연히 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몰랐다. 그런데 시작된 이야기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보냉컵을 쥐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렸다.


https://www.mk.co.kr/star/broadcasting-service/view/2022/04/311656/

나는 감히, 하늘이 준 기회를 버리고 이미 망가진 몸을 이끌고 다시 투신한 아이의 마음을 아주 미세하게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무슨 정신 나간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나도 15살에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서 눈물로 유서를 쓰고 그 건물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다고 말하겠다. 차마 앞을 볼 수가 없어서 안경을 벗고 올라갔다. 안경을 벗고 내려다본 세상은 아름다웠다.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 나의 세상은 늘 캄캄하고 아프기만 했는데. 하지만 뛰어내리지 못했다.


수많은 날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옥 같았지만 그날은 정말 죽어야 끝이 나겠다는 마음이 처음 든 날이었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떨어졌을 텐데, 그 한 발자국이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억울했다. 나는 왜 태어나서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나는 뭘 잘못했는가. 한참을 서있다가 내려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당시에는 이 모진 삶을 끝내지도 못하는 내가 미워서 죽도록 괴로웠다.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산다고 말하기에는 그렇지도 못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게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날로부터 십몇년이 지나도록 꾸준하게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지 못한 채 둥둥 떠돌았지만 그래도 내 목숨을 내가 지켰으니 그것만으로도 나 스스로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살았기에 인생 전반전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지금 인생 중반전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넘치게 받고 있다. 그거면 됐다.



겪어보지 못한 이들이 쉽게 하는 말이 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를 가지고 살아라"라는 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정말 겪어보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죽을 용기는 정말 죽기 위한 용기이다. 이 용기는 오로지 죽음만을 위해 그것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마치는 선택을 위해서만 존재하기에 다시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목숨 안 소중하고, 내 삶이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스스로 죽을 생각까지 한다는 건 나의 모든 의지와 의욕, 감정과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기에 죽음으로 마무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저 같은 말은 함부로 건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학창 시절 가장 많이 들었고 그만큼 정말 싫어했던 말은 이것이다.

"네가 마음을 안 열어서 친구가 없는 거야, 친구가 다가오기만을 바라면 어떡해, 네가 다가가야지"

한 번이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철저히 따돌림을 당해봤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다.

마음을 안 열어서? 다가오기만을 바란다? 나보고 다가가라?

외면을 당한다는 것은 그 집단에서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쟤, 좀 이상해"

"못생기고 뚱뚱한 게"

"얼굴만 봐도 토할 것 같아"

"쟤랑 괜히 말 섞었다가 나까지 왕따 되면 어떡해?"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게 가능할까? 물론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게 존재하기에 진짜 낙인을 깨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 자신의 상황을 개선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세상은 그렇지 못했다. 나랑 눈만 마주쳐도 경멸과 무시가 순간 그 아이들 눈에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든 걸 이겨내고 내가 다가갔으면 아마 그 아이들이 도망갔을 것이다. 마치 내가 전염병에 걸린 환자인 것처럼.



제발 학교폭력으로, 혹은 따돌림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저 위에 있는 두 문장을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정정하겠다. 절대 저런 말을 하지 말아라. 죽을 용기로 살라고 말하는 순간, 더 죽고 싶어 진다. 나는 그랬다. 다가가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나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나는 그랬다. 도와주고 희망을 주려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왜 그렇게 적대적이냐고 묻는다면, 진짜 도와주고 싶다면 차라리 당신이 나를 생각하는 그 따뜻한 마음을, 진심을 말해달라고 답하고 싶다.


1초 1초가 흐를 때마다 내 존재가 점점 더 추하게 느껴지는 당사자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하지 마라. 제발. 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다. 가장 괴로운 건 나와 같은 피해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다. 당사자의 고통을 아는 척도 하지 말고, 그 상황을 해결해주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네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정말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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