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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대면. 꼭 그래야 했나.

묻고 싶다.

by JA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대처법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때는 고등학교 시절.

유독 나를 싫어하는 두 아이가 있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도 나를 싫어했는지는 지금까지 직접 물어볼 기회가 없었기에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단 한 가지 정확한 건 끔찍이도 나를 싫어했다는 사실이다.


그 아이들은 소위 말하는 "일진"은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엘리트" 즉,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영향력은 특히나 특별반에서 강했는데

내가 그 문제의 특별반에 들어가게 된다.


나는 공부를 못하지도 그렇다고 엄청 뛰어나게 잘하지도 않는 학생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울에 스카이, 서성한, 중경외시를 제외한 그냥 그런

학교는 갈 정도의 성적이라 하면 설명이 될까. 여하튼 그런 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모의고사에서 내가 전교 30등 안에 들어버린 것이다.

(사실 이것도 나의 추측이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천명이 넘는 학교였고

각 학년에 10개 반 이상씩 있었으며 한 번에 30명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중에 특별반이 한 30명 정도 되었으니 내가 30등 안에 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특별반에 입반하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게 문제였다. 바로 "입반"

첫날부터 순탄치 않았다.

앞서 언급한 두 명의 아이는 나의 특별반 일반에 치를 떨었고

내 자리에 온갖 쓰레기를 가져다 놓는 악행을 저지른다.


특별반이고 뭐시고, 심화수업이고 뭐시고

순식간에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내 자리를 보며

여기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무실로 향했다.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동시에

두 명의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한 명은 특별반 담당 선생님이었고

한 명은 나의 담임선생님이었다.


특별반 선생님은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의 미래를 생각해라.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너도 알지 않느냐, 특별반은 모의고사 볼 때마다 물갈이된다는 걸.


하지만 나도 강경했다.

강경할 수밖에 없었다.

난 정말 심리적으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너까짓게 감히 이 특별반에 들어왔냐고 하는 듯한 시선들

특별반에만 주어지는 간식을 나만 못 먹고 엎드려있어야 하는 비참함 등은

날이 가면 갈수록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때 담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도대체 누가 널 그렇게 괴롭히는데? 말해봐"


멍청했던 나는 그 질문에 그 두 명의 이름을 말해버리고 만다.

지금의 나였다면 다 필요 없이 그냥 나가게 해달라고 했을 텐데,

나는 도대체 어떤 불가사의한 희망을 가지고 담임에게 그 아이들의 이름을 고한 걸까.


나보다 더 멍청했던 담임은 그 아이들을 교무실로 부른다.

그렇게 이루어진 삼자대면. 담임과 그 아이들과 나.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네가 얘 괴롭혔어? 너 때문에 특별반에 못 있겠다잖아"


그때는 한심하게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하고 어안이 벙벙해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담임이라는 사람이 할 짓이었나 싶다.

그 아이들은 분노에 가득 차 나를 보았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이에서 담임만이 계속 추궁하고 설교를 늘어 놀뿐이었다.


삼자대면 이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쓰레기를 투척하는 듯한 눈에 보이는 괴롭힘은 없어졌지만

그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무리들은 경멸스럽게 날 쳐다보곤 했다.

그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담임은 나한테 복수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왕따 주제에 당돌했던 나에게.



수업시간에 의욕을 상실한 건 아니었는데도

계속 잠이 왔다. 눈이 감겨왔다.

담임은 그걸 견디지 못했다.

평소에도 "너희들이 고통이 나의 기쁨"이라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말들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사람이니

내가 자기 수업시간에 열심히 졸면서

영어는 좋다고 혼자 야자시간에 죽어라 공부해서

늘 좋은 점수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아니꼬웠을까.


한 번은 정신없이 졸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담임이 교과서였는지 보충교재였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두꺼운 책 모서리로 내 정수리를 정확하게 내리찍었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징계받고도 남았을 텐데, 안타깝게 15년도 더 된 일이다.)

그리고 교무실로 끌려갔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며 담임은 이렇게 말했다.


"난 네가 싫어"


어떻게 선생이 학생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도 담임이라는 사람을 정말 미치도록 싫어했기 때문에 그저 듣고 있었다.

아마 나를 거쳐간 수많은 영어 선생님(공교육 사교육을 가리지 않고) 중에

내가 유일하게 싫어했던 영어 선생님이 저 선생님일 것이다.

본인도 알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대학 4년, 사회생활 2년을 통틀어

영어를 참 절실하게 잡고 있었다. 지금은 영어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만

저 시절 담임이, 그것도 영어 선생님이었던 담임이 나를 조금 더

사랑으로 이끌어주었다면 불혹이 다 되어가는 이 나이까지

영어라는 미련을 놓지 못하는 내가 아닌, 영어를 벗 삼아 사는

조금 더 멋진 내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능이 끝났다.

나는 거주지 지역의 국립대 합격과 흔히 말하는 스카이 대학 중 한 곳의 대기 4번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최종적으로 선택은 국립대를 갔고, 모든 게 결정 난 후 교내에서

담임과 마주쳤다. (이 선생님이 고3 담임은 아니었다.) 이제 졸업하면 볼 일도 없을 텐데

마지막 말이라도 좀 사랑으로 해주지. 그녀가 건넨 마지막 한마디는.


"수능을 잘 봤나 보다? **대 붙었다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선생님이었기에 어떤 정체불명의 희망을 잡고 있던

내가 순수했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대체 뭘 기대한 걸까.




그런데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6-7년 전, 업무차 방문한 출장지에서 그 선생님을 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큰 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느다란 몸, 큰 안경까지.

그런데 단 한 가지 어색했던 건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미소였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나를 보려고 한 게 아니었기에

1초는 될까 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지나갔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나를 못 알아봤나?" 하는 생각과 "이름표를 달고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진짜 못 알아본 것이든, 알아보고도 지나간 것이든

상관없다. 더 적확 해진 건 그녀는 끝까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문득 궁금해져 사내망으로 검색해보니

나의 모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전히 교사의 신분인걸 보니 승진은 진작에 포기했나 보다.


직접 찾아가 굳이 궁지에 몰려있던 나를 절벽 끝까지 몰아붙일 필요까지 있었냐고.

아무리 미워도 당신은 선생이었고 나는 제자였는데,

어떤 아이들은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그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공부해서 대학가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나에게 삼자대면이라는

그런 방법밖에 없었냐고 묻고 싶다.


나의 가능성을 믿고 나를 선생님으로 키우고 싶어

선도부 부장, 환경부장에 강력 추천해서 활동하게도 하고 여러 가지 글쓰기 대회에

출전시켜 수상도 하게 했던 본인 옆의 선생님들을 보며 느끼는 바가 없었는지

묻고 싶다. 물론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긴 하지만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는 거라고.

당신 같은 선생님들만 있었으면 진작 나는 죽어버렸을 거라고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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