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자격이 있는 걸까?
옛날에 아는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아이 때문에 너무 화가 나면 이런 주문을 외우래.
저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다. 내 자식이 아니다. 윗집 자식이다. 아랫집 자식이다. 옆집 자식이다.
남의 자식한테는 아무리 화가 나도 내 새끼한테 하듯이 소리 지르고 화내지 못하니까
참아진다고 해서 해봤더니 좀 화가 가라앉더라고."
그런데 모든 건 케바케, case by case, 나한테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다온이가 울기 시작했다. 왜 울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난 씻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아이가 우는 소리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약간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언젠가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애기 엄마가 결국 아기 우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벽에 던져 숨지게 한 사건을 접한 적이 있다. 그만큼 아이가 우는 소리는 참기가 힘들다.
하지만 심호흡을 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하지만 내가 다 씻고 나올 때까지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되레 짜증까지 내면서 괜히 동생에게 화풀이를 하자, 이제 좀 컸다고 누나에게 지지 않는 둘째가 소리를 질러 집안이 아주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다시 심호흡을 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잘 참았다.
다온이를 불러 물어봤다. 아이의 눈과 코는 오랜 시간 운 덕에 벌게져있었고, 볼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다온아, 속상해?"
"응"
"다온이가 계속 우는데 엄마 아빠가 모른척해서 엄청 속상했지?"
"응"
아이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아이가 짠하기도 하고, 아침마다 왜 이래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하고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지만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주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금세 마음이 풀린듯한 아이는 감정을 추슬렀다. 여기서 끝났으면 아주 행복한 아침으로 마무리되었을 테지만 결국 시한폭탄이던 내 마음이 별거 아닌 것에 터지고야 말았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거실. 정말 말 그대로 오만 난장판. 아침부터 읽지도 않을 책을 다 끄집어낸 둘째와, 굳이 색칠공부를 하면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늘어놓은 첫째, 어제 읽고 책장에 넣어놓지 않은 책들, 어쩌다 깨끗하게 정리해놔도 일주일을 못 가는 창고가 된 식탁과, 각종 약과 영양제로 가득한 싱크대까지. 한 달이 넘게 방치된 여기저기서 받아온 물건들.
결국 분노조절은 실패했다.
"너네 이리나와!"로 시작한 나의 화가 제어장치 없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누가 책 꺼냈어? 색칠공부 안 치워? 엄마가 장난감 정리 수시로 하랬지? 장난감 방만 들어가면 숨이 막혀! 오늘 저녁에 와서 정리 안 하면 아주 다 버려버릴 거야! 진짜 버려버릴 거야!"
그리고 그 화는 남편에게도 미쳤다.
"당신은 식탁이 안 보여? 싱크대가 안 보여? 내가 한 번씩 정리하고 꼭 티 내는 건 이 모습을 좀 지켜달라는 거야!
그리고 당신이 안 쓸 거면 제발 어디서 이것저것 받아오지 좀 마. 누가 주면 고맙게 받고 안 쓸 거 같으면 남들 주란 말이야! 주든지 버리든지! 이놈의 도마는 대체 왜 받아온 거야? 고맙다는 성의를 하려면 시대에 맞게 커피 상품권이나 뭐 차라리 책을 주던가, 누가 요새 나무도마에 음식 해 먹는다고 도마를 주고 난리야, 안 쓴다고! 난 실리콘 도마 쓴다고! 손목 나가서 나무도마는 들지도 못해!!!!!!!!!!!!!!!!!!!!!!!!!!!!!!!"
가만히 설거지 하던 남편은 갑자기 쏟아진 분노 잔소리 폭탄에 넋이 나갔다. 왜 나한테까지 뭐라 하느냐는 말에 정신이 좀 들었지만 이미 폭발한 나의 감정 화산은 멈출 줄을 몰랐다.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났다. 화가 나는 동시에 가슴이 답답해져 나조차도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결국 아이들 등원을 남편에게 맡기고 오른 출근길, 엄청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아주 격하게 운전을 했다.
알 수가 없다. 평소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어도 결국에는 아이들을 안아주고 사과하고 아이들이 잘못한 점을 차분하게 얘기해주는 나인데 오늘은 계속 계속 화만 났다. 화가 솟구쳤다. 그리고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미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답답한 감정은 여전히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아이들은 언제까지 울까?
우리 딸은 왜 내가 조금만 단호하게 말해도 눈물부터 글썽거리는 걸까?
우리 아들은 왜 내가 조금만 표정이 굳어도 화난 거냐고 물어보는 걸까?
누가 보면 내가 엄청 애들을 때려잡으면서 키우는 것처럼.
지인에게 상담을 했더니 다온이는 유춘기(유치원 사춘기)가 온 것 같고, 나를 닮아 눈물이 많은 거 아니냐고 했고, 원래 둘째들은 눈치 100단이라 아마 눈치 보느라 자꾸 그런 질문을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결론은 우리 애들도 다 겪은 거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을 더 보듬어주라고 조언을 해줬다.
그래, 안다. 나도 안다. 너무 잘 알아서 탈이다.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보듬어주고 보듬어 줘야 한다는 걸.
그리고 육아는 인내라는 걸. 인내 인내 인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이 시간들은 지나갈 것이고,
나중에는 이 시간들이 그리워질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속도가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를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안다. 안다. 수많은 책들이 이야기해줬고 많은 사람들 또한 말해줬기 때문에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시기가 부모에게 가장 힘든 시기이고,
부모도 사람이기에 너무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고,
다음에 더 많이 안아주면 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 아이들에게 더 유연해질 것이며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것도 안다.
그래.. 나는 알고 있다. 쓰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이 혼란한 마음도, 끝없이 이어지는 체념과 합리화와 죄책감의 행렬도 언젠간 다 지나가겠지.
반성을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데
반성은커녕 마음이 착잡해지기만 한다.
끝없이 내가 부족한 사람인 걸 인정해야 하는 육아.
너무도 자주 아이들에게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육아.
"나는 과연.. 엄마 자격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