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Oct 01. 2022

이 죽일 놈의 사랑

가슴에 맺힌 가사

내가 브런치에서 가장 오래 흠모한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진샤] 작가님이다. 진짜 돌아서면 방금 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도 가끔 달력을 보며 5로 끝나는 날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건 내가 그녀의 글을 내심 기다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진샤 작가님 글 중에 [추앙]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유를 풀어낸 글이 있었다. 해당 단어가 나온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사실 글은 훌륭하다 생각했지만 잘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드라마를 안 보는 삶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저 순간만큼은 조금 아쉬웠다. 공감할 수 없었기에.


그런데 얼마 전 출근길에 음악을 듣다 어떤 노래의 한 구절이 마음을 뚫고 지나갔다. 진짜 가슴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아파왔다. 나는 애절한 사랑을 하는 중도 아니고 절절한 이별은 더더욱 할 일도 없는데, 왜 그 가사가 이리도 마음에 내려앉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노래가 드리웠을 그 드라마를 안봐서 더더욱 날것으로 이 구절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생각난 것이 진샤 작가님의 추앙에 관한 글이었다. 그제야 그녀가 추앙이라는 단어를 수면으로 멋지게 끌어낸 작가를 향해 표현한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주 조금. 정말 작게.


지극히 주관적이다. 사람이 느낀다는 건.

그래서 이제 말할 이 가사가 무척이나 gorgeous(이 영어단어를 원어민에게 들었을 때 이해한 의미를 도저히 내 한국어 단어력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 그대로 쓴다.)하게 느껴진 건 나만의 감상이다.

이거다. 가슴에 맺힌 가사. 저 오~가 산통을 깨긴 하지만 그렇다고 본래의 감성까지는 흐리지 못한다.


미움으로 깊게 자라난 그대가

나의 가슴을 뚫고

사랑이란 낫지 않을 뿌릴 내려


지독히 미워했던 사람이 사랑으로 뿌리내리는 감정은 무엇일까. 그 감정을 버틸 수 있는 가슴은 온전할까.


불꽃이 튀기는 20대도 아니고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이 무슨 철 지난 감성인가 싶지만, 여전히 귓가에 흐르는 이 가사가 또 한 글자 한 글자 맺힌다.


출처 지니(genie)뮤직







작가의 이전글 남의 자식 아니고 내 자식인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