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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Dec 02. 2016

나는 엄마다. 1

출산

11월 28일. 드디어 우리 아가가 세상밖으로 나왔고 나는 내 인생 최고의 고통을 맛보았다.


40주를 채우고도 나올 생각이 없던 우리 아가덕에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고,


촉진제를 맞고 딱 9시간 진통 후에 나는 임산부에서 엄마로 바뀌었다.


진통은 살인적이었고 무통주사는 나에게 구세주와도 같았으며 마지막 힘주기는 나라는 사람의


한계를 여실이 느끼게 해주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출산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묻는다면 무통주사맞기전 (즉 자궁이 3-4cm열리기까지)


까지의 고통은 괴로워도 참을만 하지만 마지막 힘주기는 정말 .. 다시는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고


말해줄 것이다. 출산 후 4일이 지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둘째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려다가도


마지막 힘주기 두시간을 생각하면 정말 저절로 고개가 저어질 정도로..


오죽하면 살려달라는 말이 나왔을까.


게다가 나는 체내 산소포화도가 낮아서 아가에게도 산소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해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마지막 힘주기, 그 지옥같던 시간에도 호흡에 신경썼어야 했다.


정말 초인이 된것만 같았다. 후 하 후 하..


그리고 아가가 나오는 순간. 수 많은 출산후기에는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고


적혀있었지만 나는 오직 진통이 끝났다는 안도감만 느꼈다. 그리고 아가가 품안에 안겼을 때.


그 감격이란. 묵직하고 따뜻한 아가의 몸이 온몸으로 느껴질 때 그 감동이란.


아마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남편들은 절대 알 수가 없겠지 후훗.  


여튼 그 후에 후처치는 전혀 아프지 않았고 ( 담당 원장님이 너무 통증을 잘 참는다고 진통중에 한번,


후처치 때 한번 감탄하셨다.) 태반은 나오는 느낌 조차 없었다.


물론 태반 빼낸다고 배를 꾹꾹 눌러대서 그건 너무 아팠다. 그 후에도 오로확인 한다고


수차례 간호사들이 배를 누르는데.. 그것도 아팠다. 참을 수 있을 만큼이지만 뭔가 언짢을 만큼.


이런 과정을 거쳐 나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아가는 정말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 처럼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병원에 27일 8시에 입원해서 28일 4시까지 공복이었기 때문에 입원실 올라와서


5시에 주어진 저녁은 정말 꿀맛같이 맛있었고 ( 단, 메뉴는 별로였음--; 단지 배가고파서..)


그 후에도 주구장창 미역국이 나왔으며 반찬들의 상태는 점점 좋아졌지만 생각보다 입맛이


안돌아서 거의 미역국만 클리어 했다. 내 몸을 위해서. 고생했으니까.


그리고 퇴원. 역시 자연분만이 좋긴 한가보다. 가족분만실 이용에 병실도 1인실중에 중간급으로 사용했고


2박에 아침 점심 저녁 야식까지 꼬박꼬박 먹고 후처치 진료 두번에 약도 나흘치 주었는데


40만원이 채 안들었다. 뭐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계산서를 보니 조금 놀라웠다. ㅎㅎ


만약 다인실을 썼으면 이십몇만원정도 나왔을 듯..


되레 신생아 검사들이 너무 비싸다. g스캐닝을 뺐음에도 20만원이 넘는 금액이 청구되었다.


그래서 총 오십몇만원을 계산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올때는 마냥 좋았었다..앞으로 내 운명이 어찌될지도 모른체..


영광의 자연분만 병원 팔찌. 잘 간직해서 아가가 크면 보여줄것이다. 너와 나의 첫 연결고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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