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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y 10. 2022

엄마, 꽃을 먹을 수 있어?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시골이라 택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한꺼번에 열개가 넘어 보이는 택배 상자가 교무실로 들이닥쳤다.

그런데 그중에 아이스박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음!? 학교에 아이스박스로 올 것이 없는데!? 싶어서

전표를 보니 학교 이름이 아닌 선생님 이름이 적혀있었다. 상품명은 기타.

선생님의 개인 택배구나 싶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그 안에는 내가 상상하지 못한 물건이 들어있었다.


바로 "식용꽃" 먹을 수 있는 꽃이었다.

너무 신기해서 선생님께 "선생님, 이거 뭐예요?"라고 묻자

"화전 만들 때 쓰는 식용 꽃이에요." 하시길래 너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저 식용 꽃 실제로 처음 봐요!"라고 외치고 말았다. 부끄러웠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웃으시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내 자리에 돌아와 생각해보았다.

화전을 만들어본 적이 있나? 아니, 만든 거는 고사하고 먹어본 적은 있나?

없었다. 나에게 화전이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선생님은 화전도 만드시는구나.., 하고 부러운 마음과 신기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며

그날 오후가 되었다.


한참 다른 선생님과 업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까 화전의 주인공인 선생님이

행정실로 들어오셔서 무언가를 쑥 내미셨다. 바로 그 식용꽃이었다.

집에 가서 우리 애들이랑 만들어보라면서 일부를 챙겨 오신 것이다. 아, 감동! 이 감동을 어떡하지!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되었다. 화. 전.


 


사실 우리 딸은 화전을 보자마자 계속 먹어보고 싶다, 빨리 만들고 싶다 노래를 불러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해주고 싶었지만 밀가루 혹은 찹쌀가루 혹은 부침가루, 여하튼 어떤 가루든지

반죽에 자신이 없는 나는 여행을 핑계로 피곤함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런데, 꽃을 받은 지 일주일이 돼가자 왠지 꽃이 상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받은 어느 날! 마침 친정엄마가 오셨다.

오 구세주여!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로 화전을 만들기 시작!



작은 손들로 조물조물 반죽을 동그랗게 만들고, 그다음 납작하게 누르고 내가 씻어다준 꽃을 올리면 완성!

찹쌀가루나 핫케익 가루로 하면 더 맛있었을 것 같았지만 우리 집에는 부침가루 밖에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예상외의 소득은 부침가루가 간이 되어있어서 따로 간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무슨 꽃인지도 사실 잘 몰랐지만 그럼에도 신기했던 건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꽃의 종류가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꽃을 아무리 싹싹 씻었어도 자연의 냄새, 즉 풀냄새가 가득하다는 것.


저 왕부침개 같이 넙적하고 꽃이 무려 네 송이나 들어간 건 우리 둘째 라온이의 작품이다. 저렇게 크게 만들어놓고 막상 안 먹은 게 함정. 저렇게 많이 만들었음에도 꽃이 한 판 더 만들 정도로 남았는데 진짜 화전의 맛을 본 우리 아이들이 다시 체험하기를 꺼려해서(ㅋㅋ)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제 다 만들었으니 부쳐보자! 반죽도 친정엄마가 해주고 굽는 것도 친정엄마가 해주셨다.

엄마의 노련미 넘치는 굽기 덕분에 무사히 완성된 우리의 화전. 내가 부쳤으면 꽃이 다 타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바삭바삭 구워져서 꽃 과자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꽃을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자연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어서 아이들이 그냥 먹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등장한 설탕! 꿀이나 올리고당에 찍어먹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랬으면 단맛을 선호하는 우리 아이들이 아마 거의 부먹(부어서 먹기) 수준으로 할 것이 눈에 선했기에 설탕을 내놓았다. 그랬더니 잘 안 찍힌다고 찡얼찡얼.


결국 우리 아들은 꽃이 안 올라간 부침가루 과자만 하나 먹고 땡! 우리 딸은 한 5개 정도 먹은 것 같다. 그런데 5개 정도 먹고 풀 맛이 입에 배었는지 꽃은 안 먹으면 안 되냐고 눈치를 보며 묻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어이없으면서도 웃기던지. ㅎㅎㅎㅎ꽃향기만큼이나 달달한 맛을 기대했을 우리 딸. 앞으로 화전 얘기는 안 꺼낼 것 같다.


마음 따뜻한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이랑 화전도 만들어 먹어보고, 친정엄마도 드셔 보고, 나도 먹어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엄마가 텃밭에 핀 어떤 꽃도 먹을 수 있다며 다음에 가져올까? 물으셨지만 사양했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식용꽃이라고 판매하는 것도 풀냄새가 장난 아닌데 텃밭에서 뜯어오시면.... 악! 상상만 해도 먹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혹여 기회가 된다면 엄마가 핫케익 가루를 가져오셨을 때 그 위에 남은 꽃을 올려서 구워볼 생각이다. 우리 아이들은 싫어하겠지만 남은 꽃을 버리기에는 아까우니까! 꽃장식 핫케익을 만들면 이 글에 추가 후기를 써볼 예정이다.


한 번쯤 아이들과 해볼 만한 화전 만들기, 진짜로 딱 한번 해보는 걸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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