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May 14. 2022

인간관계의 단상

#1.

딸의 교우관계로 속앓이를 한지 벌써 3개월째이다. 여전히 나는 딸이 어떤 말을 하면 속이 상하고 화도 나고 심란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내려놓고자 스스로 노력을 하다 보니 이제는 딸이 어떤 말을 해도 유연히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혼자 삭힐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고나 할까.)


며칠 전 딸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이자, 아는 언니인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언니가 우리 딸을 힘들게 하는 아이의 엄마와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딸이 자신의 딸을 3일 연속 때렸다고.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얘기지?


분명 지금까지는 그 아이가 우리 아이를 괴롭혀 왔는데, 이제 상황이 역전된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 우리 딸 이야기만 들어온 걸까?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다고 딸한테 대놓고 그 아이를 때렸냐고 물어보면 혹여나 진짜 때렸어도 나한테 혼날 것이 걱정되어 안 했다고 할 것이니 그럴 수도 없고 답답했다. 그러던 중 어제 딸이랑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딸이 그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 아이가 또 자기를 혼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회다 싶어 물었다. 


"딸은 그래서 어떻게 했어?"

"그래서 내가 엄마 **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어"

"그랬더니 걔는 어떻게 했어?"

"나를 툭 치고 갔어" -

"딸은 또 어떻게 했어?"

"나는 걔를 못 본척하고 지나갔어"

"너무 화가 나서 다른 행동을 하진 않았고?" - 의도적 질문이었다. 

"어떤 행동?"

"걔처럼 똑같이 치고 가거나 아니면 때리거나 밀거나"

"아니, 안 그랬어"

"진짜? 엄마가 듣기로는 딸도 치고 갔다던데!?" - 완전 의도적 질문


이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을 던지고 나는 긴장했다. 혹여나 딸의 눈빛이나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을 발견한다면 이건 100% 우리 딸도 어떤 물리적 행동을 취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딸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 난 안 그랬어 난 그냥 걔를 모른척했어"


물론 모른척하는 행동도 잘한 행동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진짜 진실은 그 아이와 우리 딸만 알겠지만 나는 우리 딸을 믿는다. 대화를 끝내고 아이들을 재운 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중 유난히 마음에 걸린 기억이 있었는데 며칠 전 놀이터에서 그 아이를 만났던 일이다. 


그날은 유난히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딸과 같이 유치원이나 학원을 같이 다니는 아이들이었기에 내가 다 아는 사람들이었다. 엄마들과 얘기를 주고받으면서도 계속 우리 딸과 그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마음이 안 좋았다. 그 아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자꾸 겉돌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겉돌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 상대적으로 우리 딸은 기세가 등등해 보였다. 작년에 같은 반 친구들이 많아서였는지, 자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였는지 아이들을 리더 하며 방방 뛰고 있었다. 내가 너무 아이를 약하게만 본건 아닐까. 다양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는 건데. 아무래도 지금의 반에는 작년 한 해 환상의 궁합으로 잘 놀던 아이들과 떨어져서 아이에게도 적응할 텀이 필요했고, 결국 그건 아이가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도 없으면서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건 아닐까. 하는 자전적 반성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매번 이런 상황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일에 관한 나의 생각을 섣불리 누구에게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여전히 인간관계에 예민한 사람이기에 앞으로도 예민하겠지만 그건 나의 사정이기에 나 혼자 스스로 삭히고 가끔 답답할 때면 이렇게 글로 풀어야겠다. 그리고 우리 딸을 더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 딸은 충분히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2.

수년간 지속해온 모임이 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모임의 한 멤버에게서 다른 멤버가 탈퇴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황당하였다. 이게 무슨 말이지? 머리는 듣자마자 이해를 했지만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모임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멤버였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모임의 멤버 중에 일부가 우연히 어떤 장소에서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그 모습을 그 멤버가 목격했고 왜 자신을 불러주지 않았는지, 그리고 단톡방에 왜 공지를 올리지 않았는지를 항의했다는 것이다. 서운한 마음은 이해한다.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 나도 가끔 나를 제외한 모임의 멤버들이 모였다는 소식을 듣거나 카톡 사진에서 보면 서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서운하지만 서운한 마음에서 그친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면 즐거웠겠지만 그다음 날이 주말이 아닌 이상 너무 피곤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을 꺼트리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탈퇴 선언과 단톡방에서 나간 행동에 남은 멤버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당연했다. 이제 실외 마스크가 의무 해제되면서 우리도 3년 만에 정기모임을 제대로 해보자고 날도 잡아놓은 상태였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이란 말인가. 모임의 회장은 이틀 밤을 잠도 못 잤다고 했다. 당사자는 어떨까. 당사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모임이 함께한 세월이 이렇게 가벼웠나. 엄청나게 각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하호호 웃던 나날들이 사진 속에 기억 속에 선명한데. 이렇게 끝내지 않아도 결국에는 언젠가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이사도 가고 학교도 옮기고 직장도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는 것을, 굳이 이렇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남겨가며 선을 그을 필요가 뭐가 있을까. 


정기모임은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우리는 그대로 이 자리에 있을 테니 마음이 변하면 돌아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와서 지금의 이 시기들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같이 웃을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나는 불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멤버가 다시 모임에 돌아오려면 한두 명이 아닌 열명 가까이 되는 멤버들이 각자 가질 수 있는 우연의, 혹은 약속의 사적 모임들을 인정하고 서운하더라도 혼자 삭히거나, 혹은 서운해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힘들 것이다. 이런 어두운 예측에도 나는 그녀가 돌아오길 바란다. 


언젠가 나에게 "너는 나랑 비슷해"라고 말했던 그녀. 나도 공감한다.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내가 느끼는 그 무언가를 말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가 비슷하다는 것이 나에게 좋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돌아와요 그대. 



매거진의 이전글 마주할 때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