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울고 싶다.
나는 요새 계속 울고 싶다. 사람과 얘기하다가도 울컥, 음악을 듣다가도 울컥, 가만히 있다가도 울컥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하지만 울지는 않는다. 울고 싶지만 울어지지는 않는 상황. 마음이 왜 이럴까?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 알고 있다. 내가 "왕따 후유증"을 매 순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나는 주로 혼자 있었다. 이 매거진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쉬는 시간에 말 한마디를 나눌 사람이 없어 책상에 항상 엎어져있던 학생, 그게 바로 나였다. 고등학교까지 그랬고, 성인이 되어서 대학에 가서도 같은 과에서 똘똘 뭉쳐 무언가를 하는 집단생활이 숨이 막혀 아싸(아웃사이더)를 자처했었다. 대학에서는 정해진 내 자리도, 교실도 없었기에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혀야 했고 그 가운데서 어설프게나마 어울려서 나름의 대학생활은 했지만 늘 끝은 좋지 않았다. 흐지부지 연락이 두절되곤 했다. 그리고 내심 안심했다. 점점 관계가 깊고 굵어질수록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버거웠다. 그건, 신랄하게 왕따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트라우마였다.
시선 하나, 표정 하나, 몸짓하나, 타인의 모든 것들은 나만의 피해의식으로 인한 상처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피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많이 웃고 말도 엄청 많이 한다. 주말마다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동네 언니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집에 와서 엄마의 역할을 마치고 아이들이 잠이 들고나면, 불 꺼진 거실 한가운데 서서 생각한다. 나는 지금 울고 싶다고.
흔히들 따돌림의 후유증은 자살시도, 심각한 우울증이나 조울증, 세상과의 단절된 삶과 같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나도 자살을 생각도 해보았고, 한 때 우울증 진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은 극히 일시적이었다. 이런 밑바닥에도 삶이 존재하는 구나하고 깨달을 만큼 정서적 바닥까지 떨어졌다 올라와보니, 내가 살기 위해 죽기 전까지 극복해야 하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피해의식이고, 사람과의 애착이 쌓여야 할 시기에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심각한 보상심리였다.
상대방은 전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것이 아니어도 나는 왠지 나만 안 봐주는 거 같고, 나랑만 눈을 안 마주쳐주는 것 같고, 나한테만 안 웃어주는 것 같고, 날 무시하는 것 같고, 만만하게 보는 것 같은 피해의식과 내가 주목받고 싶고, 내 말을 더 하고 싶고, 내가 리더 하고 싶은 애정결핍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붙잡아도 끊임없이 "아니야, 저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야. 아무 의도 없는 거야. 정신줄 잡자."라고 되뇌고 "나는 철부지 아이가 아니야, 경청도 할 수 있고, 순서를 기다릴 수 있는 어엿한 어른이다."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다독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잘 버티고 있다. 조금 더 과대포장하자면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수호 작가님의 "버티고 있어도 당신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나는 "버티고 있기에 슈퍼스타"이다. (쓰고 보니 좀 이상한데, 수호 작가님 버티고 있기에 나는 슈퍼스타로 2탄 출간은 어떠신지요.ㅎㅎ)
그럼에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흔히 남녀관계에서 1년을 만난 사람을 잊으려면 2년의 시간, 즉 두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내가 고립된 시간이 최소한으로만 따져도 16년이니, 아주 단순하게 따져도 3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고, 이는 결국 내가 평생에 걸쳐 단련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삐딱하게 생각하면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졌길래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어 남은 생을 남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들로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그 시간들이 나에게 조금 더 남다르고 넓은 이해의 폭을, 더 강한 삶의 의지를 주었을지도 모르니 이제는 겸허히 수용하고자 한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더 이상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시기가 오면 혹시 그때도 울고 싶은 마음이 들지라도 "이 정도면 손잡고 한 생(生)을 잘 걸어왔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며 걱정이 된다. 사실 왕따 얘기는 그 어디서도(하다못해 브런치에도) 허심탄회하게 할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는 부끄럽다거나 엄청나게 괴롭지는 않지만 남들이 나에게 씌울지도 모르는 선입견이 너무도 두려웠다. 지금도 두렵다. 그래서 댓글도 막는 것이다. 나와 같은 지독한 피해자들에게 조금 더 관대한 세상이 오길 희망한다. 관대할 수 없다면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수용하는 만큼, 피해자의 고통을 모두가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본다.
한 줄 요약: 나의 삶은 매 순간 울고 싶을 만큼 시험과도 같지만,
나는 잘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