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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y 31. 2022

가장 빛나는 순간

어제는 둘째 라온이의 세 번째 생일이었다. 이미 어린이집에서도 한번, 시댁 식구들과도 한번 생일파티를 했기에 당사자인 라온이는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촛불을 끈다는 행위는 설렘을 가져다준다.


남편은 출장으로 집에 없고 대신 친정엄마가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워준, 케이크는 아니지만 작은 카스텔라 세 개가 초를 하나씩 든든하게 받쳐준 우리만의 생일파티. 최근 나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심란한 일 때문에 아들의 진짜 생일에 선물도 준비 못한 나는 엄마라는 위치가 갑자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 꼬깃꼬깃 무언가를 꺼낸다. 동생을 위한 생일 카드란다. 큰 카드 안에 빼곡히 쓰인 글자, 그리고 그 안에 만들어진 주머니, 주머니 안에서 나오는 또 다른 카드. 화려한 무늬나 예쁜 그림이 그려진 기성 카드와는 비교할 수 없이 너무도 단색이고 투명테이프가 잔뜩 붙어있어 잘못 보면 만들기 시간에 쓰다 남은 색종이로 보일지도 모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감동스러웠다. 뭐가 그리 감동적이었을까. 우리 딸은 이미 6살 때 한글을 읽고 쓰기 시작해서 당연히 쓸 수 있는 멘트였는데, 만들기에도 감각이 있어서 얼마든지 고안해낼 수 있었던 카드의 모양이었는데. 나는 그 순간 왜 그다지도 놀랍고 감탄스러웠을까.



일상의 빛나는 순간을 잡아서 글을 쓰라는 과제를 받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평소에도 빛나는 순간보다는 어두컴컴한 순간을 더 잘 포착하고,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심란한 경우가 더 많아서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다른 분들이 공유한 글을 읽으며 너무 빛나는 순간에 집중하다가는 글 한편도 못쓰겠다는 생각에 요새 잡고 있는 글감 두 개를 머릿속에서 데굴데굴 굴리며 일단 써보기나 할까 했던 차에, 갑자기 어떤 빛과 마주했다. 바로 우리 딸이 만든 동생을 위한 카드였다.


딸은 저번 주부터 카드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야간보육에서도 집에서도 동생에게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나에게 귓속말을 하며 너무도 눈에 띄게 동생 눈치를 보며 조금씩 카드를 만들었다. 다 완성된 이후에는 퍼즐이 잔뜩 쌓여있는 공간에 카드를 슬쩍 집어넣으며, "엄마! 이거 라온이가 보면 안 되니까 내가 여기다가 숨길게"라고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런데 나는 어땠는가. 딸이 동생 생일 카드를 만드는 그 즐거움을 일일이 나에게 공유하는 동안 독박 육아가 지친다는 이유로 일이 힘들었다는 이유로 인간관계가 괴롭다는 이유로 너무도 일상스럽게 "어" "알았어"라는 말로 넘기기에 바빴다. 아마 7년간의 육아로 단련된 몸이기에 적당히 웃고, 적당히 스릴 있는 척했는지도 모른다. 아지만 아이가 매 단계마다 뿜어내던 진심 어린 빛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내 눈앞에 와서야 뒤늦은 감동을 받은 것이다.



어쩌면 난 늘 그랬는지 모른다. 남편이 집을 비운 주말 동안 최대한 아이들과 잘 지내보려고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늘 남편이 해주던 설거지가 벅차도, 늘 같이 개던 빨래를 혼자 개야 해서 힘이 들어도, 집 앞 놀이터에 나갈 때도 키즈카페를 갈 때에도 내가 두 아이를 다 챙겨야 해서 신경이 곤두서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노력했다.


언젠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비싼 장난감도, 화려한 옷도 아닌 바로 온화한 엄마라는 걸. 평소 여행을 한번 가더라도 식당부터 유원지까지 다 계획을 미리 만들어놔야 마음이 편한 내가 늘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아이들과는 계획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은 날이 있었다. 아주 우연이었다. 아이들은 늘 예상 밖이고, 통제가 불가했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아니 나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던가. 윽박을 지르며 답답함을 토해내며.


하지만 어느 순간 체념하게 되었다. 아니다, 체념이 아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을 한 번 더 못 보여줘도 아마 아이들은 그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제발 말 좀 들으라고 징징 대지 좀 말라고 짜증 내는 엄마보다, 그 세상을 보여주지 않아도 자신들과 집에서 역할 놀이하며 혹은 같이 춤을 추며 혹은 우스꽝스러운 몸짓 과표 정으로 재밌게 읽었던 책을 한번 더 읽어주는 엄마를 더 원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아이들이 세월아 네월아 나무늘보처럼 행동해도, 내 생각에 A를 해야 할 시간에 B를 해도 출근해야 하거나 어떤 불가피한 일이 있지 않는 한은 "그래, 지금 이 순간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 화내지 않는 엄마다."라고 되뇌며 참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참는다는 것이다.


나는 참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나의 다짐대로 변화하는 것이지만 아직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참고 참고 참다가 폭발한다. 어제도 그랬다. 독박 육아 이틀 만에 친정엄마가 오셨는데 그래서 그랬을까 긴장이 풀렸다. 확실히 아이들을 육아할 때는 눈으로만 보더라도 보호자가 한 명 더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깨달았다. 게다가 친정엄마는 겨우 이틀 설거지 몇 번 했다고 쩍쩍 갈라진 내 손을 보고 설거지도 해주시고 저녁도 해결해주시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하필 직장에서 특정인물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은 상태로 퇴근을 했다.



나와 가장 친했다고 생각한 인물.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유난히 가깝게 지내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머릿속으로는 당연히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도 다른 사람들과 그 사람 없이 수다도 잘 떨고 잘 지냈으니까. 그래서 쿨하게 인사를 하고 운전대를 잡았지만 차를 출발시키자마자 서운한 마음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자기들이 언제 그렇게 친했다고. 뭐 사귀기라도 하는 거야? 참나. 그래, 둘이 아주 잘 놀아라.


한번 서운해지기 시작하자 갑자기 다른 인물이 소환되었다. 알고 지낸 지 4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어려운 인물. 며칠 전 나를 굉장히 당황스럽게 만든 인물. 속이 답답해졌다. 그 인물을 아는 지인 두 명에게 도대체가 나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여전히 명치는 꽉 막힌듯했다.


그래도 잘 넘겼다. 여하튼 오늘은 아들의 생일이고 친정엄마도 왔으니 생일파티 잘하고 저녁 루틴대로(씻고, 책 읽고, 만화 보고, 또 책 읽고 취침) 행하고 밤에 잡혀있던 상담까지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집에 왔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 자신이 얼마나 미련한가. 아이들은 아무리 루틴이 있어도 여전히 아이들인걸. 나는 밤에 있을 전화상담시간 때문에 또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씻고 나와 로션을 바르라고 했더니 발바닥과 바닥에 로션 천지를 해놓은 첫째. 드디어 뚜껑이 열렸다. 한바탕 소리를 질렀는데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성은 "너는 지금 로션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 하루 종일 네가 받은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고 있었고, 그래서 다행히 인지를 했지만 한번 터진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대체 왜 그래!!!!!!!!!!!!!!!!!!!!!!!!!!!!! 엄마가 혼자 동동거리는 거 보면 엄마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 그렇다고 혼자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참 한심하다. 7살짜리한테 ... 공부타령이라니 나는 엄마자격이 있는 걸까.)"


어쩌고저쩌고 한참을 소리 지르고 나니 또 후회가 몰려온다. 아이가 만든 카드에 감동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이가 쓴 카드를 다시 들여다본다. 얼마 전에 "네"와 "내"의 차이를 집요하게 물어보던 아이. 그 순간에도 나는 무심하게 학습적인 부분만 언급을 했었다. "네"는 상대방을 말하는 거고 "내"는 나 자신을 말하는 거야. 아이는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여 동생에게 주는 카드에 썼다. "네꺼"라고. 이렇게 기특한 아이인데 로션이 뭐가 문제라고 아이에게 환경을 지키지 못했다며 구박했을까. 나란 엄마, 정말 최악이다.


그리고 또 하나 최악인 건, 이제와 서야 둘째에게 미안하다는 것이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나는 둘째는 아기니까 내가 잠시 옆에 없어도 기억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벌써 네 살이나 된 첫째가 동생의 존재로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첫째에게 엄청나게 집중을 했다. 그래서 둘째는 거의 아빠가 안아 주었다.


그게 지금은 너무 후회가 된다. 정말 아가 아가였을 때 많이 안아줄 것을. 지금은 그렇게 품 안에 눕혀서 안아 주기에는 벌써 너무 커버렸다. 그렇다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평소에 안고 다니기에는 아이는 10KG가 넘는다. 마음이 슬펴져온다. 슬퍼져 온다는 표현이 이상하지만, 사실 가장 적절하다. 확 슬픈 것도 아니고, 졸린 둘째 아이를 아쉬운 마음에 품 안에 눕혀 안아보면 이미 너무 커버린 아이가 불편하다고 하고, 그러면 정말 마음이 서서히 슬퍼져 온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아니 육아는 후회의 연속이고 인생은 끝없이 마음을 다잡는 훈련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중간중간에 일상이 주는 반짝이는 빛이 있지만 미련한 나는 여전히 그것을 보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큰 마음을 먹고 일상 속 빛을 찾아 글을 쓰기로 했으니 앞으로는 정말 빛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특히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함몰된 삶을 살고 있지만, 이제는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들이 주는 소소한 기쁨에 집중해보려 한다. 아이들이 1분 1초마다 느끼는 행복의 감정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아들 생일 축하해! 엄마가 늘 습관처럼 말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엄마는 라온이가 엄마 아들이라 정말 정말 행복하단다."


#라라 크루

#일상

#정신 차리자, 나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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