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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05. 2022

코로나가 준 선물

생각보다 괜찮았던 아이 꿈 키트(1)

3월,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다. 참 애매한 시기였다. 국가에서 주는 코로나 지원금이 대폭 줄어들기 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시에서 지원금이 끊기기 직전에 확진을 받았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조금 늦게) 확진을 받은 지인들은 그래도 너네 가족은 여기저기서 격리 지원금을 다 받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정말 피해 가고 싶었다. 최후의 생존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우리 학교 코로나 확진 1호였다. 게다가 직장에서의 첫 강의가 예정되어있던 터라 더 좌절스러웠다. (결국 확진 당일, 38도의 고열 상태로 비대면 강의를 진행했다.)



코로나에 대해 느낀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지만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마 평소에도 좋지 않은 일은 기억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데 글로 남기면 평생을 지고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에 피하는 습관이 여기서도 나온 게 아닐까. 하지만 오늘 쓰고자 하는 글을 남기려면 코로나 확진에 대해 안쓸 수가 없어서 이야기의 서문을 이렇게 열었다.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하고 있을 때, 나보다 하루 늦게 확진받은 지인에게 카톡이 왔다. 어떤 링크였다.


"이게 뭐예요?"

"시에서 코로나 확진된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이런 걸 준대, 신청해"

"오~고마워요"


바로 아이 꿈 키트였다. 정말 잘됐다 싶었다. 집에서 격리하면서 아이들이랑 무얼 해도 계속 한계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퍼즐을 맞추고, 그림을 그리고, 물감놀이를 하고, 욕조에서 물놀이를 시키고, 색종이로 뭘 만들고 영상을 보여줘도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 흘러갔다. 그런데 나라에서(정확히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아이들이랑 놀라고 키트 박스를 보내준다니 어찌 안 반가울 수 있었을까.


그러나 격리기간 9일 동안(하루 늦게 내가 확진되었다.) 아이 꿈 키트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3월이 지나고, 4월이 지나고, 5월이 지나가려고 할 때쯤 둘째 아이의 아이 꿈 키트가 도착했다. 참나, 그나마 시(CITY)에서 잊어버리지 않고 보내준 게 용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어이가 없었다. 지원금도, 아이 꿈 키트도 코로나 격리 해제 45일이 한참 지난 후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어느 주말, 특별한 계회기 없던 그날. 아이 꿈 키트를 개봉했다. 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화산 폭발 실험이 가능한 키트, 물감 터트리기(?) 키트, 돌멩이에 그림 그리기 키트, 코인 티슈 키트, 몬스터 만들기 키트 등등.. 하고 나면 다 쓰레기가 될 것들이지만 그래도 육아를 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하나하나가 다 반가웠다.

그런데 아쉬웠던 점은 분명 우리 둘째(4살) 이름으로 온 키트였지만 둘째가 흥미를 가질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남자아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우리 아들은 아니었다. 우리 아들은 변신로봇, 공룡, 블록, 킥보드와 같은 놀이들을 좋아하기에 처음 개봉한 돌멩이와 나무에 그림 그리는 키트는 완전히 취향저격 실패였다. 초반에는 누나를 따라서 집중하는 듯했으나 결국에는 붓으로 슥슥슥 칠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면 우리 딸은 평소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꾸미는 것도 좋아해서 한동안 자리에서 밑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하며 키트를 한껏 즐겼다.

딸의 돌멩이 작품은 설명을 들었는데도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어서 적당히 호응해주고 넘어갔다. 그런데 나무에 그린 그림은 너무 남달랐다. 나무와 하늘과 구름.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구름을 표현한 감각이었다. 파란색으로 바탕을 다 칠한 딸은 아주 조심스럽게 하얀색 물감을 붓에 묻혀 조심스럽게 터치했다. 물감이 다 마르기 전에 모습이 더 실감 났지만, 마른 후에 그림도 너무 아름다워 독사진을 찍고 있으니 딸이 와서 "엄마 이거 마음에 들어?"하고 물었다.


"어! 정말 예쁘다."

"그럼 엄마 가져"

"그래"


한 번씩 이렇게 나에게 기대 이상의 기쁨을 주는 우리 딸. 우리 딸을 생각하면 정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다. 아니 미안한 마음이 더 가득이다. 내가 모자란 엄마라서. 내가 부족한 엄마라서. 정말 구제불능이라서.



한바탕 미술시간을 끝내고 코인 티슈 애벌레 만들기 키트를 꺼냈다. 코인 티슈는 우리 딸 어렸을 때 내가 한번 해줬는데 딸에게 물어보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그럴 만도 하다. 시간이 흘렀으니.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3년 전에 코인 티슈 놀이를 해줄 때만 해도 아이에게 인공 물감이 아닌 천연색소로 해주고 싶은 마음에 시중에 파는 초콜릿을 물에 담가 살살살 흔들어 색소만 분리해서 해줬었는데, 그 노력들이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고 그 조차도 이제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흐르는 아이들과의 시간들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잠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여하튼, 코인 놀이는 시작되었다. 먼저 애벌레를 만들기 시작했다.

애벌레를 만들기 전에 안에 동봉된 사인펜으로 칠하기 시작! 그런데 여기서 또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데.. 어차피 이어 붙일 거라서 넓은 면에는 색칠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 생각을 못하고 아이들에게 원하는 개수만큼 칠하라고 했다가 결국 힘들다는 불평이 나오게 만든 것이다. 흠.. 그래서 두 번째 만들 때는 측면에만 칠하라고 알려주었다.


다 칠했으면 이제 붙여볼까요. 설명서에는 글루건으로 붙이라고 되어있었지만 집에는 글루건이 없어서 목공풀을 가져왔다. 목공풀은 목공풀답게 나무가 아니라서 효과가 별로 없긴 했지만 어느 정도 꾹 누르고 있으니 다행히 붙었다. 눈까지 붙이니 그럴싸한 애벌레 완성!

딸내미는 대만족인데, 아들내미는 만족스럽지 않은 이 상황. ㅎㅎㅎㅎ차라리 아들내미에게는 이 모든 키트 구입한 금액을 합쳐 블록이나 브랜드가 없어도 좋으니 변신로봇 한두 개 정도 보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런데 장난감을 보내주면 시에서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길러주고자 하는 취지에 어긋날 테니.. 너무 큰 욕심이었나 보다.)


이제 본격적으로 애벌레를 키워봅시다! 다 만든 코인 티슈 애벌레를 바구니에 넣고, 컵 하나에 물을 받아온 뒤 동봉된 스포이드로 애벌레에게 물을 뿌려주면 된다. 그러면 코인 티슈가 늘어나면서 애벌레가 마치 움직이며 성장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물을 한껏 머금은 코인 티슈 애벌레들은 자체 분리되기도 했다. ㅎㅎㅎ 모든 과정에서 영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인 아들도 물을 뿌리면서는 꽤나 즐거워했다. 무엇보다도 세 개씩 분리해서 두 마리의 애벌레를 만든 누나와는 달리 여섯 개를 다 이어 붙여 만든 아들의 애벌레가 물을 먹으니 가장 길어져서, 자신이 1등을 했다며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며 이 녀석의 승부욕은 알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ㅎ


엄청 단순한 원리인데 굉장히 신기해하던 아이들은 한번 더 하자고 했고, 다행히 3년 전에 사두었던 코인 티슈가 거실 찬장에 고이고이 모셔져 있어 한번 더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할 때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측면에만 칠하라고 했으나 그 조차도 내키지 않았던 아이들은 한두 개 정도 칠하고 그냥 하얀색 애벌레를 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하하하하)


남편이 아이들과 체험한 물감 터트리기와 화산 폭발은 사진이 없어 따로 기록은 못했지만 아이들이 엄청 재밌었다고 하는 걸 보니 꽤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딸내미 이름으로 택배가 한 상자 도착했다!

딸 이름으로 올 것이 없는데... 하고 확인하니 또 아이 꿈 키트였다. 처음 도착한 아이 꿈 키트 박스 안에 다섯 종류나 들어있어서 두 아이 같이 하라고 보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첫 번째 아이 꿈 키트는 아들내미를 위한 것이었다. (딸내미 키트를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한 또 한 번의 선물에 기분이 좋았다.


더 기분이 좋았던 건 키트들이 겹치는 것도 있었지만 (화산 폭발, 코인 티슈 애벌레) 다른 종류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별다른 계획이 없을 어떤 주말에 아껴둔 보물 꺼내듯이 하나하나 꺼내 아이들과 또 해봐야겠다.

그리고 그때, 오늘 한 몬스터 만들기 키트 후기까지 포함해서 다시 한번 기록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코로나 덕분에(?) 지자체에서 선물을 받아 좋은 체험들을 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이 키트들이 다 시중에 팔고 있어서 원하는 것을 구매해서 해봐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가격이 다 합리적이어서 내가 계속 말했듯이 아이들과 놀러 갈 계획이나,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 하나하나 씩 하면 만원 안팎의 금액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뒤처리가 힘든 건 안 비밀!)


#아이 꿈 키트

#라라 크루

#매일 글쓰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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