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Jun 07. 2022

슬기로운 우드 라이프

편백 가습기

최근에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이름은 바로 "라라 크루". Light 한 순간을 write 하자는 아주 밝은 의미를 가진 모임이다. 사실 지원서를 쓰기까지 엄청 고민을 많이 했다. 내 브런치조차 요일을 정해놓고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구독자분들에게 그 어떤 약속도 하지 못한 내가, 과연 일주일에 글 두 개를 써야 하는 과제가 있는 글쓰기 모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나는 이제 라라 크루 1기의 멤버이고, 저번 주에 글 두 개를 무사히 발행하여 1주 차 과제를 무난히 해냈다. 게다가 서로 맞구독을 해주자는 호스트 수호 작가님의 배려로 브런치 생활 6년 만에 구독자 400명을 달성했다. 하하. 여러 가지 의미로 라라 크루 만세다.


이전까지의 나의 글쓰기 패턴을 돌아보자면 2주에 한 번씩 쓰는 칼럼을 제외하고는 정말 드문드문 글을 써왔다. 그런데 요새는 정말 열심히 쓰고 있다. 라라 크루 활동을 하는 동안 스스로 매일매일 글을 올려보자는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여나 누군가 진짜 매일매일 올리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렇지는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최소 이틀은 안 넘어가게끔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답을 하고 싶다. (이번 주는 칼럼을 쓰는 주라 의무적으로 총 세 개의 글을 써야 하는데, 잘 해낼 수 있을까)



오늘은 며칠 전에 아이들과 만든 편백 가습기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몇 달 전, 업무를 하기 위해 접속한 공직자 통합메일 홍보 배너에서 "슬기로운 우드 라이프"라는 글자를 보았다. 읽자마자 친환경적인 느낌이 딱 들어서 눌러보았더니,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경험의 제한을 받았던 아이들을 위해 "목재문화진흥원"에서 나무를 이용한 만들기 키트를 지원해주는 사업을 한다고 쓰여있었다. 저번 글에서도 말했지만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만들기 키트는 참 유용하다. 아이들이 체험도 해볼 수 있고, 시간도 잘 가고. 뒤처리를 하면서 쓰레기가 너무 많이 생겨서 마음이 심란하긴 하지만.


그래서 신청서를 써서 개인정보 동의서와 함께 배너에 기재되어있는 메일로 제출했다. 되면 좋겠지만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보냈다. 그러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지잉 지잉"


택배가 도착했나? 하는 생각으로 문자를 열었는데 발신자가 "목재문화진흥원"이었다. 그 순간 신기하게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 맞다! 그때 우드 라이프 신청했었지!? 그런데 문자에는 오늘 보내준다는 것도 아니고 언제 도착한다는 것도 아니고 조만간 보내줄 것이고, 보내주면서 안내 문자도 보낼 테니 꼼꼼히 읽어보고 설문조사와 후기도 꼭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참으로 황당하였다. 전국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신청한 것일까. 신청한 지 한 달은 된 것 같은데 이제야 보내줄 거라는 선정 문자를 보내주다니. 나도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국가기관은 참 답답하다. 쓸데없어 보이지만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많고, 그 과정 속에 사공도 너무 많고, 변동사항도 너무 많고. 어쨌든 그 문자를 받은 지 몇 주가 지나고 저번 주에 드디어 안내 문자와 함께 택배가 도착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황당한 것. 슬기로운 우드 라이프라면서 이 여름에 "편백 가습기" 키트를 보내준 것이다. 자고로 가습기는 건조함의 대명사인 겨울에 주로 쓰는 물건이 아닐까!? 지금은 한여름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습도가 5-60%를 웃돈단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이게 정말 슬기로운 우드 라이프란 말이냐. 답을 해보거라. 내가 이렇게 꿍얼꿍얼하고 있으니 앞에 계신 직원분이 "아니, 보내줬으면 그냥 만들면 되지 뭘 그렇게 구시렁거려"라고 타박하셨다. 그 말에 수긍이 되면서도 끝내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신청서를 낸 건 3월이었다. 건조함이 끝을 달리던 봄. 그런데 선정 문자는 4월, 키트 도착은 5월의 끝자락에 왔으니 아마 이 사업을 기획하신 분도 설마 신청한 사람들이 초여름에 가습기를 받으리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 같긴 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도착한 편백 가습기 키트. 받았으니 만들어보자.



"목재문화진흥원"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서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해주는 짧은 영상을 보고 본격적으로 시작! 그런데 여기서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데, 망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집에 망치가 있는지 몰랐던 나는 매우 당황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쓱 어디론가 가더니 망치를 꺼내왔다. 그것도 우리가 흔히 아는 쇠망치가 아닌 나름 두드리는 부분이 안전해 보이는 고무(?) 망치를! (고무망치이지만 망치는 망치여서 무게가 꽤 나갔다.)


남편의 든든한 지원으로 다시 만들기 시작! 가습기의 몸체를 만들기 위해 나무막대들을 끼우고 고정하기 위해 망치로 두드리는 작업을 한참 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우리 아들이 망치로 엄청 능숙하게 나무막대를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오매 오매. 누가 사내아이 아니랄까 봐. 가끔 우리 아들은 이렇게 나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오구오구 든든한 내 새끼.


끼우고 두드리고 끼우고 두드리고를 마친 후, 조립 시작! 그런데 조립도 망치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집에 쇠망치만 있었다면 아마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작업은 거의 없었을 것 같다. 조금 큰 아이들이라면 자기들이 망치를 가지고 만들 수도 있겠지만 미취학 아동이 다루기에 망치라는 도구는 너무나도 위험하니까! (다음에 이런 사업을 미취학 아동까지 대상으로 포함해 진행할 계획이 있다면 정말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체험할 수 있는 키트를 고안해주시면 좋겠다.)


뚝딱뚝딱. 진짜 말 그대로 뚝딱뚝딱의 과정이었다. 우리 아들은 집중할 때면 입술을 모으는 습관이 있는데 안 그래도 도톰한 입술을 망치로 두드리는 내내 앙다물고 있던 모습은 정말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우리 딸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요새 우리 아들 덕분에 내리사랑의 의미를 온몸으로 깨닫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딸이 사랑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첫째를 향한 사랑과 둘째를 향한 사랑은 결이 다름을 느낀다.

애교도 많고, 눈치도 빠르고, 뭐든지 혼자서 하려는 독립심도 갖춘 우리 아들. 가끔 어마어마한 고집을 부려 나의 화를 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잘생기고 귀여운 우리 아들. 오늘은 우리 아들이 갑자기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나는 엄마가 정말로 좋아"세상에나! 아들에게 이렇게 심쿵해도 되는 것인가!? 정말 너란 남자. 엄마가 정말 정말 사랑해.)



잠시 샛길로 빠졌던 글의 키를 다시 돌려본다. 몸체를 다 만들고 나서 편백을 부어보았다. 가습기 안을 채울 재료가 편백나무라는 사실은 나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이제는 커서 웬만한 것은 낯을 가리지 않는 딸과는 달리 처음 보는 것이면 음식이든 무엇이든 경계부터 하는 아들의 성향상 한 번도 보지 못한 재료였다면 이번 체험은 망한 거나 다름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백은 우리 아들이 잘 가지고 노는 놀잇감 중 하나이다. 평소에 키즈카페에 가도 편백방에서 한참을 놀 정도로 좋아한다.

 편백을 우르르 쏟고 사포질까지 하면 완성! 가습기를 가동하기 위해 편백에 분무기로 물을 살살 뿌려주라고 되어있었지만 집에 분무기도 없었고, 요 며칠 비가 와서 집에 습도가 높아져 방바닥이 끈적끈적할 정도라 아이들에게 나중을 기약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그래도 망치로 뚝딱뚝딱하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해서 나에게도 좋았던 시간이었다. 후기를 남기기 위해 찍은 사진으로 이렇게 또 한 편의 아이들과의 추억을 기록하는 글을 남길 수 있게 되어 뿌듯한 마음도 든다. 



아이들의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고 그것들을 모아 만드는 모든 생산물들은 결국 부모를 위한 것이라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말이다. 나 조차도 내 어린 시절의 성장앨범이나 엄마가 나를 키우며 손수 손으로 적어온 육아일기에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벌써부터 두려운 아이들이 내 품에서 벗어날 시기를 생각해서 앞으로는 더더욱 열심히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기록을 해야겠다. 아무리 많이 쌓아도 아이들이 채워주던 만큼 채울 수 없겠지만 이 시간들이 그날들의 나에게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가 준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