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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22. 2022

첫 경험(1)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감독

https://brunch.co.kr/@jsmbja/561

앞선 글에서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에 발탁되지 않았다고 썼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사내 메신저로 다급한 쪽지가 왔다. "실장님! 문자 받으셨죠? 혼선을 드려 죄송해요." "응?"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감도 못 잡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지방공무원 임용 감독 안내사항"으로 시작한 문자에는 오늘 사전교육이 있으니 참석하라고 적혀있었다.


"뭐!?"


그리고 울리는 전화 벨소리. 받자마자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 "실장님! 죄송해요! 오늘 교육 참석하셔야 합니다."


"뭐라는 거야"


드디어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감독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은 조금도 없이 짜증이 났다. 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한번 지르고 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입꼬리가 씰룩대기 시작했다. 이 날 너무 출근이 하기 싫어서 운전을 하는 내내 몇 시간 조퇴를 올릴지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알아서 출장이 잡혀주시니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그토록 바라던 후배님들(?)을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전교육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시험날.



초행길이라 좀 늦었지만 시험일정에 차질이 안될 시간에 도착해, 파트너 분과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교육 듣고 학교 측에서 준비해준 간식을 아주 조금 먹고(이것이 화근이 된다.) 시험실에 입실했다.


"헐"


아쉽게도 나에게 배정된 교실은 나의 직렬 응시생들이 시험을 볼 곳은 아니었다. 보통 지방공무원들을 통틀어 "일반직"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 "행정직" "보건직" "사서직" "조리직" 등의 수많은 직렬이 있다. 다 같은 지방공무원인데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동질감의 차이라고 하겠다. 아무래도 같은 일을 하게 될 분들을 보고 싶었으니까.


시험이 시작되기 전, 응시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딱 봐도 어려 보이는 얼굴들. 너희는 여기에 왜 응시했니? 진심으로 공무원이 되고 싶니? 아니면 학교에서 전공한 분야를 살리려고 지원했니? 그것도 아니면 이도 저도 안돼서 어쩔 수 없이 제 앞가림을 해야 하니까 시험을 보는 거니?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어땠나 생각해보았다. 10년 전의 나는 왜 시험 접수를 했지? 행정이 전공도 아니었을뿐더러 공무원 시험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왜 그랬지? 모른 척 자문했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시험을 응시한 이유는 "앞가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물네 살의 나는 준비하던 마케팅 분야의 최종면접에서 계속 탈락의 쓴맛을 보고 있었다. 한 번은 취업스터디에 같이 있던 언니랑 내로라하는 대형마트 본사 영업분야에 지원했는데 그 언니는 붙고 나는 떨어진 적도 있었다. 비참했다. 대체 내가 부족한 게 뭐란 말인가.


분통이 터졌지만 졸업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그때, 엄마의 지인분이 교육청에서 뽑는 영어강사를 제안하셨고 덜컥 붙어 2년을 일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에게 아주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는데,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으며 교육대학원을 안 간 것이 신의 한 수라는 점이다.


영어강사 2년 차에 같은 학교에 계시던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 지금의 자리에 필기시험을 붙어버렸다. 기쁘고 또 기뻤다. 드디어 제 앞가림을 하게 되었고, 엄마가 남들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었으니 그거면 충분했었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지 넘어가는 소리. 밑줄을 긋는 소리. 자리를 고쳐 앉는 소리가 긴장감을 더했다. 시험이 시작하기 전에는 감독관들이 바쁘지면 시험이 시작하는 동시에 감독관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100분의 시간 동안 어떤 소음도 내지 않고 정해진 자리에 서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관이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시험도 있지만 이런 공무원 임용시험의 같은 경우에는 직렬과 직종을 막론하고 굉장히 살벌하기 때문에 감독관은 마네킹이라도 된 듯 가만히 서서 눈동자만 굴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기본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커닝은 생각도 안하리라 나는 믿지만, 모든 것에는 늘 "예외"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5분, 10분, 겨우 15분이 지났는데 다리가 아파온다. 허리도 아파온다. 시간이 너무도 느리다. 배도 고파온다. 본부에 두고 온 과자, 떡, 김밥, 샌드위치가 떠오른다. 하지만 참을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심상치 않다. 배가 꿀렁거린다. 배가 아프면 안 되는데. 다행히 복통은 아니다. 그런데 "꼬르륵..."소리가 빼꼼 얼굴을 내민다.


'안돼!'


아까 먹은 겨우 비스킷 두 개가 소화가 다되었나 보다. 집에서도 공복으로 나왔으니 당연한 생리현상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안되었다. 혹여나 꼬르륵 소리가 크게 울리게 된다면, 이건 100%의 민 원감이기 때문이다. 숨을 골라보았다. 마치 아이들을 출산했을 때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후. 하. 후. 하. 온몸의 긴장을 풀어보았다. 특히 배에 어떤 자극도 가지 않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후...'


배가 진정되었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계속 다리는 아파왔다. 허리도 아파왔다. 그리고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100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야 했기에 지루함이 극치에 달했다. 내가 원한 그림은 이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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