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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23. 2022

첫 경험(2)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감독(2)

https://brunch.co.kr/@jsmbja/572

(1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이 자리에 왔던가.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멍청하리만큼 순수하고 철없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며.


[내가 그렸던 그림]

감독 명찰을 달고 교실로 들어선다. 응시자들의 시선을 받는다. 긴장과 동경이 섞인 그 눈빛들이 애잔하다는 생각을 한다. 시험시간이 다가올수록 교실의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어간다. 점점 비장하게 변해가는 응시자들을 보며 격려의 말을 한마디 해준다. 내가 시험 봤을 때 들어오셨던 감독관님들처럼.


그때 그 감독님은 그러셨지. 이 교실에 있는 사람은 다 붙으라고. 다 붙어서 내 옆에 있는 여기 주무관님처럼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하라고. 그래,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는 그 여자 주무관님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아마 그때부터 나도 저 자리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었지.


시험이 시작하면 지정된 내 자리에 서서 응시자들이 시험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며 감상에 빠진다. 내가 공부했던 시절부터 시험 봤던 순간까지 하나하나 되짚으며 추억에 빠지는 것이다. 그날, 새벽부터 일어나 국어 요점정리 교재를 눈으로 읽어 내려갔던 것, 혹여나 배탈이 날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험장으로 향했던 것, 시험을 보는데 대각선으로 내 뒤에 있던 응시자들이 다리를 떨어서 100분 동안 계속 스트레스받았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어에서 나온 사자성어 한자 문제가 내가 아는 한자들로만 나와서 기뻤던 것, 시험장을 나서며 합격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은 것,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벌러덩 누워서 티브이를 봤던 것까지.


그렇게 한참 생각의 꼬리를 잡다 보면 어느새 시험시간이 끝이 난다. 그러면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며 뒷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현실]

부감독이었던 나는 정감독이 일정에 따라 시험을 진행하는 동안 옆에 가만히 서있었다. 무슨 조수처럼. 나도 내 역할을 아는데 굳이 한 번씩 언급해주는 정 감독님 덕분에 마치 시키는 일 하러 들어온 사람 마냥 하라는 대로 했다. 역시나 입은 꾹 다문 상태였다. 격려의 말은커녕 응시자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피하기 바빴다.(쭈구리 본능)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저 위에 언급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감상적이라기 보단 서서히 찾아오는 졸음을 물리치고자 억지로 억지로 어떤 기억이든 꺼내기 바빴다. 그럼에도 시도 때도 없이 정신이 멍해졌다. 한 3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3분도 안 지났다. 다리와 허리가 너무 아파서 결시생 자리에 1분이라도 앉아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언감생심이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배까지 고파왔다. 꼬르륵 소리가 나려는 걸 소리도 못 내고 심호흡을 하며 겨우겨우 막아냈지만, 위장의 반란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후. 하. 후. 하. 촤르륵(꼬르륵). 후. 하. 후. 하. 촤르륵(꼬르륵).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어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고야 말았다. 응시생들이 시험지를 넘기는 타이밍에, 혹은 의도치 않게 책상다리를 치거나 수정테이프로 무언가를 지우고자 뚜껑을 여는 타이밍에 슬쩍 묻어 아주 소심한 꼬르륵 소리를 내버렸다. 그것도 꼬르륵도 아니고 "꼬로록"정도랄까. 순간을 포착했다고는 하나 혹여나 내 앞에 앉아있는 수험생이 들었을까 봐 걱정돼서 손끝 발끝까지 저렸다. 이 시험이 이런 시험이다. 감독관의 의상, 신발, 멘트, 화장, 잡음,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다 민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 정도 되면 감독이 아니라 "움직이면 쏜다!"의 대상인 인질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종이 울렸다.


과목수가 적은 교실의 시험이 종료되었다고 알리는 종이 었다. 사전고지를 했지만 못 들었다고 절대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종소리에 모두가 흠칫 놀라고, 순간 교실이 술렁거렸다. 그래! 이때가 기회다! 다리 좀 풀어보자. 혹시 누가 볼까 싶어 샤삭샤삭 눈동자를 돌려 눈치를 보고 오른쪽 다리부터 접었다 폈다 접었다 폈다, 왼쪽 다리도 접었다 폈다 접었다 폈다 를 한 두 번 정도 반복했다. 아주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정적의 시간. 한 시간이 남은 상황. 응시생들의 손놀림이 바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길고도 긴 고난의 시간이지만 응시생들에게는 얼마나 똥줄이 타는 시간일까. 하며 감상에 빠지려는 찰나 정 감독님과 눈이 마주쳤다. 헛. 정 감독님도 충분히 지쳐 보였지만 훨씬 의연해 보이는 모습.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피곤했고 온몸이 아픈 느낌이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마침내 다가온 종료 10분 전! 이렇게나 기쁠 수가 없었다. 내가 다시는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감독을 오나 봐라, 를 100번도 더 속으로 말한 후였다. 그리고 5분 전. 슬슬 마무리를 하는 응시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는 빛의 속도로 시험지와 OMR 답안지를 번갈아 보고 있고 누군가는 급하게 답안지를 수정하고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일부 문제들을 보며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디디디디디디딩~딩딩딩디디디딩~또 한 번의 엄청난 종소리. 끝났다. 속에서 절로 환호가 쏟아졌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답안지 수거, 핸드폰 반환. 그리고 가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런데 순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무도 개의치 않았지만(아마 의례적으로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했겠지.) 진심이었다. 적어도 나보다 10년은 어릴 응시자들에게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지 정 감독님은 다른 직종이었기에 몰랐겠지만 나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 당일 바로 정답 가안이 발표된다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응시자들 중 누구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누구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을까. 그들은 알까. 필기를 합격하고 면접에 합격해서 최종적으로 공무원이라는 목표에 다다른다고 해서 꽃길만 펼쳐지는 건 아니라는 걸. 소위 웰빙에 최적화돼있다고 평판이 나있는 우리 직렬에도 수많은 이들이 실망을 하고 떠나간다는 걸, 혹은 실망했지만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붙어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그들은 아는 걸까.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까. 어쩌면 모든 직장에 애초에 꽃길은 없는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가시밭길을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문제일 뿐.


그럼에도 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이번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에 응시하여 진짜 시험을 본 모든 수험생들이 자신을 너무 자책하거나, 일말의 쉼도 없이 다시 달리는데만 집중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을 토닥이기에 가장 부적합한 시기일 수 있으나 그럴수록 더 나 자신을 챙겨야 한다. 또한, 너무도 흔한 말이지만 끝까지 달려온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잊는 순간 우리 삶의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시험이 당신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앞에도 썼지만 시험을 본 당일 오후에는 계속 티브이만 보다가 밤에 그대로 잤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얼마 안 남은 서울시 사회복지직렬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러나저러나 당신은 결국 두 개 다 붙었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면 딱히 변명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반나절의 휴식이 나에겐 정말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여유로운 행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붙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다시 한번 되었다.)


이렇게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이루어졌다. 육체적으로 너무도 힘들고 정신적으로 조금은 허망하게.

다시는 못만날 인연이겠지만 우리 교실 모든 응시자들에게 다시한번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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