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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09. 2022

1월이라 퇴사가 하고 싶었다.

지옥의 1,2월

또 떨어졌다. 벌써 3년째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인데, 도대체 왜 안 되는 걸까. 속이 쓰리다.


어제는 출근해서 사내 메신저로 탈락 소식을 들었다. 지방교육행정시험감독에 또 임용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벌써 3년째다. 도대체 남들은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한다는 그 시험감독을 왜 나는 늘 떨어지는 걸까. 참으로 속상하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자 들어간 곳이 있다. 내 수험생활의 버팀목이 되었던 한국사 강사 선생님의 개인 네이버 카페이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지고 규모도 커져서 개인 카페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선생님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니 아직까지는 개인 카페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듯하다. 그곳에는 현직자들을 위한 게시판이 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교행직들의 퇴사 고민 글이 많이 보였다. 그들이 퇴사하고 싶은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교행직의 주 업무가 회계인 줄 몰랐다, 퇴근시간이 이르다고 들었는데 업무시간 내에 일을 다 끝내지 못해서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선생님들과 공무직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다, 등등


댓글을 달고 싶었다. "다 이해한다."라고. 그 모든 과정을 겪어왔고 그 순간순간마다 나도 퇴사를 생각했었기에.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을 사로잡은 글이 있었다. 요지는 이러했다. (글을 캡처해오고 싶었지만 불펌은 안되기에 기억나는 대로 써보겠다.)


"나는 1월 발령자다. 갓 발령받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실장, 부장님은 어떻게든 처리하라고 하신다. 합격하면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지옥이다.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글을 쓴 시점을 확인하니 1월과 2월 사이였다. 임용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시보도 안 뗀 분이 저런 생각을 하나, 하고 꼰대 같은 생각을 하다 문득 나 역시 그랬었던 흑역사가 떠올랐다. 



첫째 아이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학교는 내 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지금처럼 운전을 하고 다녔으면 왕복 30분이면 다닐만한 곳이었지만, 그때는 장롱면허를 탈출하지 못했을 때라 그 학교가 있는 동네의 모든 정류장을 다 들려야만 하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복직한 지 얼마 안 돼서 울면서 늦게 퇴근을 한 적이 있다. 그때가 1월이었다. 


이미 사무실에서부터 터진 눈물은 사무실을 나와 교문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내내 멈출 줄을 몰랐다. 그때는 코로나도 아니어서 마스크도 안 쓰고 있었는데, 그냥 맨 얼굴로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를 지나가면서 나는 울었다. 정말 서럽게도 울었다. 밥집과 술집이 즐비했던 거리였기에 모두가 만취한 여자가 술버릇으로 우는구나, 하고 생각했는지 그 누구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안심하고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기다려서 버스에 탔는데도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끅끅 거리며 서럽게 울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나를 다 쳐다볼 것이고 그중에 일부는 이유를 묻거나 비난할 수도 있기에 아무 소리도 못 내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주룩주룩. 버스기사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부끄러웠다.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집에 와서 화장실 거울 앞에 서니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선크림과 비비만 바르고 그마저도 오후에 고쳐야 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아 번질만한 화장품이 얼굴에 없지만 그때만 해도 마스카라에 아이라인, 선크림과 비비크림에 팩트까지 꼼꼼히 바르고 다니던 시절이라 모든 화장이 엉망진창 섞여 못볼꼴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마스카라와 아이라인이 눈물과 함께 떨어져서 양 볼에 검은 길이 나있었다. 사진 한 장 찍었어야 하는데. 예상컨대 그때 그 사진을 찍어 언플 래쉬나, 픽셀에 올렸으면 아마 지금까지도 꾸준히 누군가에게 사용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그마저도 중요하지 않았다. 못해도 몇십 명이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지나갔고, 그중에 아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게 다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놓고 온 숫자들만이 갈길을 잃고 둥둥 떠있었다.  



언젠가 한번 이 매거진에 언급한 적이 있다. 교행직에게 1-2월은 지옥의 달이라고. 한 해의 예산이 결산이 되고, 다가오는 해의 예산을 수립해야 하는 시기가 맞물려 아주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나는 예산담당자가 아니었다. 나는 행정실의 막내였고 급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막내들은 급여를 많이들 담당하고 있다. 아마 내 눈을 사로잡은 글의 주인공도 급여를 담당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지금은 학교에 근무하는 거의 모든 직종의 급여가 "나이스"라고 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예외적인 사항들만 체크해주면 아주 간편히 마감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기관마다 사정이 다르다. 공무원을 제외한 직종들 중에는 아직도 수기(액셀)로 급여 작업을 해야 하는 분들이 존재하고, 외국어 고등학교 같은 경우에 외국인 근로자들은 100% 수기로 급여가 작업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확하지 않다. 지금은 또 달라졌을지도)


그러면 급여담당자들에게 1-2월은 수월할까? 그렇지 않다. 지금은 인건비 정산을 나이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용이하게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해의 모든 인건비 결산을 다 수기로 해야 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해의 인건비 예산 또한 수기로 다 세워야 했다. 아주 간단히 생각해보자. 한 명의 근로자에게 한 해 동안 드는 인건비가 얼마일까. 이는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다. 직종마다, 경력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예를 3천만 원이라고 들어보자. 


3천만 원을 받고 근무하는 근로자가 10명이라고만 쳐도, 3억이다. 이미 억 단위로 가는 순간 머리가 어질 하다. 게다가 인건비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10원 단위도 틀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어떤 특정인의 연봉을 입력하다 숫자 하나라도 틀리면 진짜 대형사고가 난다. 신경이 초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냥 연봉이 3천만 원이면 좋을 텐데, 이 3천만 원이 아주 세세하게 나뉘어있다. 본봉, 급량비, 어쩌고 저쩌고... 항목들 하나하나가 어찌나 낯설은지. 입에 붙지도 않는 그 명칭들을 곱씹으며 하나하나 하다가 진짜 돌아버릴 뻔했다. 


결산은 더하다. 교육청에서 인당 교부받은 돈을 제대로 항목에 맞게 썼는지, 남았으면 왜 남았고, 모자라면 언제 어디에서 뭐가 잘못 나갔는지를 하나하나 올라가며 따져봐야 한다.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갓 발령받은 시보도 아니었지만 급여업무가 처음이었으니 말 그대로 시보나 다름없는 상황에, 1년 가까이 기저귀와 젖병에 파묻혀 살다가 이제 굴 밖으로 기어 나왔는데 엄청난 숫자들이 나를 짓누르고, 누구 하나 선생님처럼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이도 없었다. 그나마 같이 근무한 부장님이 알려주시긴 했지만 태생적으로 수에 약했던 나는 계산을 할 때마다 합계가 달랐다. 진짜 미쳐 돌아갈 지경. 나중에는 사람 좋기로 소문난 부장님이 웃으며(?) 짜증을 내셨다.


"좀 제대로 해봐~인건비만 결산되면 예산 결산 마감이란 말이야~!!!"


지금도 그 해의 인건비 결산을 어떻게 해서 넘어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그 시즌에 내 자존감이 지하까지 뚫고 내려갔다는 것, 내가 이렇게 멍청한 사람이었나, 복직을 괜히 했나, 퇴사하고 싶다, 등등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울며 집에 갔다는 사실이다. 



교행직을 지원하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교행직의 주 업무가 회계라는 것이다.(나도 모르고 지원했다.) 사실 이 간단한 명제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특히 결산과 예산 수립이 맞물리는 1-2월에 발령받는 분들이 퇴사를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다. 저 위에 구구절절이 쓴 것처럼 나도 그랬다. 특히 "0"이 6개만 넘어가도 머리가 어지러운 나는 진짜 아직도 숫자가 무섭다. 


이직을 고려한다는 윗글에 이런 댓글이 달려있었다. "시험공부 한 만큼만 노력해보라"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거다. 우리가 그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 왔는데 지옥의 달에 발령받았다고 해서 그만두면 공부한 시간들이, 그리고 공부한다고 날려버린 모든 기회비용들이 너무 아깝지 않나. 진짜 딱 시험공부 한 만큼만 노력해보면 또 평온한 시즌이 온다. 모든 회사가 365일 중에 출근일 수만큼 매일매일 바쁘지 않듯이 교행직도 마찬가지다. 1년만 사이클을 굴리면 루틴이 딱 나온다. 


교행직이 처음인 당신이 힘든 건 당연하다. 그 지옥 같은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고는 말 못 하지만 그래도 힘겹게 이 자리에 온 당신이 너무도 허망하게 그만두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Photo by  un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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