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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14. 2022

점선이 어딨어!?

Feat. 차선 바꾸기

아직도 초행길이면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초보운전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제 스스로 꽤나 발전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차선을 바꾸거나 주차를 할 때 자연스럽게 사이드 미러의 도움을 받는다.

비가 눈이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 와이퍼 속도를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다.

운전하다가 필요시 백미러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혹시 느끼셨나요? 여기서 키워드는 바로 "자연스럽게"입니다. 왜냐하면 사이드 미러도, 백미러도 운전할 때 안 봐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들이고 와이퍼 역시 비도 얼마 안 오는데 속도를 못줄이면 운전하는 내내 맨 유리를 긁는 소리를 들으며 운전해야 하고 혹여나 엄청난 폭우를 만났는데 속도를 못 올리면 전방 시야가 확보가 안돼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거든요.


그런데 이 "자연스럽게"를 이루는데 1년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분명 운전석에 앉을 때까지는 사이드미러도 꼭 보고 백미러도 꼭 보겠다는 의지를 다지는데 막상 운전만 시작하면 앞만 보기에도 급급했거든요. 몸이 앞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앞도 제대로 못 봐서 급정거를 하는 일이 다반사죠.


바로 그 시절. 전방주시도 제대로 못하던 그 시절. 남편을 태우고 제가 출근길 운전을 했던 적이 있어요. (기억나니 남편?) 남편은 전날 회식에서 과음을 한 탓에 아침까지도 술냄새가 진동을 했어요. 적당히 마셨다면 아마 술에 면역이 되어있는 남편의 몸이 밤새 해독을 시켜 아침 출근길에 운전을 했어도 아무 이상이 없었겠지만 그날은 누가 봐도 음주측정기로 잰다면 "면허취소"가 나올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죠. 그래서 부득이하게 제가 운전대를 잡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차가 한대였기도 했고요.


전에도 한번 언급했듯이 생 초보운전에게 운전을 시키고도 애들과 같이 뒷좌석에서 자던 속 편한 남편님. 그날도 "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듯이 조수석에 앉아 의자를 뒤로 최대한 넘기고 팔짱을 떡하니 끼고는 거의 잘 기세로 누워버렸답니다. 그때도 어이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요.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깊은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운전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길이 익숙해서인지 별문제 없이 가다가 마주한 첫 우회전 구간. 신경을 쓴다고 썼지만 또 회전각을 잘못 잡아 너무 좁게 회전이 되었어요. 덜컹! 평소 같으면 조수석에 있던 제 가방만 쓰러져 소지품 몇 개가 바닥으로 굴렀을 텐데, 그날은 조수석을 제 가방이 아닌 남편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남편 몸이 제 기준에서 살짝 들썩거렸어요. 그리고 바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


"뭐여, 완전 도로 위에 무법자네"
"ㅡㅡ....."
"자 보여줘, 내가 이 도로의 무법자다!!!!!!!!!!!!!!!"
"ㅡㅡ^"

어우. 정말 얄밉지 않나요? 운전만 안 하고 있었으면 진짜 등짝 스매싱을 날렸을 텐데. 당장이라도 그럼 네가 운전해라! 하고 운전대를 넘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어요. 운전대를 넘기려면 어딘가 잠시 정차해서 자리를 바꿔야 하는데 정차할 엄두도 안 났거든요. 그래서 어금니만 꽉 문채로 계속 운전을 하며 자동차 전용도로에 진입했어요. '후. 한고비 넘겼구먼'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죠. 자동차 전용도로는 고속도로랑 매우 흡사해서 일단 신호가 없고요. 무조건 앞으로 직진만 하면 되거든요. 그리고 빨리 달리고 싶을 때는 추월선(흔히 말하는 1차선이죠) 천천히 달려야 할 때는 그 옆 차선으로 달리면 돼요. (제가 주로 다니는 전용도로는 차선이 2개예요) 저는 주로 2차선에서 달리다가 전용도로 종료지점에서 1차선으로 옮겨 타요. 그래야 원하는 곳으로 우회전을 쉽게 할 수 있거든요.


쭉쭉 달리다 보니 어느새 보이는 종료지점. 늘 하던 대로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는데 나지막이 들리는 목소리.


"진짜 무법자네"



"뭐여? 자는 거 아니었어?"

"아니 차선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바꿔도 되는 거야?"

"무슨 소리여?"

"아니 실선에서 막 차선을 바꾸면 어떡하냐고"


황당했어요. 그럼 실선에서 바꾸지 점선에서 바꾸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날아오는 팩트 폭행.


"차선은 점선에서 바꾸는 거야"

"...?"


황당했던 마음이 어느새 사라지고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남편의 말이 맞다면 저는 지금까지 잘못된 차선 변경을 하고 있었다는 건데 그 사실보다도 도로에 점선이 있다는 사실에 더 당황했어요. 정말 운전 햇병아리였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물었어요.


"차선에 점선이 있어?"

"..."


어오! 남편의 침묵 타이밍에 약이 바짝 올랐어요. 그래서 목소리를 높였죠.


"점선이 있냐고!!!!!!!!!!!!!!!!!!!!!!!!!!!!!!!!!!!!!!!!!!!!"

"있지. 실선에서는 차선을 바꾸면 안 되고 점선에서 바꿔야 한다."


아직도 사무실까지 7km 정도는 더 가야 하는데 갑자기 운전에 집중이 안되었어요. 뜬금없이 "도로 위에 점선 찾기"가 무의식적으로 시작된 거죠. 그리고 의식하고 보니 진짜 점선이 있더라고요. 실선이 이어지다 점선이 나오고 다시 실선이 이어지고. 아니, 그래도 몇 달은 운전했는데 한 번도 점선을 의식하지 못한 제 자신이 놀라웠어요.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나 봐요.


점선 찾다 괜히 또 이상하게 운전하면 바로 날아들어올 남편의 구박이 싫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운전해서 남편을 내려주고 나니 5km 정도 남은 출근길 내내 머릿속은 또다시 점선으로 가득 찼어요. 사실 점선이 중요했지만, 초보에게는 점선의 존재가 최우선으로 중요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진짜 햇병아리 시절에는 사이드미러고 백미러고 다 필요 없이 전방주시도 잘 안되거든요. 분명 앞을 보고 있는데 앞에 뭐가 있는지, 무엇이 튀어나왔는지 한 박자 느리게 인지되는 현상. 저만 겪어봤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점선에 정신이 팔렸으니 어땠겠어요. 정신을 차려보면 가드레일에 너무 바짝 붙어 운전을 하고 있지 않나, 가뜩이나 못하는 회전을 너무 크게 하고 있지 않나, 속도 50-60km 도로에서 30km가 될랑 말랑하게 가고 있지 않나.. 아마 누군가 제 차를 보고 있었다면 졸음운전하나? 하는 생각이 드셨을 거예요. 하지만 전 졸지 않았어요! 점선에 꽂혀있었을 뿐.



그 이후로는 차츰차츰 도로 위에 선들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되어서 실선에 차선을 변경하는 중대한 실수는 거의 하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더불어 실선과 점선이 붙어있는 곳들도 있는데 그곳 역시 점선이 있는 차선 쪽으로만 차선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어요. 실선에서 차선 변경한다고 신호위반이나 속도위반처럼 과태료가 나오나? 나온다면 어떤 방법으로!? 사실 운전하면서 실선에서 차선 변경하는 차를 정말 많이 봤거든요. 도로교통법상 실선에서 차선을 변경하면 안 된다고 나와있어도 실질적으로 규제가 없으니 저렇게 많은 차주가 알 고든 모르고 든 위반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 거죠.


그래서 저에게 친히 실선과 점선의 의미를 알려준 남편에게 물어봤어요.


"실선에서 차선 변경하면 과태료 나와?"

"당연하지"

"어떻게?"

"국민신문고에 신고하잖아"

"아...! 그럼 과태료도 나오고 벌점도 나와?"

"당연하지"


그렇다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


"내가 몇 번 신고했잖아~그거 신고하면 누구한테 얼마 부과되었다고 알려줘"


아하. 그렇다네요. 우리 모두 조심조심합시다! 당신이 실선을 넘어갈 때 어떤 부지런한 매의 눈(저희 남편 같은)이 쳐다보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무엇보다도 안전운전을 위해서인것은 말 안해도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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