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어느 주말, 아이들을 태우고 무려 왕복 세 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있는 유원지로 놀러 간 적이 있어요.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주 평온하고도 능숙하게 주행을 해나갔죠. 아이들은 뒤에서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고, 저는 저대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지극히 평범하고도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들려오는 남편의 한마디.
"아 진짜 왜 이렇게 느리게 가는 거야"
"...?"
남편이 큰 목소리를 낸 것도 아닌데 마치 제 귀에 대고 말한 것처럼 저 한 문장이 귀에 팍 꽂혔어요. 그래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8차선의 도로에서 유일하게 남편 차의 앞차가 아~주 여유롭게 가고 있더군요. 여기서 중요한 건 "아~주"에요. 초보운전인 제가 봐도 느리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남편 입장에서는 속이 터졌을 거예요. 결국 씩씩거리며 차선을 바꾼 남편. 보란 듯이 쌩쌩 달리는 그 모습을 보며 저는 굳이 한마디를 던졌어요.
"초보 아니야?"
"..."
말이 없는 당신. 대답 없는 당신.
"초보겠지. 나 같은 운전자 또 하나 있네"
"..."
정말 화가 나면 입을 꾹 닫는 남편의 성향을 알기에 혼자 떠들었다, 치고 넘어가려는데 남편의 아주아주 뒤늦은 답변이 들려왔어요.
"저 정도면 이런 도로에는 안 나와야지."
갑자기 닫혀있던 심술보가 확 열리는 듯 초보운전자인 저는 "욱"했어요.
"왜?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당신은 처음부터 운전 잘했어? 참나(씩씩)"
"..."
대답 없는 너. 결국 저만 확 솟았다가 쿵 떨어지며 대화는 끝이 났어요. (아, 물론 그렇다고 저희가 평소에 대화가 없는 부부는 아니에요. 미주알고주알 떠들면서 꿀이 뚝뚝 떨어지진 않지만 나름 화목한 부부랍니다.)
대화는 끊겼지만 남편의 궁시렁을 듣자마자 제 머릿속에 뿅! 하고 나타난 존재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존재들 덕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때 그 느낌들을 나눠보려 해요.
저는 남들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을 해요. 그 이유는 바로 육아시간을 쓰기 때문이죠.
육아시간:
만 5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공무원이 24개월의 기간 동안 하루 2시간씩 육아를 위해 얻을 수 있는 시간
그래서 원래는 8시 40분까지 사무실에 가야 하지만 9시 40분까지 출근할 수 있어요. 저희 집에서 사무실까지 대략 30km인데 제 운전실력으로 대락 50분 정도 걸려서 저는 아이들을 다 등원시키고 8시 50분쯤 출발을 해요. 이 시간쯤 되면 정상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차들은 거의 다 빠지고 없는 상태라 도로가 상대적으로 한산해요. 그래서 그런지 그들도 늘 그 시간에 나오더라고요. 오늘 글의 주인공들.
도로주행 연습용 자동차
거의 일주일에 3-4번은 보는 것 같아요. 항상 같은 자리에서. 아마 저를 마주하는 그 도로가 도로주행 연습코스의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세 개의 도로 중에 그 세대의 차들은 항상 가장 왼쪽 도로에 나란히 서있다가 좌회전 신호가 켜지면 유턴을 해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거든요.
처음에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처럼 저 역시도 아직도 배울 것이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은 초보운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가 거슬렸어요. 차선의 가장 앞에 쪼르르 서있는 그들은 항상 신호를 한 번에 못 받더라고요. 한대만 유턴에 성공하거나, 혹은 두대. 그러면 뒤에 가장 꼴찌로 서있는 차는 꼭 다음 신호를 받아요. 이게 어떤 의미냐면 저도 다음 신호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예요. 아악!
좀 서둘러서 일찍 출발한 날이면 "신호 한 번쯤이야"하고 넘길 테지만 아이들이 유난히 늑장을 부려 저까지 늦을 것 같은 불안한 날은 크랙션이라도 빵! 눌러주고 싶더라고요. 그런 날들이 한 달, 두 달, 쌓이고 이제는 헤아려보지를 않아서 그들을 만나는 건 마치 제 아침 출근길의 루틴처럼 되어버렸어요. 한 번은 "그들을 안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아예 일찍 나가거나 늦을걸 감수하고 정말 늦게 나가는 것뿐이다!"라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둘 다 불가능했어요. 한순간에 아이들이 아침형 인간이 될 리 만무하고, 직장에 매일 같이 늦는다는 건 전자보다 더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요.
결국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제 생각도 고쳐먹기로 결심했죠.
결심하자마자 드는 생각은 부끄럽게도 "나도 초보인데 운전 1-2년 했다고 벌써 이렇게 도로 위에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하는 거였어요. 뒤이어 드는 생각은 "초보가 초보를 관대하게 바라봐주지 않으면 이 야생의 도로에서 결국 운전대를 포기해버리는 초보들이 생길 텐데"와 "네가 우물쭈물 꼼지락꼼지락 할 때 크랙션 안 누르고 조용히 앞서 나가던 운전자들이나, 끼어들라고 서서히 브레이크 잡아준 운전자들 생각 안 나?"였어요.
게다가 빠질 수 없는 운전면허 따던 날이 떠올랐죠. 기능시험을 위해 연습하다 차선을 일탈에 옆에 있던 돌무더기에 올라타기도 하고, 첫 도로주행에서 신호위반으로 떨어져 학원에서 제공해준 대형 관광버스 안에서 펑펑 울기도 했던 병아리 시절 말이에요. 그 당시에 저의 도로주행 연습을 맡았던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도 떠오르네요.
우리 내기했잖아~JA 씨가 도로주행 붙는지 안 붙는지~거의 반반이야~
이랬던 제가, 이제 겨우 중닭이 될락 말락 하는 제가 도대체 누구를 거슬려하고 있던 것일까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 듯한 느낌이에요. 생각을 달리하고 출발한 출근길 도로. 역시나 병아리 한대, 병아리 두대, 조금 큰 병아리(1톤 트럭) 1대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신호가 켜졌고, 병아리 1번이 무사히 유턴을 했어요. 뒤이어 병아리 2번도 기어가다시피 통과! 그런데 조금 큰 병아리 우물쭈물하다가 휙! 얼떨결에 세대 다 한 신호에 유턴을 했지만 병아리 3번이 유턴할 때 이미 신호는 노란불이었고 저는 설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다음 신호 행을 피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웃음이 났어요. 아마 병아리 3번, 그러니까 1톤 트럭은 연습생이 아니라 선생님이 홱! 돌린 것 같았거든요. 운전석에 앉은 연습생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연습생을 생각하면 웃으면 안 되지만, 저도 그런 적이 있었기에 너무 공감이 되어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껏 제 삶은 늘 어두운 곳을 바라봤던 것 같아요. 누군가 저에게 어떤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지독한 이별 얘기를 담은 멜로디가 슬픈 가요, 세상의 부조리를 향한 처절하게 반기를 드는 곡이라고 대답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희망과 웃음이 제 곁을 유유히 지나갔을까요. 제가 좌절과 절망에 빠진 이들과 저를 동일시하며 버티는 동안 그 누군가는 사랑과 환희를 차곡차곡 모으며 자신의 삶을 반짝반짝하게 장식하고 있었겠죠.
그런데 도로가 그리고 도로 위에서 만난 병아리 운전자들이 너무도 견고했던 제 부정의 기운을 흔들기 시작했어요. 그들을 고깝게 바라보던 시선을 조금 돌려 이해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편해지더라고요. 그동안은 그들이 걸림돌처럼 느껴져 1분이 아쉬운 순간에는 뒷골이 당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물론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진 않아요. 당연하죠.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있는걸요. 어쩌면 꽤나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 이야기도 그날 하루에 그치는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굳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도로가 던져준 이 깨달음을 베테랑이 되어서도 잊지 않겠다는 제 의지예요. 앞으로 정말 남부럽지 않은 운전자가 되어도 도로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상황들을 너무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금은 이해로, 약간은 배려로 바라보겠다는 일종의 다짐이기도 하고요.
운전을 하며 조금씩 다짐을 지키다 보면 이 좋은 기운이 점점 제 삶에도 번져오지 않을까요? 기대를 한껏 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운전 선생님의 매의 눈초리 아래서 겨우겨우 운전대를 잡은 예비 초보운전자들을 응원해요. 할 수 있어요.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