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운전 2년 차. 아직 초보운전입니다. 2년이란 시간이 짧다고 보면 짧지만 초보로서 제가 겪어보니 2년은 그리 짧게 느껴지는 시간은 아닌 듯해요. 직장과 학교만 왔다 갔다 하던 저는 이제 내가 살고 있는 시(city) 안에서는 초행길도 살살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주차도 전방주차 후방 주차를 다 할 수 있게 되었고, 최근에는 양 옆에 주차가 다 되어있는 한 칸 자리에도 어설프게나마 주차를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느리지만 멈추지 않았던 초보운전자의 작지만 작지 않은 성과예요.
그런데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주유"입니다. 응? 이게 무슨 소리냐 싶으시죠. 차가 굴러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주유인데, 주유를 못한다고!? 사실 주유는 할 수 있다. 응?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니. 자고로 주유라 함은 주유소에 가서 "가득이요~"라던가 "5만 원이요~"라고 말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대체 내가 주유를 못한다고 한건 무슨 말인가!? 저는 바로 셀프주유를 하지 못해요.
매번 좌절스러운 건 셀프주유가 일반 주유보다 1L당 단 몇십 원이라도 싼데, 저는 셀프주유를 하지 못해서 항상 연료창에 "연료 부족"이 뜰 때까지 차를 끌고 다녀요. 처음 연료 부족이 떴을 때는 너무너무 마음이 초조했어요. 출근길에 "자동차 전용도로"가 있는데 국도도 아니고 전용도로에서 차가 멈추게 되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을뿐더러 사고라도 나면 고속도로 못지않게 쌩쌩 달리는 곳이라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연료 부족"으로 몇 번 무사히 출근을 하고 나니 이제 연료 부족이 뜬다고 해서 출근길에 그렇게 많이 불안하지는 않아. 그러나 여름은 달랐습니다.
어제는 큰맘 먹고 은행업무를 보기 위해 일찍 조퇴를 했어요. 그런데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그 전날 기름이 한 칸 남아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미 출근길에 그 한 칸을 거의 다 써서 연료 부족이 뜨기 직전의 상태였다는 것. 이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룰루랄라 차에 탔는데, 현실은 "연료 부족". 뭐, 괜찮다. "연료 부족"이 한두 번 뜬것도 아니고 이미 수차례 경험으로 연료 부족이 떠도 우리 집까지는(30km)는 충분히 가니까 집에 가서 잘 주차해놓고 남편 퇴근하면 셀프주유소 가서 주유해달라고 해야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곧 깨달았죠. 저는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의 은행을 가야 하고 지금 내 차는 43도에 육박할 정도로 뜨겁다는 것을. 망(亡)의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니 다행히 우리 집보다 거리가 가까웠어요. 그러면 에어컨을 켜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연료 부족이 떴던 건 냉난방기를 가동 안 해도 되는(혹은 가동 안 해도 버틸만한) 상황이어서 에어컨이 얼마만큼의 기름을 소요할지 몰라 섣불리 켤 수가 없었어요. 결국 저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43도로 펄펄 끓는 차를 에어컨 안 키고 운전해서 가기로.
이 더운 날씨에 에어컨을 안 켜고 창문을 열고 있는 모습이 앞뒤 양옆에 있는 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조금 민망스러웠지만 창문이라도 안 열면 진짜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어요. 결국 창문을 손가락 하나 길이만큼 열고 운전 시작. 예상대로 땀방울이 순식간에 온 얼굴에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바람이 불면 살 것 같았지만 너무나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계속해서 뜨거운 공기를 꾸역꾸역 씹어 삼켜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국도는 견딜만했습니다. 문제는 자동차 전용도로. 기본 80에서 100까지 속도를 내는 전용도로에서는 도저히 창문을 열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70으로 천천히 달리기에는 차 안에서 진짜 익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아서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렸어요. 창문을 다 닫고 100의 속도로 질주하기로. 창문을 닫는 순간 진짜 온몸의 땀샘이 폭발한 듯 모든 피부가 끈적거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방울방울 맺혀있던 얼굴의 땀이 뚝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졌어요. 그 순간에도 걱정이 되었던 건 이마의 땀이 눈으로 들어가면 시야가 확보가 안되고, 그러면 너무나도 위험천만하기에 티슈를 한 장 뽑아 이마를 아주 말끔하게 닦았지요. 휴지는 비틀어 짜면 땀방울이 나올 것같이 흠뻑 젖었어요.
이제는 나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전용도로까지는 늘 다니던 길이니 운전에만 집중하면 되었지만 전용도로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바로 초행길이 때문에 긴장해서 땀이 더 날것이 분명했습니다. 꾹꾹 참아왔던 짜증이 솟구치려고 폼을 잡는 그 순간. 심호흡을 했다. "후.... 하.... 후.... 하...." 그리고 되뇌기 시작했어요.
그래,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사우나에 가서 땀을 쭉 빼기도 하는데, 나도 이참에 몸에 있는 불순물이 다 빠져나간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이제 차도 35도까지 온도가 내려갔으니 아까 43도에 비하면 양호하잖아. 은행업무 보고 기름 넣으면 바로 에어컨 틀자. 조금만 더 견디자. 후.. 하.. 후.. 하.. 마음을 다잡으니 곤두섰던 신경이 차츰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란 말을 몸소 깨우친 것입니다.
무사히 도착한 은행에서 업무도 순조롭게 보고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셀프주유소에서 기름도 적당히 넣고 그렇게도 간절했던 에어컨을 켜고 집으로 오는 길.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어요.
그리고 더불어 엄마가 셀프주유소에서 주유하는 것을 보고 저도 이제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진짜로 직접 해봐야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확실해지는 것이지만, 뭔가 내가 그동안 셀프주유를 시도해 보지 않은 게 주유하는 방법이 어렵다기보다는 늘 차가 붐비는 셀프주유소에서 우물쭈물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욕도 먹을까 봐 두려워서 그런 게 아니었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 역시 마음먹기 나름일 듯합니다. 어디에선가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것과 한번 해볼까 하는 것은 결과가 천지차이라고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