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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17. 2022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강낭콩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강낭콩이 한해 식물이라는 것을. 열매가 달리고 익어갈수록 그 생명이 다 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할 줄은 몰랐다. 평소와 같이 안부를 물으러 간 그날. 너무도 노쇠해진 그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처음 콩 꼬투리를 본 날 이후로 수많은 꼬투리들 중 일부가 쑥쑥 크기 시작했다.

너무도 기쁘고 설레었다. 드디어 수확물을 보는구나. 또한 이 열악한 베란다라는 환경에서 식물이라고는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을 만났음에도 자신의 역할을 끝까지 해내고 있는 듯한 강낭콩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친정엄마가 오신 날, 자랑스럽게 강낭콩이 열린 것을 보여드리니 베란다에 나가실 때까지 의심쩍어하시더니 진짜 보시고는 눈이 동그래지셨다.


진짜 열렸네!

그랬다. 진짜 열렸다. 그런데.. 열리는 만큼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도 크고 싱싱했던 초록잎들이.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까지 생명을 잃어갈 수 있는지 마음이 너무도 심란했다. 색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 잎들은 가장자리부터 말라갔다. 건드리면 바삭바삭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너무 속이 상해 색이 바랜 잎들을 다 뜯어내기 시작했다. 뜯긴 잎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렇게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면 강낭콩은 조금 이마나 옛 모습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써 내가 그렇게 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하루를 가지 못했다. 그다음 날에는 다른 잎들이 더 빠른 속도로 생기를 잃어갔다. 더 이상 가장자리가 아닌 잎사귀 전체가 죽어버린 채 억지로 매달려 있는 모습을 매일 마주해야 했다.

마음이 침울했다.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이 주는 기쁨보다 잎사귀들을 바라보며 뜯어내며 느끼는 감정이 너무도 무겁고 버거웠다. 그리고 글감을 찾아 항상 생각을 놓지 않는 습관은 이 순간에도 쓸데없이 빛을 발했다. 한순간에 스러져간 기억 속의 사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나의 외할머니. 벌써 언제 적이던가. 10년 전이었다. 우리 엄마의 눈물을 한껏 삼키고 하늘로 올라가신 할머니. 곱게 씻겨진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내 눈가가 부끄러울 정도로 말라있었던 것에 비해 엄마는 온몸에 물이란 물은 다 쏟아내려는 듯 오열했다. 쓰러지고 부축받고 다시 오열하고 쓰러지고를 반복했던 엄마.


인생의 황혼기라 불리는 노년기를 요양원에서 꾸역꾸역 살아내신 할머니. 억척스럽던 성정도 사납도록 거칠던 입담도 다 내려놓은 내가 마지막으로 마주한 할머니의 생전 모습은 말 그대로 맑았다.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던 만큼 나 역시 멀고도 멀게 느꼈던 존재였기에 그때는 이미 그녀의 기억 속에 나는 없었고, 오직 나만이 혈연이라는 끈을 겨우 붙잡고 있던 어느 날 그녀가 머무는 요양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게 마지막이었을 줄 알았다면 조금은 더 애틋하고 짠한 마음으로 그녀를 대할 수 있었을까. 새삼 해보지도 않던 후회가 밀려든다. 강낭콩 잎사귀 한 장에.


장례식장을 지키며 여러 편의 시를 썼었다.


강 건너 산 넘어
어디쯤 가시려나.

톡 하고 건들면
당장이라도 스러질 듯
아파하던 당신 이건만.

먼저 떠나간 님은
기쁘게 재회하신 건가.

살아생전 그렇게도
원수가 없다고 하시더니
눈감는 그 모습에
그리 기억을 놓으실 줄
누가 알았을까.

사랑했던 건가.

모두가 한 때는 사랑했을 테지.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어느 한순간은.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
함께 숨 쉬며 아끼던 시간들이
어느 즈음엔 있었겠지.

내 몸 하나 챙기기에도
힘든 이 세상에 누군가를 만나
자식을 만들고,
온몸 구석구석에 지고 살려니
힘에 부쳐 미처 당신을..
돌아보지 못한 후회가
곱게 화장한 당신의 마지막 모습에
한꺼번에 눈물로 터져 흐를 때
나는 갑자기 말하고 싶어 졌지.

'오케이'

세상에 이리 슬픈 오케이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오케이, 잘 가셔요.'
'할로우, 기쁘게 만나기를'

아직은 귓전에
아프다는 말도 배고프단 말도
그리고 오케이란 말도..
들리는 듯 당신을 보내지 못했지만.

삶은 이어지겠지.

남겨진 사람들에게 너무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지 않도록
하나 이쁘지 않은 우리들이라도
당신이 보살펴주기를.

그리고 당신 곁에
늘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당신을 지켜왔음을
기억해주기를. 그건 사랑이었음을.

할머니와 나는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미워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있는 엄마는 할머니가 너희를 사랑하셨지만 표현 못하셨을 뿐이라 하지만, 사랑이란 그렇게 남이 포장한다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그녀가 생을 다 했을 때 나는 100일 정도의 시간 동안 마음을 넘치도록 듬뿍 준 강낭콩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우울했었다. 슬픈 감정과는 달리 모든 것이 허망하고, 허무하고 의미 없어지는 그런 기분을 느꼈었다.  


할머니의 유언은 "배고파"였다. 위가 멈추고 장이 활동을 제대로 못해 괴사에 이르러서도 할머니는 배고픔을 느끼셨다. 처절하게 배고프다고 하셨지만 중환자실에 있던 그 누구도 그녀에게 수액 말고는 줄 수가 없었다. 무언가 들어가면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숨구멍을 막을 수도 있었기에. 나의 엄마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후회하고 계신다. 그녀의 마지막을 고통스러운 의료 연명 줄에 매달은 것이 자신이라는 죄책감이다. 이제는 좀 털어버리셨을까. 나는.. 할머니도 우리 엄마도 이렇게 가끔은 미치도록 안쓰럽다.



급격히 생명을 잃어가면서도 강낭콩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고 있었다. 그 노력으로 열매는 나날이 탐스러워지고 있다.

조금은 늦은 휴가를 다녀오면 어떤 모습일지 벌써 겁이 난다. 덩그러니 잘 익은 꼬투리만 남아있을 것만 같다. 수확을 하면 이제 내 손으로 심었듯이 내 손으로 뿌리째 뽑아 마무리를 지어야 할 텐데, 내 마음이 어떨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별을 알고 맞이한 들 그 이별이 이별이 아닐 수는 없듯이, 여전히 이별은 아프고 슬프다. 그럼에도 남겨진 이들은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매 순간 다가오는 삶을 맞이해야 하기에 아직은 나에게 남은 듯한 약간의 시간 동안 끝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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